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어머님이 소천하셨다. 쉰다섯에 홀로 되어 막내가 쉰 살이 되도록 키워 냈지만 고춧가루 한 근이라도 자식들 주려 쓰러질 때까지 농사일을 하셨다. 홀로 거동하시기 어려워져 자식들 집을 전전하다 요양원에서 두어해 지내시고는 촛불 스러지듯 아무 말씀도 없이 눈을 감으셨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이 홀어머니 한 분 모시지 못해 요양원에서 돌아가시게 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당장은 장례 절차가 우선이었다. 상조업체와 연락하고 장례식장을 정하고, 일가친척이며 친지들에게 부고하고, 문상객 맞을 준비와 음식이며 장지에서의 절차 등을 챙기느라, 정작 어머니에 대한 추모는 뒷전이 되었다. 밤 11시에 돌아가셨으니 자식들 하루만 고생하라고 가셨을 거라는 입에 발린 위로를 정말 어머니 뜻으로 믿고 싶었다. 이 손님 저 손님에게 고마워하며 술을 따르고, 고객 접대하듯 문상객을 맞으며 이틀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몇 년 만에 만나는 사촌과 십여 년 전 근무했던 직장 동료, 천리 길을 달려와 준 친구들이 고맙고 반가웠어도 아들인 나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분향소를 지키며 가족을 위해 헌신하신 것을 고마워하고, 함께했던 날들을 추억하며, 다시 만날 날을 소망하며 기도하는 시간으로 보냈어야 했다는 후회가 문득문득 밀려든다.

환절기 탓인지 돌아가시는 분들이 부쩍 많아졌다. 코로나로 인해 장례식장 분위기가 두어해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대응 단계와 지역에 따라 달리 적용되지만 100명 이상은 동시에 조문할 수 없고, 조화도 전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 경우가 드물다. 식장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친인척들이고 조문객들이 오히려 적어진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나는 지금이 우리 장례문화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체면치레를 위해 허장성세하듯 장례식장을 잡고 조화를 복도 가득 채우며, 밀려드는 문상객 수를 자신의 영향력으로 여길 일이 아니라,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며 가족들이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며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고인이 바라는 장례일 것이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에 의하면 1가구당 평균 장례 비용은 1380만 원이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초라하게 모실 수 없다는 생각으로 수의와 관을 고르고, 조문객들에게 소홀히 할 수 없으니 VIP실이나 특실에 빈소를 차린다. 결국 장례비용의 70~80%는 조문객들이 대부분 남기고 나가는 음식대나 불에 태워 없어지는 일회용품들이다. 경사에는 못가더라도 애사에는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네 인심이니 슬픔을 나눈다는 의미로야 아름답고 훌륭한 생각이지만 진심으로 고인을 추도하러 가는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작은 장례식은 없을까? 가까운 가족들과 친지들만 참석하는 작은 결혼식이 무시할 수 없는 대세가 되어가듯 작은 장례식도 몇 해 전부터 생겨나고 있다. 값비싼 수의 대신 고인이 즐겨 입던 옷을 입혀드리고, 나무관 대신 종이관을 사용하며, 조문객 대부분이 남기고 가는 음식을 내는 대신 다과로 바꾸어 음식쓰레기도 줄이는 친환경적인 방식이다. 다만 이것은 비용을 절약하자는 것이 아니라, 애도에 집중하자는 것이고, 화려한 예식이 아닌 고인의 생을 기리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차이는 조문객을 맞느라 시간과 비용을 쓰는 것이 아니라, 고인에 대한 추모와 가족 간의 관계를 돌아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문상하는 것 역시 상주들에게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가족들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도 꼭 가야할 사람들만 장례식장을 찾는 것도 서로를 배려하는 일일 수 있다. 조의를 표하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조문은 발인 전에만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윤리며 규범이 아무리 달라진대도 장례는 가신 분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자리이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 모이기가 힘들어진 지금, 크기보다 가치를 지향하는 작은 장례식으로 바꿔 나갈 수 있다면 나처럼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도, 사회적 비용도 줄어 훨씬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