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제주도에 다녀왔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편리하게 이용하는 비행기이지만 이착륙 때는 약간 긴장된다. 사실 하늘을 나는 게 범상한 일인가. 처음 하늘을 날 생각을 했던 사람은 몽상가라 해야 할 것이다. 몽상이 몽상에 그치지 않았던 것은 현실주의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서였다. 시행착오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수정과 재도전이 이어졌기에 마침내 몽상은 현실이 될 수 있었다.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까지는 비행시간이 50분 정도 걸린다. 작은 나라다. 우리 헌법(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 영토는 헌법에서 규정한 것의 절반으로 쪼그라든다.

헌법의 영토 조항은 평화적 통일을 규정한 다른 규정(제4조, 제66조, 제69조 등)과 충돌된다. 영토 조항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남한 정부가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북한 정부는 불법 단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평화 통일 조항에 따르면 북한 정부는 평화적 통일을 위해 협력해야 할 당사자가 된다.

현실은 어떠한가. 국제 무대에서 분단국이라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다가 1991년에야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남과 북은 대외적으로는 두 개 국가이지만, 양자 사이에는 국가 사이에 준하는 특수한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규범적 현실이다.

북방한계선을 고집하면서 이와 다른 움직임을 이적 행위로 비난하기도 하는데, 헌법의 영토 조항만을 문자 그대로 적용해 보면 이 주장이야말로 나라의 일부를 넘겨주는 이적 행위로 몰릴 여지가 있다. 남북 관계를 정치 이슈로 삼는 것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백령도에서 군 복무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백령도 어민들은 고기잡이를 하다 경계를 넘기도 했다. 북에 끌려갔다 돌아오면 남에서는 요시찰 인물이 되었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자고 했다. 구체적인 평화와 신뢰를 쌓는 실천이 될 것이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날씨가 좋아 해안선과 큰 강이 잘 보였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이어지는 고속도로도 뚜렷했다. 고속전철은 서울에서 부산이나 목포까지 대략 두 시간 30분이면 달린다. 아마 조선 시대 실학자들이 다시 태어나 본다면 격세지감이 들 것이다. 물자가 원활하게 이동하지 못해 경제가 낙후되었다고, 그토록 수레와 도로를 강조했건만, 열악한 도로 사정은 조선 시대가 끝날 때까지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는 옛일이다.

그런데 우리 도로망은 휴전선으로 끊겨 있다. 3면이 바다이고 북쪽 한 쪽은 완전히 막혔으니, 섬 아닌 섬이로되 섬만도 못한 실정이다. 하지만 4·27 판문점 선언에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기로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민망하다고 했던 북한 도로의 개선이 북한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고속전철이 달리면 다섯 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이다. 그뿐인가. 중국 횡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이어져 유럽 철도로 연결될 수 있다. 우리 경제의 활로를 찾는 길이 아닌가.

한반도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남과 북이 만드는 것이지만, 분단이 그러했듯, 분단의 해소도 남과 북만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주변국의 협조가 매우 긴요하다. 얼마 전까지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거친 언사를 주고받더니, 어느새 남북 관계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참으로 앞일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암초가 없지 않겠지만, 북미 정상회담으로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진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역사 속엔 아이러니가 있다. 비둘기파가 집권할 때는 매파의 비토로 평화의 완성이 좌절되다가, 오히려 매파 집권기에 평화의 결정적 진전을 이뤄 낼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잡아챌 때이며, 천재일우라는 단어가 어울릴 때라 믿고 싶다.

비행기 창밖에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더니 곧 제주도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가 우리 역사에 들어온 것은 조선 시대부터였다. 역사는 흐른다. 비행기로 평양을 드나들고, 기차로 신의주를 통과해 중국과 시베리아를 지나 런던까지 달리며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