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에 적응하는 것 외는 방법이 없습니다. 몇 안되는 외국인 노동자들만을 위한 식단을 짜달라고 요구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죠.”
하남산단 금형업체에서 2년째 생활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인 헤르만(28)씨.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 ‘한국체질’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한국음식을 잘 먹는 편에 속한다.
그러나 뼈 속 깊이 박혀있는 고국음식에 대한 향수 때문에 회사가 쉬는 주말이면 동료들과 함께 렌딩(코코넛 소스에 쇠고기를 넣고 조린 인도네시아의 전통요리)을 만들어 먹곤한다.
헤르만씨는 “한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고국에 대한 그리움보다 고국의 전통음식에 대한 향수가 더 절절하다”고 말한다.
한국과 음식문화가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찌개류, 김치, 나물 등 한국음식에 적응하려면 보통 2∼3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입맛 까다로운 파키스탄 노동자들의 경우 6개월 정도 적응기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남산단에서 냉장고 부품을 만드는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국적 포히르(26)씨는 한국 음식에 힘들게 적응한 케이스. 포히르씨는 “김치 등 익숙하지 않은 한국음식을 먹고난 뒤 속이 편하지 않아 처음 3개월 동안 무척 힘들었다”며 “허기 때문에 음식을 먹기는 했지만, 먹는 게 아니라 삼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서 점심으로 제공한 한국음식 한끼만을 먹고 아침과 저녁은 외국인 전용 마트에서 사온 재료로 ‘쁠롭(양고기를 기름에 볶은 일종의 볶음밥)’ 등 고국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이처럼 외국인 근로자들 대부분은 회사식당에서 외국인을 배려한 식단을 짜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시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러나 자취하는 외국인들의 경우 아침과 저녁을 직접 준비하기 때문에 식대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베트남 노동자들의 경우 ‘라우텀’(향채) 한 묶음을 2천원에 구입한다. 이는 베트남 현지의 3배에 달하는 가격이라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즐겨찾는 각종 식재료가 비싼 것은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음식재료를 판매하는 업소도 다섯 손가락 꼽을 정도로 적고 품목도 다양하지 않다.
특히 베트남 쌀 국수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라우텀’과 중국 요리에 빠지지 않는 ‘샹차이’(향채)는 식물방역법에 따라 국내 수입이 금지된 품목이다.
외국인들의 까다로운 입맛은 취업의 장애가 되기도 한다. 하남 산단에서 부품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44) 사장은 스리랑카 노동자들만을 고용해오고 있다. 수년 전 파키스탄 노동자들과 함께 일했지만, 생각보다 관리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회사식당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도록 식비를 따로 제공했는데, 노동자들이 힘겨워 한 것은 물론 노무 관리에도 문제가 생긴 탓이다.
요리 시간이 1시간 가량 소요되는 점심 시간을 아끼기 위해 새벽에 아침과 점심을 함께 준비하도록 시켰지만,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 했기 때문에 도중에 그만뒀다고 한다. 이후 그는 한국 음식을 잘 먹는 스리랑카 노동자들만을 고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음식은 물론 한국문화에 대한 적응이 빠르기 때문에 줄곧 스리랑카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며 “일부 업체의 경우 음식문화 때문에 특정국가 출신 외국인들을 기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윤영기기자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