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영화로 부활한 오월 …광주 넘어 세계에 ‘큰 울림’
2020년 04월 28일(화) 00:00
(13) 5·18 문화콘텐츠 현황 <하>
‘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출정가’
윤이상 ‘광주여 영원히!’ 작곡
조용필 ‘생명’·BTS ‘Ma city’ 등
다양한 음악으로 광주정신 기려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 첫 시도
1996년 본격 상업영화 ‘꽃잎’ 이후

힌츠페터 기자와 김사복씨의 5·18 이야기를 다룬 2017년 작 ‘택시운전사’.

1980년 5월, 저마다의 방식으로 계엄군에 맞섰던 시인, 연극인, 미술작가들을 비롯해 가요계와 영화계에서도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담은 작품들이 만들어져 대중에게 확산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으며 ‘화려한 휴가’와 ‘택시 운전사’ 등은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큰 울림을 안겨 주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1980년 5월 이후에는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의 뜻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일제 시대의 독립군가들이 다시 불리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창작민요가 만들어 지기도 했으며, 대중가요의 익숙한 악곡만을 차용한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가 유행하기도 했다.

5·18을 다룬 노래 중 가장 잘 알려진 곡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1981년 가을, 광주의 일부 문화패들이 고(故) 윤상원 열사의 넋풀이를 위한 카세트 테이프를 제작하면서 주제곡으로 끼워 넣은 곡으로 전국에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대표적인 운동가요로 자리잡았다. 이후 ‘광주출정가’, ‘오월가’, ‘선봉에 서서’, ‘전진하는 오월’ 등이 만들어졌다.

1981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곡인 정오차의 ‘바윗돌’은 “광주에서 죽은 친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만든 노래고 바윗돌은 친구의 묘비를 의미한다”는 한 신문의 인터뷰 기사 때문에 방송금지곡이 됐다.

김원중의 ‘바위섬’.
1982년에 발표된 조용필의 노래인 ‘생명’도 광주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를 추모하는 곡으로 만들어졌지만 당시 검열로 인해서 가사가 원안과는 달라졌다.

1983년에 발표된 에밀레의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도 5·18과 6월 민주항쟁을 추모하는 곡이며, 김수철 1집 앨범에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성격의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수록돼있다. 1984년 발표된 ‘바위섬’은 가요 프로그램에서 2위를, 라디오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1995년에 발표된 블랙홀의 4집 앨범 ‘Made In Korea’의 수록곡 ‘마지막 일기’는 5·18 마지막 날인 5월 27일 도청을 지키다 희생된 고등학생의 사연을 들은 블랙홀의 리더 주상균이 그것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곡이며, 힙합 그룹 클라우댄서의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도 광주항쟁을 다뤘다.

직접 다루지는 않았지만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고향을 소재로 다룬 곡 ‘Ma city’에도 5·18을 암시하는 가사가 등장한다. 광주 출신 멤버 J-hope의 ‘날 볼라면 시간은 7시 모여 집합, 모두 다 눌러라 062-518’ 부분. 노래가 공개된 뒤 외국인 팬들은 062와 518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했고, 이에 국내의 한 방탄소년단 팬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062, 518의 의미와 역사적 사실을 설명했다. 이를 통해 방탄소년단의 해외 팬들에게도 5·18이 알려져 해외 팬 중 일부는 광주 5·18 민주묘지에 직접 조문을 오기도 했다.

클래식과 국악 등의 분야에서도 오월을 이야기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서독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윤이상은 1981년에 관현악 작품인 ‘광주여 영원히!’를 작곡했고, 그 해 5월 8일에 쾰른에서 서부독일 방송 교향악단이 초연했다. 하지만 이 곡은 제목부터 5·18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연주되지 못했다.

5·18이 본격적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는 유병은의 관현악을 위한 시나위 제5번 ‘오월의 노래’, 김선철의 오페라 ‘무등 둥둥’ 등이 만들어졌다. 2018년 5·18 38주년을 기념해 열린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에서 김대성의 교성곡(칸타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제에 의한 교성곡 ‘민주’ ‘가 초연되기도 했다.



1989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오! 꿈의 나라 .
1980년 5월을 영화로 담아내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영화가 광주를 본격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한 건 1987년. 김태영 감독이 다양한 상징으로 아픔을 형상화한 16mm 단편영화 ‘칸트씨의 발표회’가 첫 시도였다. 김 감독은 이듬해 장편영화 ‘황무지’를 제작, 연출하며 진압군 병사의 시선으로 광주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황무지’의 필름과 비디오테이프를 압수했고, 김 감독은 이를 광주에서 상영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1989년에는 영화제작소 장산곶매가 다큐멘터리 영화 ‘오! 꿈의 나라’를 제작했다. 영화는 광주항쟁 중 서울 동두천으로 피신을 간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광주학살과 미국의 역할에 중점을 뒀다. 고(故) 홍기선 감독이 제작자로 나섰고 ‘접속’의 장윤현 감독,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의 장동홍 감독이 연출했다.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한마당에서 상영됐다. 89년 1월 개봉 당시 영화법 위반으로 고발당하는 등 군부독재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상영해 수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

이정국 감독의 ‘부활의 노래’는 1993년 새빛영화제작소에서 제작했다. 김영건·이경영·김수경 등이 출연했고 상영시간은 92분이다. 유신정권 시절, 사회 정의 실현과 민주화를 꿈꾸던 젊은이들의 항쟁을 그렸다.

1996년 개봉한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
본격 상업영화로서 광주를 그린 영화는 1996년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다. 영화는 오빠와 엄마를 광주에서 잃은 소녀의 아픔과 이를 바라보는 공사장 인부 그리고 소녀의 오빠를 찾아 나선 그 친구들의 이야기로 광주를 말했다. 영화는 실제 항쟁의 ‘성지’였던 광주 금남로에서 무려 50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진압군의 첫 발포가 있었던 5월21일의 상황을 담아냈다.

뒤이어 이창동 감독이 1999년 설경구를 주연으로 내세워 ‘박하사탕’을 세상에 내놓았다. 진압군으로 투입됐던 한 남자가 순수했던 청춘을 보내고 점차 세상 속에서 일그러져가는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창동 감독의 1999년 개봉작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2007)는 5월18일부터 27일 전남도청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인 시민군들의 이야기를 그렸으며, 강풀의 웹툰을 원작 삼아 제작된 ‘26년’은 2012년 개봉했다.

1980년 5월 광주를 취재했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와 그를 서울에서 태우고 광주까지 간 한국인 택시기사 김사복이 겪은 사건들을 이야기한 ‘택시운전사’는 2017년 관객과 만났다.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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