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강철 투구가 덜컹거리네. 코뿔소 가죽으로 만든 방패가 소리를 내는구나. 다이아몬드 검과 청동으로 만든 칼집 장식이 딸그랑 거리고, 등자(발걸이)가 찰랑거리네. 말이 몸을 파르르 떨면서 콧김을 뿜어내네.”(우즈베키스탄 영웅 알파미시’(Alpamysh)의 전투장면).

우즈베키스탄 콘그라트 부족의 영웅 ‘알파미시’가 아랄해를 중심으로 펼쳐진 드넓은 초원지대에서 숙적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는 상황을 묘사한 장면이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인물이 주인공인 영웅 서사시 ‘알파미시’가 부족을 위기에서 구한다는 내용이 얼개로, 기마민족의 독특한 정서를 투영한 복수, 사랑, 권선징악 등 인간사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덴마크 출신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은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에서 “앞으로는 꿈과 감성, 이야기를 파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갈파했다. 정보화시대에 이어 ‘이야기 자원 전쟁시대’ 즉, ‘콘텐츠 전쟁의 시대’로 돌입, ‘팔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진자’가 세계시장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아시아는 ‘21세기의 이야기 보물창고’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2곳을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에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전설, 신화, 설화, 민담을 비롯해 건국신화 등 스토리의 광맥이 널려있다. 그리스, 로마신화, 이솝이야기, 탈무드 등을 영화, 문학, 미술 등으로 반복·변주하면서 상상력의 한계를 드러낸 서양과는 대조적이다.

아시아에서 ‘상품 가치’가 있는 이야기는 각국에서 손꼽은 것만 해도 1000개가 넘는다. 모두 영화, 드라마, 게임, 캐릭터, 애니메이션 등에 활용될 원자재다. 몽골, 카자흐스탄,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어느 곳을 가더라도 보석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광주에 세워지고 있는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의 보석’을 꿰어 광주를 명실상부한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만들고, 문화산업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작업을 시작했다.

광주일보사는 오는 2014년 아시아문화전당 개관에 맞춰 흥미진진한 ‘아시아 이야기’를 찾아나선다. 창사 60주년을 맞아 대하기획물로 연재하는 ‘아시아 문화원류를 찾아서’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서부터 시작되는 ‘아시아 스토리 로드(Story road)’ 여정이다. 아시아인의 역사, 삶, 사랑, 문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흥미진진한 여행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로마는 유럽·아프리카·아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13세기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건국한 몽골제국보다 작은 국가였다. 몽골은 유럽 동부까지 정복해 최초의 유라시아 통합 제국을 건설했다. 이후 아시아에서는 연이어 거대 제국들이 등장하며 인류의 문명을 주도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다시 세계의 주도권을 쥔 서양은 ‘굴뚝없는 산업’으로 불리는 문화에 국운의 ‘흥망’을 걸고 있다. 그 핵심은 문화산업의 씨앗인 콘텐츠(이야기)다. 대장금이 아시아 한류열풍을 몰고 온 것도 따지고 보면 한국의 고유한 정서, 전통을 담은 이야기가 잘 팔렸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비롯해 창작에서 가공할 밑천이 드러난 서양이 아시아를 주목하는 이유다.

프랑스의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이 “문화콘텐츠, 브랜드 가치와 같은 소프트파워가 글로벌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갈파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시아에는 아시아적이면서도 인류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신화와 전설이 널려 있다. 사랑과 배신, 증오, 권선징악 등 무궁무진,흥미진진한 스토리에 아시아인의 역사, 사유체계, 생활, 민속, 회화, 음악, 춤, 종교 등 모든 것이 담겨있다.

아시아의 역사, 각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담고 있는 신화와 전설, 이야기는 문화산업의 콘텐츠로 가공되지 않은 ‘날것’이다. 모두가 영화, 드라마, 게임,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원재료인 셈이다.

아시아 스토리의 차별성은 대부분 이야기의 시원지(始原地)가 화석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다.

고대 ‘동서문화 교류’의 비단길이었던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궁전의 벽화에는 옛 고려인의 모습이 남아 있다. 그 고려인의 우즈베키스탄과의 인연에 얽힌 역사와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

인도는 세계 4대 종교의 하나인 불교와 힌두교의 발상지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을 가진 건축물이다.

일본 홋카이도에는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전설이 없는 곳이 없다. 마슈호수에는 전쟁 때 손자를 잃어버린 ‘가무잇슈’(신과 같은 노파)의 슬픔 때문에 호수에 비가 오고 아름다운 안개가 자주 낀다는 전설이 있다.

세계가 아직 주목하지 않는 아시아 이야기는 간추려도 1000여개에 달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영웅 서사시 ‘알파미시’, 키르기스탄의 ‘백년보다 긴 하루’(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고문), ‘마나스’, 카자흐스탄의 ‘무사 아크쟌’ 등은 당장 영화, 애니메션 소재로 활용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하 추진단)은 우즈베키스탄의 대표적 서사인 ‘알파미시’를 번역본으로 출간했고, 정재은 감독은 단편 영화로 제작해 국내에 소개했다. ‘알파미시’는 고대 투르크 민족신화에 뿌리를 둔 우즈베크 민족 영웅의 서사시이다.

추진단은 오는 2014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을 앞두고 아시아 스토리 현황조사 및 대표 스토리 발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광주 문화산업의 원동력이 될 ‘아시아의 100대 이야기’를 선정해 채록, 출판, 자료화해 축적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문화산업 종사자들에게 무한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화수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추진단은 아시아의 이야기를 데이터베이스화 해 국립아시아 문화전당의 ‘문화창조원’에서 문화콘텐츠 상품으로 개발할 방침이다. ‘아시아예술극장’은 아시아 이야기를 연극·무용·음악 등으로 재창작해 무대에 올린다. ‘어린이 문화원’은 어린이를 위한 우화, 동화로 창작할 방침이다.

광주일보는 이에 맞춰 3년동안 아시아 문화의 원류를 찾아 떠나는 9개 방면 14개국 대장정을 시작한다. 먼저 문명의 십자로라 불리는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전설과 민담과 신화와 전설을 훑어본 후 제2방면으로 인도 아대륙(亞大陸)의 4개국가,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네팔 4개국을 취재한다. 바가바드 기타와 시바 비쉬누등 수많은 힌두신들이 독자들을 어지럽게 할 것이다. 제3방면은 만주. 하르빈과 창춘을 중심으로 수십개 부족과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빚어낸 대륙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제4방면은 중원. 옛 주나라의 도읍 뤄양과 황하주변 지역을 더듬으며 배신과 음모와 충절과 방탕이 넘치던 중국문명을 일별한다. 제5방면은 남중국이다. 쿤밍과 광저우를 중심으로 소수민족들의 애환과 생존의 지혜들을 엿본다.

제6방면은 시베리아. 몽골과 브리야트공화국, 러시아를 답사한다. 대초원을 중심으로 한반도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스키타이 문명, 샤머니즘의 세계가 펼쳐진다. 제7방면은 인도차이나반도. 캄보디아와 버마에서 수도작문명의 보편성을 확인한다. 제8방면은 수마트라와 자바섬. 종교와 전설의 용광로 인도네시아지역의 수많은 민화를 채집한다. 제9방면은 홋카이도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시민들의 문화내공을 팍팍 쌓아줄 즐거운 문화탐사에 독자여러분의 큰 관심을 기대한다.

/타슈켄트=윤영기기자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