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너무나 몰랐던 우리의 이웃]⑬금형회사 '세지'의 행복한 필리피노들
2008년 03월 23일(일) 19:47 가가
"사장님 3년 뒤에 꼭 다시 불러주세요"
7개월 째 광주의 한 금형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노동자 빌과 알렉스, 로델 세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숙사 창문을 열어 방안 공기를 환기시키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일요일엔 일어나는 것도 귀찮지만 창문을 열고 침대를 정리하는 일은 결코 빼먹는 법이 없다. 성격이 깔끔해서가 아니라 실은 사장님의 불호령(?)이 무섭기 때문이다.
광주시 광산구 평동공단에 위치한 금형업체 (주)세지. 이 곳에는 대표이사 조성권(48)씨를 비롯한 한국인 노동자 20명과 3명의 필리핀 노동자가 한데 어울려 일하고 있다.
전 직원 23명을 총괄하는 조 사장은 수시로 공장 옆에 위치한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를 둘러본다. 환기와 방안 청소는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화장실은 깨끗한 지 등등 이 것 저 것을 살펴본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외국까지 와서 고생하는 이들이 혹시 감기나 병에 걸리지 않을 까 하는 걱정에서다.
기숙사는 크지 않지만 한눈에 봐도 깨끗하고 노동자들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방 2개와 화장실, 간단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 등 안온한 느낌을 준다. 큰 방에는 침대 셋과 옷장 등이 들어서 있고, 작은 방에는 침대 하나와 탁자가 배치돼 있다.
작은 방에도 침대를 놓은 것은 야근하는 노동자를 고려한 것이다. 야근을 마치고 새벽에 들어와 침실에 들면 다른 이들의 잠을 깨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침이 되면 출근하는 동료 때문에 숙면을 취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기숙사 작은 방의 탁상에는 눈에 띄는 액자가 있다. 필리핀의 4년제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알렉스(39)가 만든 액자다. 이 곳 공장에서 만든 사각 금속의 틀에 유리를 붙여 만든 것이다.
이 액자에는 4개의 사진이 들어 있다. 3장은 알렉스의 사랑스런 아내와 아들, 두 딸 등 가족 사진이고 왼쪽에 꽂힌 가장 큰 사진은 조성권 사장이다. 자신을 식구같이 대해주고 애로 사항을 들어주는 조 사장을 가족에 넣은 것이다. 알렉스는 외국인인 자신을 한국인 노동자와 다름없이 믿어주는 사장님이 말할 수 없이 고마울 뿐이다.
금형산업에는 많은 공정이 있지만 ‘와이어 커팅’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공정이다. 이 공정을 담당하는 게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고 한다.
와이어 커팅은 실같이 가느다란 동선에 전기를 일으켜 금형을 원하는 모양으로 절단하는 공정이다. 국내 노동자들도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 일이어서 여타 금형업체들은 외국인에겐 웬만해서 맡기지 않는 업무다. 그러나 알렉스가 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했기 때문에 유독 전기와 기계류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안 조 사장은 과감히 그에게 와이어 커팅을 맡긴 것이다.
알렉스는 최근에 고향에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생겨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조 사장과 상의했다가 뜻밖의 도움을 받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고향의 어머니가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지만 막대한 수술비 마련이 막막했다. 이 말은 들은 조 사장이 선뜻 아무 조건없이 수개월 치 월급을 가불해준 것이다.
빌(39)은 회사와 사장에 대한 예찬론자다. 그는 지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부산 무지개공단 화물 하역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키 160㎝, 몸무게 57㎏ 정도의 자그마한 체구로 하역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금형공장은 너무 편하고, 작업장도 깨끗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한다.
“우리 사장님 너무 좋아요. 기숙사도 깨끗하고, 삼겹살에 소주도 사주시고, 음식도 항상 맛있고요, 3년 계약 기간이 끝나도 계속해서 일하고 싶어요”
외국인 노동자(산업연수생)는 3년을 한 작업장에서 일하고 나면 일단 본국으로 귀국한 뒤, 소속했던 업체가 1개월 내에 다시 초청을 하면 3년을 더 일할 수 있다.
이제 7개월 밖에 안됐음에도 불구하고 빌은 벌써부터 시간이 있을 때 마다 사장님에게 부탁한다. 3년 뒤에 다시 불러달라고.
로델(39)은 처음 한국(광주)에 와 몇개월 간은 적응을 하지 못해 조 사장의 애를 먹였다. 로델은 알렉스나 빌에 비해 가정 형편이 여유있는 탓인지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을 뿐만 아니라 동료와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전기기술자였던 그는 부유하지는 못했지만 고향에서 자가용을 몰고 다닐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결국 한국을 택했다고 한다.
광주에 와 있는 동안 둘째 아들 출산 소식을 들었다는 빌은 “이제 2개월 된 둘째 아들 이름을 자누스라고 지었어요, 너무 보고 싶지만 참아야 해요. 이곳 사장님 밑에서 반드시 돈 벌어서 돌아갈 거예요”라며 웃어 보였다.
/채희종기자 chae@kwangju.co.kr
광주시 광산구 평동공단에 위치한 금형업체 (주)세지. 이 곳에는 대표이사 조성권(48)씨를 비롯한 한국인 노동자 20명과 3명의 필리핀 노동자가 한데 어울려 일하고 있다.
전 직원 23명을 총괄하는 조 사장은 수시로 공장 옆에 위치한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를 둘러본다. 환기와 방안 청소는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화장실은 깨끗한 지 등등 이 것 저 것을 살펴본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외국까지 와서 고생하는 이들이 혹시 감기나 병에 걸리지 않을 까 하는 걱정에서다.
기숙사는 크지 않지만 한눈에 봐도 깨끗하고 노동자들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방 2개와 화장실, 간단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 등 안온한 느낌을 준다. 큰 방에는 침대 셋과 옷장 등이 들어서 있고, 작은 방에는 침대 하나와 탁자가 배치돼 있다.
작은 방에도 침대를 놓은 것은 야근하는 노동자를 고려한 것이다. 야근을 마치고 새벽에 들어와 침실에 들면 다른 이들의 잠을 깨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침이 되면 출근하는 동료 때문에 숙면을 취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기숙사 작은 방의 탁상에는 눈에 띄는 액자가 있다. 필리핀의 4년제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알렉스(39)가 만든 액자다. 이 곳 공장에서 만든 사각 금속의 틀에 유리를 붙여 만든 것이다.
이 액자에는 4개의 사진이 들어 있다. 3장은 알렉스의 사랑스런 아내와 아들, 두 딸 등 가족 사진이고 왼쪽에 꽂힌 가장 큰 사진은 조성권 사장이다. 자신을 식구같이 대해주고 애로 사항을 들어주는 조 사장을 가족에 넣은 것이다. 알렉스는 외국인인 자신을 한국인 노동자와 다름없이 믿어주는 사장님이 말할 수 없이 고마울 뿐이다.
금형산업에는 많은 공정이 있지만 ‘와이어 커팅’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공정이다. 이 공정을 담당하는 게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고 한다.
와이어 커팅은 실같이 가느다란 동선에 전기를 일으켜 금형을 원하는 모양으로 절단하는 공정이다. 국내 노동자들도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 일이어서 여타 금형업체들은 외국인에겐 웬만해서 맡기지 않는 업무다. 그러나 알렉스가 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했기 때문에 유독 전기와 기계류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안 조 사장은 과감히 그에게 와이어 커팅을 맡긴 것이다.
알렉스는 최근에 고향에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생겨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조 사장과 상의했다가 뜻밖의 도움을 받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고향의 어머니가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지만 막대한 수술비 마련이 막막했다. 이 말은 들은 조 사장이 선뜻 아무 조건없이 수개월 치 월급을 가불해준 것이다.
빌(39)은 회사와 사장에 대한 예찬론자다. 그는 지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부산 무지개공단 화물 하역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키 160㎝, 몸무게 57㎏ 정도의 자그마한 체구로 하역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금형공장은 너무 편하고, 작업장도 깨끗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한다.
“우리 사장님 너무 좋아요. 기숙사도 깨끗하고, 삼겹살에 소주도 사주시고, 음식도 항상 맛있고요, 3년 계약 기간이 끝나도 계속해서 일하고 싶어요”
외국인 노동자(산업연수생)는 3년을 한 작업장에서 일하고 나면 일단 본국으로 귀국한 뒤, 소속했던 업체가 1개월 내에 다시 초청을 하면 3년을 더 일할 수 있다.
이제 7개월 밖에 안됐음에도 불구하고 빌은 벌써부터 시간이 있을 때 마다 사장님에게 부탁한다. 3년 뒤에 다시 불러달라고.
로델(39)은 처음 한국(광주)에 와 몇개월 간은 적응을 하지 못해 조 사장의 애를 먹였다. 로델은 알렉스나 빌에 비해 가정 형편이 여유있는 탓인지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을 뿐만 아니라 동료와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전기기술자였던 그는 부유하지는 못했지만 고향에서 자가용을 몰고 다닐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결국 한국을 택했다고 한다.
광주에 와 있는 동안 둘째 아들 출산 소식을 들었다는 빌은 “이제 2개월 된 둘째 아들 이름을 자누스라고 지었어요, 너무 보고 싶지만 참아야 해요. 이곳 사장님 밑에서 반드시 돈 벌어서 돌아갈 거예요”라며 웃어 보였다.
/채희종기자 chae@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