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2세들의 힘겨운 나날 <17> 일본인 학부모의 편지
2007년 05월 20일(일) 18:57 가가
"한국인의 따뜻한 정의 문화 온누리 가정으로 스며들길..."
오꾸 마유미(43)씨는 지난 1998년 한국으로 건너와 9년째 한국살이를 하고 있다. 한국인 남편은 직장 때문에 거꾸로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다. 때문에 중학생 둘, 초등학생 셋 등 다섯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전적으로 오꾸씨의 몫이다. 시어머니도 힘을 보태고 있다.
2년 전부터는 일본어강사로 활동하며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억척엄마이기도 하다. 지난해 광주시교육청 다문화가정 교육지원연구회 교사들과 초등학교 학생회장단을 대상으로 자신의 체험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오꾸씨는 “저야 스스로 한국을 선택한 만큼 조금 힘들어도 괜찮지만, 한국인인 아이들이 따돌림 등으로 괴로워할 때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다문화 및 국제이해 교육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아이들 키우는데 정부 보조가 많이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사교육비가 큰 부담이 된다”고도 했다.
다문화가정 학부모인 오꾸씨가 광주일보에 보내온 체험담을 요약해 싣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왔습니다. 남편은 한국 사람이고, 중학교 3학년 아들, 1학년 딸,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딸, 1학년 아들 등 다섯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우리 가족은 1998년 2월까지 일본에서 살았고. 아이들은 한국에서 키우고 싶어하는 아빠의 희망 때문에 큰 아이가 7살때 한국에 왔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한국어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한글도 잘 모르는 엄마였습니다.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모르던 한국에 대해 알게 되었고, 또 자녀들 모두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어느 봄날 벚꽃길을 걸으면서 세계 모든 나라가 하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본의 상징인 벚꽃이 피는 봄, 여전히 한국에서도 고향과 똑같은 벚꽃이 피었습니다. 어디에서든 마음이 중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제가 이국인으로서 경험했던 일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된 시점에 겪은 에피소드부터 하나 소개할께요.
어느 날 두부를 사러 가게에 갔다가 한 모를 사고 더 사고 싶은데 한국말로 적당한 표현을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일본에서는 “하나 더”라는 말을 “모 히토쯔”라고 하는데 하나 둘 이라는 한글은 아니까 “모 하나 주세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무 하나를 주셨어요. 필요하지도 않은 무를 거절도 못하고 가져오면서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 더” 이 말은 제가 좋아하는 한국 말 가운데 하나 입니다. 사랑도 하나 더 행복도 하나 더.
한국인의 ‘더’는 정말 좋은 정의 문화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을 보면 인정이 넘쳐나는 것같습니다. 저는 이 점이 너무 좋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추억이지만 그때는 너무 당황하고 모르는 것 때문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얼굴은 비슷하지만 언어의 장벽으로 이방인이 된 듯한 답답한 심정을 아마 여러분은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변에 늘 따뜻한 분들이 있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죠. 지금은 제가 한국 엄마보다도 더 한, 진짜 아줌마가 됐다고 한국 친구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2학기에는 역사 공부에 본격적으로 들어갑니다. 한국과 일본의 슬픈 역사도 공부합니다. 독도 문제가 날마다 뉴스를 장식하던 3년 전 그 때 내성적인 우리 딸은 퍽 힘들었습니다. 아빠 나라는 한국이고, 엄마 나라는 일본이어서 두 나라 관계가 좋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런데 엄마가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로 남자 아이들한테 왕따를 당했나 봅니다. 엄마에게는 말을 하지 못한 채 가슴에 깊은 상처를 가졌습니다. 딸의 아픔을 대신해 줄 수도 없고 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이쁜 딸, 아이들이 너에게 나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고 우리나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너를 일본 사람으로 생각하고 때린 것 같아. 그러니 마음은 섭섭하지만 우리가 이해하자. 두 나라의 아픈 역사로 인한 상처를 우리 예쁜 딸이 온 몸으로 체험해냈구나. 더 많이 성장하는 공부 시간이 됐다고 엄마는 생각한다”
딸은 “알았어요”하며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한참 민감한 시기 때 받은 상처로 오랫동안 말없이 지내는 딸을 보며 오래된 전쟁의 역사가 미웠습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침략자로 남은 일본인으로서 한국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그렇지만 아픈 과거사로 인해 이런 일이 언제까지나 되풀이 된다면 한국, 일본 두 나라에 모두 손해가 되지 않겠어요?
우리 어린이들이 가교가 되어 ‘나라’라는 벽을 넘어서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늘 웃는 학생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국인으로서 문화적 차이를 실감하는 경험도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식사할 때 그릇을 손에 들면 “거지같다”고 꾸중을 듣습니다. 일본에서는 놓고 먹으면 “개 같다”고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밥이나 국은 숟가락으로 뜨는 것이 예의지만, 일본에서는 꼭 젓가락을 써야 합니다. 그 젓가락은 한국에서는 상에 수직으로, 일본에서는 꼭 수평으로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식사할 때 무엇보다 제가 놀란 것은 한국에선 생선이나 찌개 등 반찬이 각자에게 나눠지지 않고 밥상 한 가운데 놓고 남녀노소할 것 없이 사이좋게 함께 먹는다는 것이였습니다. 처음엔 놀라운 충격이었지만 차츰 식구들이 맛있게 함께 먹는다는 것에 의미를 두게 됐습니다. 지금은 제가 이 곳과 고향의 문화 양쪽을 모두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 느낀답니다.
행복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행복은 ‘문화의 자(척도)’로 보는 것이 아니고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괴어 오르는, 그런 감정인 것 같습니다.
저는 날마다 한국에서 사는 일본 엄마로서 가슴 속에서 괴어 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 지금도 노력중입니다. 제가 원해서 한국을 선택해 시집온 만큼 저는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습니다. 시어머님하고 같이 살면서 부딪치는 일도 많고, 부족한 아내, 부족한 엄마로서 과제도 많지만 모든 일이 어느덧 나를 향한 사랑으로 느껴지면서 정 많은 한국의 문화가 저를 많이 변화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곳 한국은 저희 일본문화에서는 보기 힘든 정의 문화, 가정의 문화를 가진 우수한 민족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이웃인 일본문화 또한 좋은 점은 서로 교류하여 세계화의 일원으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부족한 제게 일곡동사무소에서 일어 강습 기회를 주셔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들의 뜨거운 학구열과 한국 문화체험이 저를 더욱 성숙시켜 줍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광주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개인적인 문화체험담이 한·일을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면 더욱 행복하겠습니다.
〈제3부 끝〉
/정리=정후식기자 who@kwangju.co.kr
2년 전부터는 일본어강사로 활동하며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억척엄마이기도 하다. 지난해 광주시교육청 다문화가정 교육지원연구회 교사들과 초등학교 학생회장단을 대상으로 자신의 체험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오꾸씨는 “저야 스스로 한국을 선택한 만큼 조금 힘들어도 괜찮지만, 한국인인 아이들이 따돌림 등으로 괴로워할 때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다문화 및 국제이해 교육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아이들 키우는데 정부 보조가 많이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사교육비가 큰 부담이 된다”고도 했다.
다문화가정 학부모인 오꾸씨가 광주일보에 보내온 체험담을 요약해 싣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왔습니다. 남편은 한국 사람이고, 중학교 3학년 아들, 1학년 딸,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딸, 1학년 아들 등 다섯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우리 가족은 1998년 2월까지 일본에서 살았고. 아이들은 한국에서 키우고 싶어하는 아빠의 희망 때문에 큰 아이가 7살때 한국에 왔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한국어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한글도 잘 모르는 엄마였습니다.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모르던 한국에 대해 알게 되었고, 또 자녀들 모두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어느 봄날 벚꽃길을 걸으면서 세계 모든 나라가 하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본의 상징인 벚꽃이 피는 봄, 여전히 한국에서도 고향과 똑같은 벚꽃이 피었습니다. 어디에서든 마음이 중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제가 이국인으로서 경험했던 일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된 시점에 겪은 에피소드부터 하나 소개할께요.
어느 날 두부를 사러 가게에 갔다가 한 모를 사고 더 사고 싶은데 한국말로 적당한 표현을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일본에서는 “하나 더”라는 말을 “모 히토쯔”라고 하는데 하나 둘 이라는 한글은 아니까 “모 하나 주세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무 하나를 주셨어요. 필요하지도 않은 무를 거절도 못하고 가져오면서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 더” 이 말은 제가 좋아하는 한국 말 가운데 하나 입니다. 사랑도 하나 더 행복도 하나 더.
한국인의 ‘더’는 정말 좋은 정의 문화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을 보면 인정이 넘쳐나는 것같습니다. 저는 이 점이 너무 좋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추억이지만 그때는 너무 당황하고 모르는 것 때문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얼굴은 비슷하지만 언어의 장벽으로 이방인이 된 듯한 답답한 심정을 아마 여러분은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변에 늘 따뜻한 분들이 있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죠. 지금은 제가 한국 엄마보다도 더 한, 진짜 아줌마가 됐다고 한국 친구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2학기에는 역사 공부에 본격적으로 들어갑니다. 한국과 일본의 슬픈 역사도 공부합니다. 독도 문제가 날마다 뉴스를 장식하던 3년 전 그 때 내성적인 우리 딸은 퍽 힘들었습니다. 아빠 나라는 한국이고, 엄마 나라는 일본이어서 두 나라 관계가 좋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런데 엄마가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로 남자 아이들한테 왕따를 당했나 봅니다. 엄마에게는 말을 하지 못한 채 가슴에 깊은 상처를 가졌습니다. 딸의 아픔을 대신해 줄 수도 없고 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이쁜 딸, 아이들이 너에게 나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고 우리나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너를 일본 사람으로 생각하고 때린 것 같아. 그러니 마음은 섭섭하지만 우리가 이해하자. 두 나라의 아픈 역사로 인한 상처를 우리 예쁜 딸이 온 몸으로 체험해냈구나. 더 많이 성장하는 공부 시간이 됐다고 엄마는 생각한다”
딸은 “알았어요”하며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한참 민감한 시기 때 받은 상처로 오랫동안 말없이 지내는 딸을 보며 오래된 전쟁의 역사가 미웠습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침략자로 남은 일본인으로서 한국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그렇지만 아픈 과거사로 인해 이런 일이 언제까지나 되풀이 된다면 한국, 일본 두 나라에 모두 손해가 되지 않겠어요?
우리 어린이들이 가교가 되어 ‘나라’라는 벽을 넘어서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늘 웃는 학생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국인으로서 문화적 차이를 실감하는 경험도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식사할 때 그릇을 손에 들면 “거지같다”고 꾸중을 듣습니다. 일본에서는 놓고 먹으면 “개 같다”고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밥이나 국은 숟가락으로 뜨는 것이 예의지만, 일본에서는 꼭 젓가락을 써야 합니다. 그 젓가락은 한국에서는 상에 수직으로, 일본에서는 꼭 수평으로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식사할 때 무엇보다 제가 놀란 것은 한국에선 생선이나 찌개 등 반찬이 각자에게 나눠지지 않고 밥상 한 가운데 놓고 남녀노소할 것 없이 사이좋게 함께 먹는다는 것이였습니다. 처음엔 놀라운 충격이었지만 차츰 식구들이 맛있게 함께 먹는다는 것에 의미를 두게 됐습니다. 지금은 제가 이 곳과 고향의 문화 양쪽을 모두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 느낀답니다.
행복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행복은 ‘문화의 자(척도)’로 보는 것이 아니고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괴어 오르는, 그런 감정인 것 같습니다.
저는 날마다 한국에서 사는 일본 엄마로서 가슴 속에서 괴어 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 지금도 노력중입니다. 제가 원해서 한국을 선택해 시집온 만큼 저는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습니다. 시어머님하고 같이 살면서 부딪치는 일도 많고, 부족한 아내, 부족한 엄마로서 과제도 많지만 모든 일이 어느덧 나를 향한 사랑으로 느껴지면서 정 많은 한국의 문화가 저를 많이 변화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곳 한국은 저희 일본문화에서는 보기 힘든 정의 문화, 가정의 문화를 가진 우수한 민족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이웃인 일본문화 또한 좋은 점은 서로 교류하여 세계화의 일원으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부족한 제게 일곡동사무소에서 일어 강습 기회를 주셔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들의 뜨거운 학구열과 한국 문화체험이 저를 더욱 성숙시켜 줍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광주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개인적인 문화체험담이 한·일을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면 더욱 행복하겠습니다.
〈제3부 끝〉
/정리=정후식기자 who@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