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가 그렇게 위험한 과일인지 몰랐어요. 우리 딸이 좋아해서 패밀리레스토랑에 가면 빼놓지 않고 먹었던 건데….”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김희운(여·45·광주시 서구 치평동)씨는 최근 열대과일 리치(Litch·사진)를 잘못 먹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보도를 접한 뒤 화들짝 놀랐다. 딸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리치로, 패밀리레스토랑을 가면 혼자 5~6개는 기본으로 먹어왔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김씨는 “여름이면 대형마트에서 파는 냉동된 리치를 구입해 간식으로 먹여왔다”며 “어린 아이들이 죽는다는 소리를 듣고 도저히 무서워서 먹일 수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지역 학무보들 사이에서 때아닌 ‘리치 포비아’(공포증·Phobia)가 확산하고 있다. 최근 인도와 중국 등 해외에서 어린이들이 리치를 먹은 뒤 의식불명에 빠지거나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이다.

1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열대과일인 리치를 덜 익은 상태로 먹으면 저혈당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리치에 함유돼 있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히포글리신’과 ‘MCPG’(methylene cyclopropylglycine) 성분이 저혈당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식약처의 설명이다.

특히 덜 익은 리치에는 해당 성분이 2~3배 높게 함유돼있는 탓에 식사를 하지 않은 공복 상태에서 다량 섭취하게 될 경우 구토를 유발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의식불명을 넘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달 인도에서 리치를 섭취한 어린이 50여 명이 뇌 질환으로 집단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 어린이가 더 있어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공복에 리치를 섭취한 어린이 10여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사망한 어린이들은 급성뇌염증후군(Acute Encephalitis Syndrome)과 관련된 증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급격히 혈당이 떨어지며 혼수상태에 빠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패밀리레스토랑을 비롯해 뷔페, 호텔 레스토랑 샐러드바 등에는 리치가 단골 메뉴로 빠지지 않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와 인터넷쇼핑몰 등 냉동된 리치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식약처 관계자는 “리치에 들어 있는 MCPG 성분이 급성뇌염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어 성인은 하루 10개 이상, 어린이는 하루 5개 이상 먹지 말라”며 “리치뿐 아니라 람부탄, 용안 등에도 MCPG 성분이 함유돼 있으니 동남아 여행시 현지에서 덜 익은 리치, 람부탄, 용안 등을 섭취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