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요? 길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다고 비싼 택시를 타고다닐 수도 없고….”
주말이던 지난 23일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쉼터에서 만난 스리랑카 국적의 비리스(38)씨. 광주시 하남산단의 한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공장이 쉬는 날에도 임시숙소인 쉼터를 떠나지 못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보고 싶은 곳도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데다 영어 노선안내 또한 부실하기 때문이다.
외출요? 까막눈이라 꿈도 못꿔요
한국생활 2년째인 비리스씨는 지난해 10월 대구에서 광주로 직장을 옮겼다. 대구에서 1년 반 이상을 지내면서 버스를 잘못 타고내리는 일을 숱하게 경험했다. 그때마다 택시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했고 버스비에 택시비까지, 오히려 교통비가 두 배로 들었다. 어느 정도 버스가 익숙해질 무렵 광주로 직장을 옮기게 된 비리스씨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광주지역 버스에도 변변한 영어 안내하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코트라(KOTRA)가 지난해 국내 거주 외국인 253명을 대상으로 생활환경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9%인 154명이 ‘교통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교통문제는 출입국 42.7%, 의료 41.5%, 여가생활 39.5% 등의 불편사항을 제치고 가장 시급한 개선사항으로 꼽혔다.
버스엔 외국어 안내 하나 없어
광주·전남지역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언어·의료와 함께 꼭 빠지지 않는 불편사항이 교통문제다. 택시는 비싼 요금 때문에, 버스는 외국어 안내가 없고 노선이 복잡해서 선뜻 오르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한국에 수년씩 체류중인 외국인 노동자들도 쳇바퀴 돌듯 공장과 숙소 인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오토바이가 유행하면서 또 다른 문제들이 생기고 있다. 숙소와 식료품 가게 사이에 대중교통이 전혀 없는 뭉크(30·몽골)씨는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닌다. 그는 2년 전부터 평동산단에서 일하고 있지만 회사차량을 타고 다녀서 광주지리에는 익숙하지 않다.
뭉크씨와 함께 생활하는 친구가 공동으로 타고다니는 오토바이는 오직 식료품 가게와 숙소를 오가는 교통수단인 것이다. 오토바이는 숙소와 공장이 가깝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든 외국인들과, 단속이 두려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불법체류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지만 대부분 무면허 운전자들이다.
면허시험은 절차가 복잡해 신청이 어려운데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등 다른 동남아 국가의 언어와는 달리 몽골이나 방글라데시 등의 언어로는 운전면허 시험을 볼 수가 없다. 국내 체류자 수가 적은 나라는 공식적인 면허시험 언어로 채택되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 달라 운전면허시험도 못봐
또 대부분 면허가 없다 보니 보험가입이 안 된 것도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오토바이 운전자와 사고가 난다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지난해 법무부가 국감에 제출한 외국인 범죄 통계자료에도 교통사범이 2천100건으로 전체의 범죄 건수의 절반을 차지하는 등 외국인 교통사고가 늘고 있어서 대책이 마련이 절실하다.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관계자는 “광주·전남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의 교통문제는 모든 이주 외국인들에게 해당이 되는 중요한 일이다”며 “2012 여수엑스포 등으로 우리 지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 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외국인들이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교통시설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현주기자 a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