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해남 흑천마을 부녀회장 유우코씨
소메야 유우코(39)씨는 해남군 옥천면 흑천마을 부녀회장이다. 흑천마을 53가구의 부녀를 대표해 마을의 각종 대소사를 챙기고 회비를 관리하는 ‘중책’을 맡은 지가 이미 1년이 넘었다.
지난 1997년 2월, 고향인 일본 도쿄의 이바라키현을 떠나 남편 임경진(39)씨와 함께 이 마을에 정착한 지 10년 만에 ‘외국인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한 마을을 이끄는 어엿한 ‘리더’가 된 것이다.
그녀는 흑천마을에서 단순한 부녀회장 이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마을 어른들은 유우코 씨를 ‘키웠다’고 말하며 예뻐한다.
“이뻐 죽겄어, 복이 있어야 이런 사람을 얻제. ‘우리(유우코씨의 큰딸)엄마’는 마을 사람들이 키웠어”
17일 오전 옥천면 흑천마을 복지회관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화투를 치고 있던 윤미순(76) 할머니는 유우코씨의 어깨를 토닥이며 “우리엄마가 새댁이었을 때부터 죽 지켜봐왔다”며 “어른들에게 잘하고, 붙임성이 있어서 마을 주민 모두가 믿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유우코씨도 “어른들이 많이 도와줘 마을 일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며 “홀로 사시는 노인들이 많고 또 주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도 제법 많아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즐거워 했다.
그러나 유우코 씨도 처음 흑천마을에 발을 디뎠을 땐 마음속으로 무척 놀랐다고 한다. 번화한 일본의 도쿄에 비해 너무나 발전이 뒤떨어져 있는데다, 한국 농촌의 ‘공동체’ 문화가 일본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만큼 마음 고생도 심했다.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방문을 여는 마을 사람들을 보고 처음엔 간섭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며 “언어가 통하지 않아 모든 것이 더욱 어렵게 느껴졌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처음엔 마을 행사에도 나가지 않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녀는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곰곰 생각해보니 지나친 간섭이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애정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방안에 있기보다는 밖에 나가서 부닥치고 어울려야 하루라도 빨리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유우코씨는 사투리부터 배웠다. 표준말보다 사투리를 쓰는 것을 마을 어른들이 기특해 한다는 점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시집와서 3년간은 시어머니나 마을 어른들에게 ‘아니오’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고 무조건 ‘예’라고 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또 하나, 집에 있기보다는 매일 밖으로 나가서 이웃과 어울리겠다고 다짐했다. 유우코씨의 이 같은 노력에 이웃들도 한 명씩 마음을 문을 열었고, 그 결과는 주민 100% 찬성에 따른 부녀회장 추대였다.
“스스로 마음을 바꾸고, 어울리려고 노력하니 어른들도 마음을 열어 주셨다”는 유우코 씨는 “곁에 두고 음식을 가르쳐주시며 해남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시어머니, 농사를 지으면서도 직접 한글을 가르쳐 주며 든든한 외조를 해 준 남편, 그리고 귀여운 세 아이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정 많은 한국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이웃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한다는 유우코씨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Bg/홍행기기자 redplan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