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반란군’에 맞선 정선엽 병장을 아십니까
2023년 11월 30일(목) 19:40
영화 ‘서울의 봄’ 육군본부 B-2벙커 지키던 ‘조민범’의 실제 인물
동신고 재학시절 ‘흥사단’ 활동…조선대 다니다 자원 입대
공수부대 총기 탈취 시도에 저항…제대 3개월 앞두고 사망
영화에선 한 컷 그쳐 아쉬워…2022년 ‘순직’서 ‘전사’ 정정
연일 흥행돌풍이 불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 에서는 두 명의 전사자가 나온다.

한 명은 정해인 배우가 연기하는 오진호 소령(가명)으로 실제 12·12 군사 쿠데타 당시 숨진 김오랑 소령을 모티브로 했다. 남은 전사자 한명은 영화 후반부에서 육군본부 B-2벙커를 지키던 ‘조민범’(가명)병장이다.

영화에서 김범수 배우가 연기한 조 병장은 반란군들의 총기 난사에 쓰러지는 단 한 컷으로 지나간다.

조 병장은 실제 당시 반란군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국방부 제50헌병중대 소속 고(故) 정선엽(당시 23세) 병장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에서는 12·12 군사 쿠데타 당시 반란군들의 중요 핵심 인물들의 중심으로 진행되는 탓에 초병인 정 병장의 사망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대학교 학생이던 정 병장은 지난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 당시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연결하는 지하벙커 초소에서 초병으로 근무하던 중 무력진압에 나선 1공수여단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영암군 금정면이 고향인 정 병장은 3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정 병장은 어린시절부터 총명해 바로 위의 형인 훈채씨와 둘이 광주에 나와 유학생활을 했다.

집안이 어려워 훈채씨는 광주상고를 다니다 바로 은행에 취업해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고, 부모님과 형의 바람을 알던 정 병장은 조대부중, 동신고를 졸업하며 학업에 열중했다.

의협심이 좋고 애국심이 남달랐던 정 병장은 동신고 재학당시부터 ‘흥사단’ 활동도 해왔다. 조선대 전기공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정 병장은 자원입대를 했고 태권도를 하고 덩치가 좋았던 탓에 서울 용산 국방부를 지키는 헌병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를 석 달 앞둔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등 신군부의 군사반란이 일어났다. 13일 새벽 신군부 주요 인물인 박희도 1공수여단장이 지휘하는 공수부대 병력이 국방부를 점령하려고 몰려온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반란군의 “비키라”는 명령에 거부하다 총격을 맞아 쓰러졌지만, 그의 죽음은 실제와는 약간 다르다.

정 병장의 죽음에 대해서는 지난 2022년 전까지는 ‘순직’으로 기록돼 있었다. 국방부가 ‘정 병장은 1979년 12월. 13일 새벽 1시40분께 국방부 B-2 벙커 경계근무 중, 계엄군 증가 인원과의 오인에 의한 총기사고로 통합병원 응급실에서 사망에 이르렀다’고 결론냈기 때문이다.

1공수여단이 기록한 당일 작전일지에는 “1979년 12월 13일 새벽 2시10분께 1공수여단 병력이 상부의 벙커 돌격을 지시에 따라 벙커 출입구에 헌병 근무자 2명 중 1명은 체포하고, 1명은 반항 사격과 함께 벙커로 도주해 사살됨”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군 인사법 상 ‘전사자’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사람’,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43년 동안 정 병장은 전두환의 반란군에 대항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국방부 산하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회) 조사 결과 정 병장은 ‘전사자’로 결정됐다.

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현장에 있던 대위는 “‘B-2 벙커로 진입하라’라는 명령을 받고 약 50명의 대원을 이끌고 청사로 진입 중, B-2 벙커 입구를 지키던 헌병이 우리 대원의 무장해제 요구를 거절해 결국 총을 발사해 사망했다는 사후 보고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정 병장이 권총에 의해 사살됐다’는 진술을 하는 일부 군인들도 있었지만 정병장의 후임병과 다수의 당시 군인들은 “벙커에 침입하던 공수부대원이 헌병의 소총을 탈취하려고 했고, 이에 헌병(정 병장)이 거세게 저항하자 총격을 가해 사망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조사 결과 13일 새벽 1시40분께 국방부를 점령한 공수부대원들이 정 병장의 엠(M)-16 소총을 빼앗으려 하자 정 병장은 “중대장의 지시 없이는 줄 수 없다”고 맞섰고, 이 과정에서 정 병장은 공수부대원이 쏜 총에 목과 가슴에 4발의 총을 맞고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국방부는 정병장의 형 훈채씨에게 정병장의 전사확인서를 보내왔다.

영화를 본 훈채 씨는 “동생의 명예가 회복돼 자랑스럽지만 영화에서는 관련 내용이 부각되지 않아 아쉬웠다”면서 “하지만 동생을 죽음으로 내몰고간 전두환이 12·12뿐 아니라 5·18에 대한 사죄의 한마디도 없이 사망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괘씸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 병장의 고등학교 동문들은 지난 2017년 동신고에서 정 병장을 기리는 기념식수를 진행했고, 이어 조선대에서 정 병장의 명예졸업장 수여를 추진하는 등의 추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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