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무렵, 새빨간 입술연지를 바르고 등교하는 여자 중·고등학생들이 눈에 띈다. 학생들이야 예쁘게 꾸미느라 입술연지를 발랐겠지만 내 눈엔 결코 예뻐 보이지 않았다. 싱그러운 젊음 자체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인데 그 보석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도색(塗色)을 하다니! 그것도 분홍색이나 옅은 색조의 입술연지가 아니고 한결같이 새빨간 진홍색이다.

여학생들의 화장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터에 학교 현장의 현실을 알려주는 신문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5월 31일 자 경향신문 기사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진 모 양(18)의 학급 여학생 18명 중 15명은 매일 같이 화장을 한다. 여학생들은 가벼운 기초화장 수준이 아니라 아이라이너, 아이쉐도우, 뷰러, 마스카라, 블러셔, 입술 화장까지 ‘풀 메이크업’을 하고 학교에 온다. 진 양은 지난 29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화장을 하지 않으면 ‘왜 화장을 하지 않느냐’ ‘아파 보인다’ 등의 이야기를 친구들로부터 듣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중학교 3학년 학생의 말을 빌려 “여자 친구들은 모두가 화장을 안 하면 밖에 나갈 수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친구는 일찍 일어나서 등교 전 40분 동안 화장을 하기도 한다”는 기사도 있었다. 대부분의 여학생이 맨 얼굴로 등교하는 것을 창피한 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이다.



맨 얼굴은 창피한 일’이라니



초등학생들도 화장을 한다고 한다. 녹색소비자연대가 지난해 발표한 ‘어린이 청소년 화장품 사용 행태’보고서에 따르면 여자 초등학생 42.7%, 중학생 73.8%, 고등학생 76.1%가 색조 화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들 화장의 농도가 어느 정도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전체 초등학생의 절반가량이 ‘맨 얼굴’로 등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현상일까?

초·중·고교 여학생의 일반적인 화장 풍조와는 정반대의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탈코르셋 운동’이 그것이다. 일종의 저항적 사회운동의 성격을 띤 ‘탈코르셋 운동’은, 화장을 포함한 여성의 외모 치장을 ‘여성이기에 부당하게 감내해야 했던 성차별적 노동이자 의무’라 비판하고, 짙은 화장이나 긴 생머리, 다이어트 등을 거부하고 갖고 있던 화장품을 부수거나 머리카락을 자름으로써 ‘꾸밈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의 시선에 길들여진 존재이기를 거부하는 이 운동은 대단히 신선하다. 그러나 “우린 아름다울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식의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 표현을 쓰면서 모든 여성들에게 ‘운동’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가 하면 동참하지 않는 여성을 ‘흉자’ 등의 비속어로 비난하는 일부 ‘운동가’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꾸밈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이성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하나의 본능일 것이다. 그리고 이 본능에 따르고 안 따르고는 개인 선택의 문제이다. 또 여성의 외모 치장을 ‘성차별적 꾸밈 노동’으로 규정하는 것도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어떤 여성은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해서 화장을 하기도 하고 본인만의 어떤 필요에 의해서 화장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탈코르셋’은 강요할 성격의 운동이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초·중·고교 여학생들의 새빨간 입술연지가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만이라도 입술연지만큼은 바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바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