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청정” 표방한 전남, 백신접종·방역은 소홀했다
2025년 03월 19일(수) 20:37
구제역 행동 지침 안지키고 공수의사 없이 접종하기도
“설마 별 일 있겠어?”가 대규모 한우 살처분으로 이어져

1934년 이후 처음 발생한 전남 지역 구제역이 연일 확산하는 가운데 ‘청정지역’에 대한 믿음으로 방역과 백신 접종·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이나온다. 전남지역 한 한우 농가 모습. <광주일보 DB>

무려 91년 만에 전남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구제역은 ‘청정지역’에 대한 믿음으로 방역과 백신 접종·관리에 소홀했던 농가와 방역당국, 방역 접종 매뉴얼 미준수 등이 맞물리면서 빚어진 ‘방역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설마 별일 있겠어’라는 안이한 생각과 구제역 긴급행동지침(SOP)을 무시한 방역 불감증이 대규모 한우 살처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방역담당 공무원 입회하라’는 규정 안지키고=전남지역 구제역 확산 사태를 지켜본 수의사들은 이미 마련해놓고 있는 정부의 구제역 긴급행동지침(SOP)을 지키지 않는 행위가 관행처럼 일반화된 점을 방역 참사의 한 원인으로 꼽았다.

농림식품축산부는 긴급행동지침을 통해 백신공급 및 접종 방법을 안내하면서 ‘백신은 백신 공급반(공무원 등)을 통해 공급해 농가가 자가접종을 실시토록하고 확인(입회)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규정은 현장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게 축산 농가와 방역 전문가들 지적이다.

함평지역 한우 사육 농민인 A씨는 “7년 째 한우를 사육중이지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할 때 공무원이 입회한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면서 “공무원이 입회해야 하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라고 했다.

입회인 유무를 떠나 농장주들의 자가 접종 능력 자체가 높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소임상수의사회 소속 수의사는 “구제역 백신 접종 매뉴얼은 백신의 보관 방법, 주입 위치, 주입법, 투여 후 기록 법 등 자세히 적혀 있지만 현장에서는 백신을 상온에 보관하거나 주입하지도 않은 채 주사기를 빼거나 한 개의 주사기를 여러번 사용하는 경우 등 매뉴얼 미준수 실태가 보인다”고 말했다.

구제역 백신접종 가이드라인은 항체 형성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접종법을 백신 접종 전·중·후로 나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접종 전 냉장상태(2∼8도) 보관하다가 접종 직전에는 백신을 상온(15∼25도)에 놓아 두었다가 사용할 것 ▲ 가급적 빠른 시간 내(2∼3시간 내)에 접종할 것 ▲접종 전에 기포가 생기지 않도록 병을 천천히 20회 정도 흔들어 고르게 섞을 것 ▲주사바늘을 수직으로 해 소 목 부위 근육에 접종하고 완전히 주입될 수 있도록 3~5초 간 천천히 주입할 것 ▲주사바늘은 ‘1침 1두’를 원칙으로 할 것 ▲접종 개체는 반드시 표식을 남길 것 등 준수해야할 수칙을 세부적으로 적어놓았지만 비전문가인 농가들 입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당수 농장주들은 소의 목에 백신 주사를 놓을때 소가 움직이거나 흥분하는 경우가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접종 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채 백신 을 접종할 경우 항체 형성도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19일 기준 전남지역 구제역 발생 농가 중 60%가 농장주 스스로 백신 접종을 한 농가인 것으로 파악된 상태다. 최초 발생 농장을 비롯, 3·5·6·8차 발생 농가에서도 자가 접종 농가라는 점에서 접종 규칙 준수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공수의 투입 예산도 없어=전문가인 공수의사가 직접 한우 농가를 돌아다니며 원칙대로 접종하는 게 최선이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전남도가 구제역 백신 접종 사업비로 확보한 예산은 28억 400만원. 전남지역에 배치된 공수의사 120명이 46만 7000마리에 직접 투여할 수 있는 금액이다. 전남지역 사육 한우가 63만 8000마리에 달한 점을 고려하면 나머지(27%)는 공수의 없이 직접 접종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항체 형성률도 ‘불량’ 접종의 의혹을 낳고 있다. 전남도가 밝힌 지난해 도내 한우의 구제역 항체 형성률은 96.8%로, 전국 평균보다 1.2%포인트 낮은 수치다.

수의사들은 “전국 평균보다 낮은 수치는 전남도내 구제역 백신 접종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수의가 부족해 구제역 행동지침 준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남도 방역당국 관계자는 “여건 상 공무원이 접종 시에 입회하기란 불가능하다”면서 “공병 확인 등으로 접종확인을 대신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남지역 한 공수의는 반박했다. “10명의 공수의가 10일 정도면 집중 접종을 통해 5만 두 정도는 접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전남지역에는 19일 현재 10건의 구제역이 발생했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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