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칠천만의 아리랑’이란 노래를 들었다. 왕년의 인기 가수였던 김부자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들으며 눈시울이 젖는 진한 감동을 느꼈다. 특히 노랫말이 인상적이었다.

‘가고파도 갈 수 없는 고향이여/ 보고파도 볼 수 없는 내 형제여/ 한 핏줄을 갈라놓고 50년이 웬 말이냐/ 저 하늘도 기가 막혀 통곡하고 있구나/ 이제 그만 남과 북이/ 하나 되어 불러보자/ 아리랑을 불러보자/ 민족의 한, 민족의 꿈/ 통일이여/ 칠천만이 소리친다.’

예전에는 무심코 흘려들었던 이 노래가 이토록 감동을 준 이유는 무엇보다도 평창 올림픽 때문이었을 게다.

지난 9일 평창 올림픽이 마침내 개막되었다. 세계 92개국이 참가하고 남북한이 단일팀을 이루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입장함으로서 평화 올림픽의 모습을 세계만방에 보여주었다.

사실 평창 올림픽은 연말까지만 해도 성공 여부가 불투명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미국의 제재 압박 속에서 전운이 가득한 평창 올림픽에 선뜻 오겠다는 나라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동네 올림픽이 될 것을 우려 했을까.

그러나 일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우리 정부의 집요한 노력 앞에 북한 김정은이 통 큰 화답을 하면서 회담은 일사천리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급기야 지난 4년 동안 막혔던 육지와 바다, 하늘길이 열리고 개막식에 남북 단일팀과 한반도기의 입장이 이루어 졌다. 특히 한반도기 입장 때 문재인 대통령 내외, 북한의 김영남, 김여정,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관객들의 기립 박수는 감격 그 자체였다.

그동안 야권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평창 올림픽이 아니라 평양 올림픽이라고 몰아붙이고 어떤 야당 인사는 단일팀 구성을 반대하는 서한을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에 보내기도 했다.

또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웜비어 부친을 데려오고 리셉션 만찬장에 앉지도 않고 5분 만에 떠나 노골적으로 재를 뿌렸다. 모두가 옹졸한 처사였다.

지난 2003년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대북 사랑의 쌀’을 배에 싣고 인솔단으로 남포(진남포)를 방문하여 쌀이 하역되기를 기다리며 일주일 넘게 남포 시내를 둘러봤다. 당시 인구가 30만 명인 남포 시내는 암흑가나 다름없었다. 시내는 점포나 식당 등 상업 시설은 거의 없고 시골 마을처럼 담장뿐이었으며 거리는 한산했다. 주민들은 깡마르고 의복은 남루했으며 가끔 보이는 아파트는 페인팅을 하지 않아 회색 건물들로 너저분했다. 그들은 경제를 모르고 사는 것 같았다. 김씨 부자의 정권 유지와 세습을 위해 죄 없는 백성들을 이렇게 못살게 방치해도 되는가 하는 씁쓸하고 서글픈 생각이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았다.

그랬던 북한이 이번 평창 올림픽을 보면서 그동안 많이 변했음을 실감케 했다. 현송월이 든 고가 핸드백이나 방남 인사들의 옷차림이 그들의 생활상을 반영한 듯 변화가 감지되었다. 비록 그것이 보여주기식 선전술임을 감안하더라도 예술단원들의 실루엣에 비친 뱃살은 경제가 나아지고 있음의 방증으로 보였다.

물질은 때로 정신을 바꾼다. 아무리 주체 사상으로 무장된 그들이라고 하지만 화려한 물질 세계를 체험한 이상 그 단맛을 외면하고 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는 북한의 선수, 공연단, 응원단, 참관단 등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 그들은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의 사는 모습을 보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 알게 모르게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겨울이 아무리 길고 혹한이 심해도 봄바람은 얼음을 녹인다. 이번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과 북이 교류를 재개하여 활성화하고 그 봄바람이 북녘의 얼음을 녹이길 기대한다. 지난겨울 타올랐던 우리의 촛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