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의 유럽 예술기행] <1> 이탈리아 - 로마
2018년 07월 31일(화) 00:00 가가
태양은 로마의 먼지까지도 빛나게 하네
지름 187m 높이 48m 콜로세움 우민화 공작정치는 ‘동서고금’
생뚱맞은 에마뉴엘 2세 기념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계단 감탄
시민 생활 중심지 포로 로마노 ‘정치’ 궁전으로 옮긴 뒤 쇠퇴
지름 187m 높이 48m 콜로세움 우민화 공작정치는 ‘동서고금’
생뚱맞은 에마뉴엘 2세 기념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계단 감탄
시민 생활 중심지 포로 로마노 ‘정치’ 궁전으로 옮긴 뒤 쇠퇴
/글·사진 정찬주(소설가)
비행기 창에 빗방울이 스친다. 로마는 비에 젖고 있는 모양이다. 멀리 로마 피우미치노(Fiumicino) 공항의 터미널이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이 정식 이름. 공항에 역사의 옷을 입히는 로마사람들이 부럽다. 베네치아에는 마르코 폴로 공항이 있었던 것 같다. 비행기가 터미널에 안착하자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린다. 로마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난다. 내게 주어진 한 달 간의 유럽여행 중에서 비로소 로마의 4박 5일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로마의 역사문화가 종합된 콜로세움, 신앙의 의미를 묻는 지하무덤인 까따꼼베와 바오로성당, 괴테가 머물다 갔다는 괴테 박물관, 다빈치와 라파엘로의 성화(聖畵)를 비교 감상할 수 있는 바티칸 박물관 등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입국심사 홀에는 수백 명이 줄을 서 있다. 오후 5시 일과 근무시간이 지나서일까, 대부분의 카운터에는 ‘NO BUSINESE‘라는 팻말이 놓여 있다. 겨우 네댓 군데의 카운터만 일을 보고 있다. 관광객의 줄은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콜로세움에 5만 명이 30분 이내에 모두 입장했다는데 그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입국 심사하는 근무자의 태도는 무사태평이다. 동료끼리 잡담하다가 내 여권에 스템프 도장을 꽝 찍는다.
짐 찾는 홀에는 가방과 짐들이 이미 나온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내 캐리어는 바퀴가 하나 빠진 상태다. 항공사에 항의할 방법도 모르겠고 시간은 벌써 밤 9시 언저리다. 뒤뚱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택시정류장으로 가니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택시정류장도 승객들이 줄을 길게 서 있기는 마찬가지다. 거친 비는 로마 여행을 꿈꾸고 찾아온 나를 은근히 위축시킨다. 그래도 나는 불구자가 된 캐리어를 택시 트렁크에 싣고 외친다.
“델 코르소 호텔!”
로마 중심 시가지에 있는 호텔을 인터넷으로 예약해 두었지만 왠지 불안하다. 택시는 나를 납치하듯 태우고는 빗속을 달린다. 와이퍼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가 쏟아져 택시가 멈추기도 한다. 그런데 나를 더욱 좌불안석케 하는 것은 택시 기사의 태도다. 자신의 휴대폰으로 목적지를 열 번도 넘게 검색하면서 좌회전, 우회전을 반복하고 있다.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평정심을 되찾는다. 예약한 숙소는 프런트가 있는 건물이 아니라 별동에 있다. 옛 건물을 개조한 탓인지 육중한 문이 열릴 때 요란한 소리를 토해낸다. 아내와 함께 든 객실은 503호이다. 낯익지만 거북한 숫자 503을 만나다니 희한한 일이다. 나는 배낭 속에 든 인천공항서점에서 사온 여행 가이드북 <이탈리아(시공사)>를 꺼내 로마 편을 펼친다. 내일 가볼 곳을 정하기 위해서다. 로마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원형극장 콜로세움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로마 여행은 콜로세움부터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태양은 먼지까지도 빛나게 한다고 괴테가 말했던가. 로마의 모습은 어제와 완전히 다르다. 이른 아침인데도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활보하고 있다. 프런트에 부탁하니 택시가 금세 온다. 택시 기사의 태도도 어제와 딴판이다. 운전은 직진 위주이고 손가락으로 콜로세움을 가리키며 요금은 미터기에 나온 만큼 내라고 한다.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가 인공호수를 만들려고 했던 터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72년에 짓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 완공했다고 한다. 타원형의 노천극장으로 긴 쪽의 지름은 187m이고 짧은 쪽의 지름은 155m이며 높이는 48m라고 한다. 돌기둥은 그리스양식으로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가장 화려한 코린트식이란다. 기대가 된다. 나는 3년 전에 그리스로 답사여행을 가서 기둥양식만은 확실하게 공부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5만에서 최대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내부 관람석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데 출입구는 총 75개로 관람객들이 신속하게 입장과 퇴장을 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 눈에 띈다. 나무판자와 진흙으로 만든 입장권에 출입구를 표시했다고 하니 오늘날에도 참고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콜로세움의 용도는 당시 황제들이 로마인들의 정치적 경제적 불만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연극이나 서커스, 검투사들의 참혹한 싸움 등을 무료로 보여주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우민화 공작정치는 예나 현대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보았던가,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잔인한 장면인데도 열광하던 우매한 관중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안내서의 모든 내용이 사실인 것 같다. 카메라 한 컷으로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원형극장이다. 콜로세움 정면에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 셔터를 눌러보지만 어림도 없다.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가 콜로세움 준공식에 참석한 뒤 예찬한 시가 떠오른다.
이집트인들아, 피라미드를/ 자랑하지 말라/ 바시리아인들아, 바빌론을/ 입에 담지 말라/ 황제의 새 원형경기장 앞에서 그것들이 설 자리는 없으니/ 모든 명성은 이를 위한 것/ 모두가 이 그림자에 가려지리라.
마르티알리스가 티투스 황제에게 바치는 아부용 시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 정도의 거대한 규모의 원형극장이라면 어떤 시인이든 찬탄을 금치 못할 것 같다. 나의 심정도 그렇다. 더구나 원형극장에 물을 급수해 채운 뒤 가상해전을 치렀다고 하니 놀랍다. 로마는 수군보다 육군이 강했으므로 가상해전에서는 돌격전과 백병전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잘 보이는 1층에는 귀족, 2층에는 로마시민, 3층에는 무료로 입장한 사람들, 즉 시민권이 없는 노예나 여성들 및 외국인이 관람했으며 햇볕을 차단하는 거대한 차양시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티투스 황제는 폭군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을 뜯어 자재로 사용했고, 예루살렘에서 약탈해온 보물로 콜로세움 건설의 재정을 충당해 로마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하니 정치적 감각이 탁월했던 군주 같다.
점심 후에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재자 무솔리니가 참전을 선언했던 베네치아 광장으로 가볼 생각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총독의 관저였던 두칼레 궁전을 모방한 건물이 있다고 하는데, 정작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이탈리아를 통일한 초대 국왕 빅토리아 에마뉴엘 2세 기념관 위쪽에 있는 캄피돌리오 광장 주변이다. 로마의 유적지들은 대부분 걸어서 30분 내의 거리에 있다. 택시나 전차를 탈 필요가 없다. 에마뉴엘 2세 기념관 오른편 경사진 길이 캄피돌리오 광장 가는 인도다. 그런데 흰색 건물인 에마뉴엘 2세 기념관은 주변의 고색창연한 유적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로마사람들에게 원성이 자자하다. 내가 보기에도 생뚱맞다. 기념관 옆에도 로마시대의 5층 아파트가 현재의 지표면 밑에 있다. 지진 등으로 건물이 쑥 내려가 버린 것 같다. 광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이채롭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고 하는데 착시효과를 고려해 광장이 더 가깝게 보이도록 위쪽 계단의 길이를 길게 했다는 것이다. 위쪽 계단이 원근법에 의해 아래쪽 계단보다 작아 보이고 심리적으로 멀게 보이는데, 그것을 역이용해 설계했다니 ‘과연 천재는 다르군!’이라는 감탄의 말이 절로 나온다. 카피톨리니 박물관은 캄피돌리오 광장 옆에 있어 찾기가 쉽다. 나는 박물관에서 요의만 해결하고 그 건물 뒤쪽으로 곧장 내려간다. 포로 로마노를 공짜로 구경하기 위해서다.
포로는 공공의 광장이란 뜻. 영어 포럼(forum)의 어원이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포로 로마노가 시민들이 생활하는 중심지였으나 정치활동이 황제의 궁전으로 옮겨진 뒤부터 쇠퇴했다고 한다. 언덕 절개지에 건물이 있고, 고대건물에 중세건물이 증축된 듯하다. 시대가 올라갈수록 창문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건물 맞은편에는 병사들의 추대로 193년에 황제가 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이 있다. 개선문이란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로마시민과 원로원 의원들이 세워주었던 문. 카이사르신전 유적을 보니 기원전 47년 카이사르가 폰포스 국왕 파르케스를 격파한 뒤 로마 원로원에 보낸 편지 전문이 생각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참으로 신산한 세월을 보내고 로마에 온 나의 감회를 카이사르가 대변해 준 것 같아서 그의 세 마디가 문득 생각났는지도 모르겠다.
비행기 창에 빗방울이 스친다. 로마는 비에 젖고 있는 모양이다. 멀리 로마 피우미치노(Fiumicino) 공항의 터미널이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이 정식 이름. 공항에 역사의 옷을 입히는 로마사람들이 부럽다. 베네치아에는 마르코 폴로 공항이 있었던 것 같다. 비행기가 터미널에 안착하자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린다. 로마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난다. 내게 주어진 한 달 간의 유럽여행 중에서 비로소 로마의 4박 5일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로마의 역사문화가 종합된 콜로세움, 신앙의 의미를 묻는 지하무덤인 까따꼼베와 바오로성당, 괴테가 머물다 갔다는 괴테 박물관, 다빈치와 라파엘로의 성화(聖畵)를 비교 감상할 수 있는 바티칸 박물관 등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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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마시대에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 |
입국심사 홀에는 수백 명이 줄을 서 있다. 오후 5시 일과 근무시간이 지나서일까, 대부분의 카운터에는 ‘NO BUSINESE‘라는 팻말이 놓여 있다. 겨우 네댓 군데의 카운터만 일을 보고 있다. 관광객의 줄은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콜로세움에 5만 명이 30분 이내에 모두 입장했다는데 그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입국 심사하는 근무자의 태도는 무사태평이다. 동료끼리 잡담하다가 내 여권에 스템프 도장을 꽝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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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를 통일한 초대 국왕 빅토리오 에마뉴엘 2세 기념관. |
“델 코르소 호텔!”
로마 중심 시가지에 있는 호텔을 인터넷으로 예약해 두었지만 왠지 불안하다. 택시는 나를 납치하듯 태우고는 빗속을 달린다. 와이퍼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가 쏟아져 택시가 멈추기도 한다. 그런데 나를 더욱 좌불안석케 하는 것은 택시 기사의 태도다. 자신의 휴대폰으로 목적지를 열 번도 넘게 검색하면서 좌회전, 우회전을 반복하고 있다.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평정심을 되찾는다. 예약한 숙소는 프런트가 있는 건물이 아니라 별동에 있다. 옛 건물을 개조한 탓인지 육중한 문이 열릴 때 요란한 소리를 토해낸다. 아내와 함께 든 객실은 503호이다. 낯익지만 거북한 숫자 503을 만나다니 희한한 일이다. 나는 배낭 속에 든 인천공항서점에서 사온 여행 가이드북 <이탈리아(시공사)>를 꺼내 로마 편을 펼친다. 내일 가볼 곳을 정하기 위해서다. 로마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원형극장 콜로세움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로마 여행은 콜로세움부터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태양은 먼지까지도 빛나게 한다고 괴테가 말했던가. 로마의 모습은 어제와 완전히 다르다. 이른 아침인데도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활보하고 있다. 프런트에 부탁하니 택시가 금세 온다. 택시 기사의 태도도 어제와 딴판이다. 운전은 직진 위주이고 손가락으로 콜로세움을 가리키며 요금은 미터기에 나온 만큼 내라고 한다.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가 인공호수를 만들려고 했던 터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72년에 짓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 완공했다고 한다. 타원형의 노천극장으로 긴 쪽의 지름은 187m이고 짧은 쪽의 지름은 155m이며 높이는 48m라고 한다. 돌기둥은 그리스양식으로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가장 화려한 코린트식이란다. 기대가 된다. 나는 3년 전에 그리스로 답사여행을 가서 기둥양식만은 확실하게 공부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5만에서 최대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내부 관람석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데 출입구는 총 75개로 관람객들이 신속하게 입장과 퇴장을 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 눈에 띈다. 나무판자와 진흙으로 만든 입장권에 출입구를 표시했다고 하니 오늘날에도 참고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콜로세움의 용도는 당시 황제들이 로마인들의 정치적 경제적 불만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연극이나 서커스, 검투사들의 참혹한 싸움 등을 무료로 보여주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우민화 공작정치는 예나 현대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보았던가,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잔인한 장면인데도 열광하던 우매한 관중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안내서의 모든 내용이 사실인 것 같다. 카메라 한 컷으로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원형극장이다. 콜로세움 정면에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 셔터를 눌러보지만 어림도 없다.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가 콜로세움 준공식에 참석한 뒤 예찬한 시가 떠오른다.
이집트인들아, 피라미드를/ 자랑하지 말라/ 바시리아인들아, 바빌론을/ 입에 담지 말라/ 황제의 새 원형경기장 앞에서 그것들이 설 자리는 없으니/ 모든 명성은 이를 위한 것/ 모두가 이 그림자에 가려지리라.
마르티알리스가 티투스 황제에게 바치는 아부용 시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 정도의 거대한 규모의 원형극장이라면 어떤 시인이든 찬탄을 금치 못할 것 같다. 나의 심정도 그렇다. 더구나 원형극장에 물을 급수해 채운 뒤 가상해전을 치렀다고 하니 놀랍다. 로마는 수군보다 육군이 강했으므로 가상해전에서는 돌격전과 백병전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잘 보이는 1층에는 귀족, 2층에는 로마시민, 3층에는 무료로 입장한 사람들, 즉 시민권이 없는 노예나 여성들 및 외국인이 관람했으며 햇볕을 차단하는 거대한 차양시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티투스 황제는 폭군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을 뜯어 자재로 사용했고, 예루살렘에서 약탈해온 보물로 콜로세움 건설의 재정을 충당해 로마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하니 정치적 감각이 탁월했던 군주 같다.
점심 후에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재자 무솔리니가 참전을 선언했던 베네치아 광장으로 가볼 생각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총독의 관저였던 두칼레 궁전을 모방한 건물이 있다고 하는데, 정작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이탈리아를 통일한 초대 국왕 빅토리아 에마뉴엘 2세 기념관 위쪽에 있는 캄피돌리오 광장 주변이다. 로마의 유적지들은 대부분 걸어서 30분 내의 거리에 있다. 택시나 전차를 탈 필요가 없다. 에마뉴엘 2세 기념관 오른편 경사진 길이 캄피돌리오 광장 가는 인도다. 그런데 흰색 건물인 에마뉴엘 2세 기념관은 주변의 고색창연한 유적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로마사람들에게 원성이 자자하다. 내가 보기에도 생뚱맞다. 기념관 옆에도 로마시대의 5층 아파트가 현재의 지표면 밑에 있다. 지진 등으로 건물이 쑥 내려가 버린 것 같다. 광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이채롭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고 하는데 착시효과를 고려해 광장이 더 가깝게 보이도록 위쪽 계단의 길이를 길게 했다는 것이다. 위쪽 계단이 원근법에 의해 아래쪽 계단보다 작아 보이고 심리적으로 멀게 보이는데, 그것을 역이용해 설계했다니 ‘과연 천재는 다르군!’이라는 감탄의 말이 절로 나온다. 카피톨리니 박물관은 캄피돌리오 광장 옆에 있어 찾기가 쉽다. 나는 박물관에서 요의만 해결하고 그 건물 뒤쪽으로 곧장 내려간다. 포로 로마노를 공짜로 구경하기 위해서다.
포로는 공공의 광장이란 뜻. 영어 포럼(forum)의 어원이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포로 로마노가 시민들이 생활하는 중심지였으나 정치활동이 황제의 궁전으로 옮겨진 뒤부터 쇠퇴했다고 한다. 언덕 절개지에 건물이 있고, 고대건물에 중세건물이 증축된 듯하다. 시대가 올라갈수록 창문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건물 맞은편에는 병사들의 추대로 193년에 황제가 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이 있다. 개선문이란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로마시민과 원로원 의원들이 세워주었던 문. 카이사르신전 유적을 보니 기원전 47년 카이사르가 폰포스 국왕 파르케스를 격파한 뒤 로마 원로원에 보낸 편지 전문이 생각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참으로 신산한 세월을 보내고 로마에 온 나의 감회를 카이사르가 대변해 준 것 같아서 그의 세 마디가 문득 생각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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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가 원근법을 역이용해 설계한 계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