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몽마르트르 거리 풍경’이 최근 경매에서 약 175억 원에 낙찰되었다. 엄청나게 많은 액수이지만 고흐의 작품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자신을 치료해 준 의사에게 치료비 대신 그려 준 그림 ‘가셰 박사의 초상’은 1990년에 약 880억 원에 팔렸다. 평생 900여 점가량 그림을 남겼으니 고흐 그림의 자산 가치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고흐는 동생 테오가 딱 한 점 사 준 것을 제외하면 살아생전에 그림을 한 점도 팔지 못했다고 한다.아무도 그 재능을 알아주지 않은 탓이다.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열다섯 살 때 중학교를 자퇴한 후 화랑 점원, 교사, 보조 목사, 서점 점원, 전도사 등 여러 일을 해 보았지만 불안정한 정신 상태와 과격한 성격 탓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시엔’이라는 매춘부와 동거 생활은 가족과 주위 사람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그녀와 헤어진 후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된다.

그림에 재능을 보여 화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알아주는 이가 없어 평생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의존하였다. 자신의 귀를 자르는 등 불안정한 정신 상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던 비극의 절정기에 오히려 수많은 걸작을 남겼으며 권총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고흐의 삶이 오죽 불행했으면 조용필은 ‘킬로만자로의 표범’에서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라고 노래했을까? 그렇게 천재는 살아서 불행했고 죽어서야 빛을 발했다. 비단 고흐뿐이랴.

타임지 선정 20세기 최고 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며 7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30만 부가 팔리고 있는 미국 현대문학의 정수 ‘호밀밭의 파수꾼’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32세 때 쓴 소설이다. 젊은 날에 발표한 작품이 워낙 큰 성공을 거두다 보니 이를 뛰어넘을 후속작은 나오지 않았다. 작품 활동도 점차 뜸해지면서 작가는 대중의 관심을 피해서 은둔하다가 더는 히트작을 내지 못하고 91세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인생 절정이 너무 일찍 찾아온 탓이었다.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이는 주로 대중음악에서 사용되는 말로 노래 한 곡 반짝 히트한 후 잊히는 가수를 이르는 말이다. 수많은 가수가 히트곡 하나 없이 가수 생활을 마감하는 세계에서 히트곡 한 곡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일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맛본 단맛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아니 맛본 것보다 더 큰 고통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영화계 최대의 화제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었다. 올해는 단연 ‘미나리’와 배우 윤여정이다. 영화 ‘미나리’는 아카데미상 여섯 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75세 배우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배우조합상 여우조연상,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상을 받는 바람에 몇 관왕이니 세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으니 그녀의 수상 소식을 알리는 신문 기사 제목이 ‘윤여정 또 수상’일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영화인의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윤여정은 25세에 데뷔작 ‘화녀’로 제1회 시체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던 주연급 배우였고 한동안 전성기를 누리는 듯했다. 하지만 많은 여배우가 나이 들어가면서 은퇴하여 젊고 아름답던 모습 그대로 대중의 기억 속에 박제되는 것과 달리 윤여정은 데뷔 후 5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할머니 역을 비롯해서 주연·조연 혹은 악역 등 가리지 않고 여러 역할을 맡으며 늘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성장하였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꽃이 아니라는 걸 알죠. 조연이란 게 거름이죠. 나는 꽃들이 잘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배우 윤여정은 거름이 아니라 꽃이다. 조연이 아닌 주연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을 뜻하는 말이다. 그녀의 화양연화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 그러고 보면 우리 삶의 화양연화는 언제쯤에나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