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으로 스무 번째 오토바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천명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오십이 넘자 신체적으로 여기저기 조금씩 처지는 데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이 그날이 그날인 채로 지내고 있었다. 쉰일곱이라는 나이에 훅 들이닥친 갱년기는 시도 때도 없이 몸 온도를 높였다.

대중교통 수단으로는 나의 열증을 식혀 줄 수가 없었다. 걷거나 자전거라도 타야 했다. 고심 끝에 작은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다. 그러나 작은 오토바이는 강한 바람이 불면 휘청이는 등 불안한 면이 있어 좀 더 큰 오토바이에 도전하기로 했다.

첫 번째 관문은 2종 소형면허 취득이다. 8월의 뙤약볕에서 열 시간 동안이나 가다 서는 연습을 반복했다. 일보일배하는 심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면허증을 거머쥐었다. 세계 챔피언 벨트라도 딴 것처럼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그리곤 바로 오토바이 대리점에 가서 내 몸무게보다 네 배나 더 나가는 큰 오토바이를 덜컥 계약해 버리고 말았다. 오토바이 대리점에서는 내가 오토바이를 사들인 최고령 여성 고객이었으므로 ‘조심해서 타셔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오토바이를 2000km쯤 타고 나서야 간신히 혼자서 좌로 가고 우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럴 즈음 한 방송국으로부터 국내 여행과 음식을 주제로 하는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해 줄 것을 제안해 왔다. 음식에 관한 프로그램이 워낙 많다 보니 타 방송국의 유사 프로그램과 차별화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열세 지역을 달려 보았다. 올봄에도 일곱 곳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 아닌지 수도 없이 의심하였는데, 그 무모한 도전은 어느새 ‘무모한 자신감’을 키워 내고 있었다.

‘부르릉’ 하고 시동을 거는 순간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여행자나 탐험가가 뇌리를 스쳤다. 당나라 사람으로서 서역에 다녀와 대당서역기를 작성한 현장, 이탈리아 상인의 아들로 중국에 다녀와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폴로, 신라 시대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인도까지 여행하고 돌아온 혜초, 조선 시대 실학자로 당시의 대제국이었던 청나라를 방문하여 그 모습을 고스란히 적어 낸 열하일기의 박지원, 27년간 아시아·유럽·아프리카 3대륙을 유람했던 이븐바투타까지. 그들의 가슴도 나처럼 이렇게 두근거렸을까?

인생도 여행도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거라면 내 한번 다녀 보리라 마음먹고 시동을 걸었다. ‘부응’ 하는 시동 소리와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려 보았다. 오십이라 안 될 줄 알았던 것들이 오십이어서 더 진하게 다가왔다.

제주 바다 저 아랫녘에서 왔을 봄은 오자마자 벚꽃을 피워 냈다. 봄이 왔다고 벚꽃이 그렇게 소식을 전해 오더니 금세 색이 짙어진 개나리와 진달래까지 나를 반긴다. 코끝에 진하게 머무는 향은 라일락이었다가 아카시아였다가 인동초로 넘어간다.

바다는 파도를 만들어 뭍으로 뭍으로 바다 향을 나르고 또 나른다. 종일 쉼이 없다. 바닷물을 뚫고 올라오는 일출은 그 자체가 강한 에너지로 무엇이든 소망하면 다 이루어 줄 것만 같다. 일몰은 일몰대로 하루하루 열심히 산 사람들을 위로하는 듯하다.

나무는 한 그루였다가 두 그루였다가 작은 산을 만들더니 거대한 산맥을 만들어 돌고 도는 길을 또 만들어 낸다. 항아리 모양으로 둘러싸인 숲에서 하룻밤을 지내려니 동이 트기도 전에 시작된 새들의 노랫소리가 마치 교향악인 양 귀를 즐겁게 한다.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한 연한 나뭇잎은 빛을 받아 차라리 눈이 부시다. 계곡을 휘돌아 흐르는 물소리도 창공의 새소리와 더불어 돌림노래를 하는 듯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내달리다 푸른 하늘이 보이면 내려서 하늘 한 번 보고, 또 정겨운 풍경이 보이면 잠시 쉬며 심호흡도 해 본다. 달리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내 안의 묵은 찌꺼기가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렸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렇게 순수했을까? 컴퓨터의 리셋(reset)을 누르면 화면이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나의 하루도 매일매일 새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