[특조위 조사로 드러난 5월의 진실] ②광주 공습 대기 의혹
2018년 02월 12일(월) 00:00
광주출신 중대장 “공군, 방림동 등 4곳 공습 대상지 설정”
20사단 박모 대위 특조위 진술
“작전회의서 ‘Air Strike’ 들어”
공군참모총장 전투기 2대 대기 지시
美, 광주 거주 자국민 대피 정황도
고(故) 아놀드 피터슨 목사·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의 아내 마사 헌틀리 여사가 주장했던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광주 폭격 정황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광주 출신 20사단 소속의 한 중대장은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작전회의에 참석해 ‘Air Strike’(공중 타격)에 대해 브리핑하는 것을 들었다”고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에 증언했다. ‘Air Strike’는 공군에 의한 지상 표적 파괴를 의미한다.

20사단 61연대 1대대 3중대장으로 광주에서 임무를 수행했던 박모씨는 “날짜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겠으나 전교사에 주둔하던 당시 작전회의를 하면서 발표자가 ‘Air Strike’에 대해 브리핑하는 것을 들었다”며 “‘Air Strike’ 지역은 광주 외곽 4개 지역으로, 집이 있던 방림동 파출소 앞 야산이 포함돼 있어 ‘민간인 거주지역이어서 큰일난다’고 말했다”고 특조위에 진술했다.

특조위는 진술이 구체적이고 육군 작전 관련 정황을 이야기 하던 중 해당 진술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점, 박씨가 육군으로서 공군에 관해 허위 사실을 진술할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조위는 다만 ‘Air Strike’가 공군 항공기에 의한 폭격인지 육군 헬기의 지상공격인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군사전문가들은 ‘Air Strike’의 의미가 헬기 보다 항공기 폭격에 더 가깝다고 분석한다. 국방부 산하 국방기술품질원이 2011년 만든 ‘국방과학기술용어 사전’에도 ‘공중 타격’(Air Strike)은 ‘공격 임무를 부여 받은 전투기, 폭격기 또는 공격기에 의한 특정 지상 목표에 대한 공격’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 폭격을 준비한 정황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또 있다.

특조위가 발굴한 ‘광주소요사태 상황전파자료’ 1091쪽에는 ‘16:00 현재 전국 진돗개 둘’이 발령된 사실과 함께 같은날 오후 4시35분 당시 윤자중 공군참모총장이 내린 ‘전 기지 전통지시, C/S 지시사항 광주 C-123 FL 대기, 2F-5F/B 비상대기’ 지시사항이 기재돼 있다. C/S는 공군참모총장, C-123 FL은 수송기, 2F-5F/B의 앞 숫자는 비행기 대수, F-5F/B는 전투기 기종명이다. 이 지시사항은 공군참모총장이 광주 제1전투비행단에 전투기 2대 등을 비상대기 시키라고 명령한 것이다.

특조위는 공군참모총장이 직접 광주기지를 지목해 전투기 대기를 지시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육군 ‘일일역사보고’에는 1980년 5월23일 오전 8시50분 계엄사령관실에서 열린 계엄사작전회의에서 황영시 계엄사 참모차장이 “그 작전계획으로 작전할 때 시민들의 피해가 얼마나 나겠느냐. 내 생각에는 10만명이 날 것 같다”고 말한 상황이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이 말을 듣고 작전 재검토를 지시한다.

또한 특조위가 주한미국대사관과 미 국무부에서 오간 긴급통신문 등을 검토한 결과 당시 미국 정부는 1980년 5월21일 광주에 거주하고 있던 미국인을 급하게 광주 미 공군기지로 대피시키려고 했다.

당시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은 5월22일 유병현 합참의장으로부터 광주 재진입 작전계획을 들은 후 ‘대단히 위험한 작전, 엄청난 참사’ 등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광주 폭격설’의 최초 출처가 주한미국대사관, 미 공군기지 관계자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시 미국의 행보와 광주 폭격계획은 관련성이 깊다”며 “추가 조사를 바탕으로 실체를 파헤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희기자 kim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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