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장석주 시인
2025년 01월 02일(목) 18:30 가가
“시행을 끌고가는 능란함에서 내공 느껴졌다”
요즘 삶의 빡빡함을 반영한 탓일까. 삶의 곤핍과 우울한 정조를 에두르지 않고 보여주는 시들이 주를 이루었다. 응모작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는데, 그것은 시에 현실의 중압감이 고스란히 삼투된 까닭에서일 테다. 막장 현실에서 떨어져 나온 사유의 파편들, 소상공인들이 현실과 맞서 고투하는 모습들, 일그러진 현실이 불가피하게 불러온 꿈의 좌초를 다룬 시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응모자들이 다 진지했지만, 개성이 돋보이는 자기의 목소리, 산술적 평균을 깨고 솟구치는 이미지의 돌발성, 사유의 도약으로 독자의 의식을 내리치는 죽비 같은 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열 네 분의 작품들이 본심에 올랐는데, 최종심에서 검토한 것은 조지은 씨의 ‘이상한’ 외 2편, 이문희 씨의 ‘생각하는 나무’ 외 2편, 박시유 씨의 ‘엉겅퀴’ 외 2편, 김탄희 씨의 ‘쌍둥이자리’ 외 2편 등이다. 조지은 씨는 상투성을 깨는 이미지와 감각의 돌올함에서 단연 돋보이고, 박시유 씨는 핍진한 체험에서 길어낸 시적 진정성이 예사롭지 않으며, 김탄희 씨는 투고작 ‘921’을 읽을 때 눈이 번쩍 뜨였는데, 모호함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에 묘한 매혹이 있었다. 헌데 ‘921’이 소품이고, 다른 응모작들이 이 시를 받쳐주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다들 개성과 시적 수일함이 또렷했지만 심사자가 당선작으로 고른 시는 이문희 씨의 ‘생각하는 나무’다. 시행을 끌고나가는 능란함에서 만만치 않을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시편의 수준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두루 고른 점, 다른 응모자들과 견줘 시의 완성도에서 앞선 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파리가 많다는 건 생각이 많다는 증거랍니다”, “바다가 파도 공장이라면 하늘은 구름 공장일까/누가 저 많은 구름들을 져 날랐을까” 같은 싯구들은 알아듣기 쉬우면서도 천진한 동화적 발상을 드러낸다. 각각의 시행들이 품은 사유의 조각이 시의 전체와 유기적으로 맞물린 데서 더욱 돋보였다는 걸 밝힌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아깝게 떨어진 낙선자에게는 위로를 전한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문학평론가·에세이스트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 등 다수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문학평론가·에세이스트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