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현재 광주·전남의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6천400여명. 그러나 외국인을 배려한 문화공간이나, 복지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여가와 문화’ 자체를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광주 외국인노동자센터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 79명 가운데 가장 많은 27명(34.2%)이 ‘여가시간에 주로 하는 일’로 ‘잠자기’를 꼽았다.
하루 평균 8∼9시간씩 ‘기계처럼’ 일하다 모처럼 맞은 휴일에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통 잠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휴일 바깥나들이를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PC방. 지난 2일 광주 하남산단의 한 외국인 전용 식품점에서 만난 외국인 10명 가운데 9명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PC방을 꼽았다.
이들의 PC방 소일거리는 리니지 등 인터넷 게임이 아니라 고국에 있는 가족들과 채팅을 하거나, 안부 메일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이 마저도 호사인 경우도 있다.
캄보디아인 생키(32)씨는 “PC의 자판은 영어와 한국어 글자 밖에 없어 모국어인 크메르어를 입력할 수 없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화상파일로 고국의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게 고작이다”며 “그나마 갈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PC방은 ‘천국’”이라며 웃었다.
이들이 쉬는 날 연중 행사처럼 큰 맘먹고 찾는 곳은 금남로, 충장로 등 광주 시내. 돈을 벌러 한국에 왔기 때문에 절약이 몸에 배어있지만, 간단한 옷가지 마저 사입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쇼핑과 나들이를 겸해 집 밖을 나선다고 한다.
섀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안또(27·인도네시아)씨는 “언어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무리지어 상가를 둘러보는 데, 결국 물건은 사지 않고 시내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설 때가 많다”며 씁쓸해 했다.
그나마 피부색이 도드라지지 않는 베트남이나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과 달리 세네갈, 가나 등 아프리카 노동자들은 피부색 때문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유난히 튀는 피부색에 거부감을 느끼는 한국인들의 시선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베리아 출신 카리 아무스 플로모(32)씨는 “광주 시내 한 옷가게에 들렀는데, 중년의 여주인이 깜짝 놀라는 바람에 당황해 가게를 서둘러 빠져나왔다”며 “한국인들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는 없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맘 편히 갈곳은 없다”고 푸념했다.
이들에게 가장 혹독한 계절은 겨울이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봄이나 가을에는 동료들과 어울려 가끔 공원에서 ‘해바라기’를 하기도 하지만, 추운 겨울에는 회사 기숙사나 자취방에서 하루 종일 소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와 관련, 설동훈(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인들에게 여가 시간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기존 복지시설들을 이들을 위한 여가·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주말에 한국인이 이용하지 않는 복지·문화시설을 외국인 근로자 지원단체가 활용토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영기기자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