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렛딘 호자(Nasreddin Hodja)는 우즈베키스탄 우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대변자로서 부자나 교만한 자, 권력자들을 골탕먹이는 현자다. 중앙 아시아에서는 풍자시인으로도 불린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자신들의 민족성을 투영한 인물이라고 나스렛딘 호자를 설명한다. 한국의 방랑시인 김삿갓과 비슷한 캐릭터다.

우즈베키스탄 현지인들을 만나면 나스렛딘 호자 이야기 한 두개 쯤은 들을 수 있다. 수도 타슈켄트에서 서남쪽으로 570㎞ 거리에 있는 종교도시 부하라에 그의 자취가 있다. 부하라주의 노디르 디반베기 메드레세(이슬람 신학교) 정문 앞쪽에 세워져 있는 청동상은 익살스런 모습으로 나귀를 타고 있는 나스렛딘 호자다. 관광지 기념품 가게 어디를 가든, 그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인형을 팔고 있다.

15세기∼17세기 인물로 알려진 나스렛딘 호자는 원래 이슬람 장로였다고 한다. 당쟁과 파벌로 점철된 중앙정치에 환멸을 느껴 시골의 초막에서 은둔하는 현자로 알려져 있다.

회자되는 대표적인 이야기는 나스렛딘의 기지를 드러낸다.

돈이 없던 나스렛딘은 샤슬릭(양고기 꼬치구이)을 살 수 없어 매일 한 상인의 가게에서 샤슬릭 굽는 냄새를 맡았다. 상인은 성가시게 가게 앞에서 코만 벌름거리는 그가 얄미웠다.

상인은 “샤슬릭 냄새를 맡았으면, 산 거나 다름없으니 돈을 내야할 것 아니요”라고 쏘아붙인다.

나스렛딘의 뼈있는 응수가 이어진다. 이튿날 그는 다짜고짜 상인에게 돈을 보여주고 난 뒤 “당신도 내 돈을 봤으니, 그 값을 치르시오. 냄새를 맡았다고 돈을 내라니요”라고 핀잔을 준다.

그는 낙천적인 모습으로도 그려지기도 한다.

어느 날 나스렛딘이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애지중지하던 당나귀가 보이지 않았다. 이웃들은 가난한 나스렛딘이 마지막 재산까지 도둑맞았다며 크게 걱정했다.

그럼에도, 그는 잃어버린 당나귀를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황당한 마을 사람들이 물었다. “아까운 당나귀를 잃었는데 뭐가 그리 신이 나서 흥얼거리는가?”

그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한다. “만약 내가 당나귀를 타고 있었다면 나도 함께 잃어버렸을 것 아닙니까.”

지배층의 행태를 통렬하게 꼬집는 일화도 있다. 제국의 황제인 아미르 티무르가 파트너로 등장한다.

나스렛딘은 아내에게 부탁해서 거위 한 마리를 잡아 요리한 뒤 아미르 티무르가 기거하는 궁전으로 향한다. 거위를 황제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다. 여정 도중에 배가 몹시 고팠던 그는 거위 다리 한쪽을 뜯어먹고 말았다.

다리가 한쪽밖에 없는 진상품을 살펴본 아미르 티무르는 황당해 웃음을 터뜨렸다.

나스렛딘은 능청스럽게 말한다. “왜 웃으십니까. 이 지역의 거위들은 모두 다리가 하나 밖에 없다니까요. 저를 믿지 못하시겠다면 창밖을 한 번 내다보시지요.”

아미르 티무르가 밖을 보자 때마침 날이 어두워진 탓에 거위들이 정말로 다리 하나로 서서 잠들어 있었다.

황제가 바보처럼 속는다면 이야기는 재미없어진다. 그는 전리품으로 가지고 있던 화승총을 거위들을 향해 쏘아 댄다. 거위들이 놀라 두발을 드러낸 채 혼비백산 흩어진다.

아미르 티무르는 “거보시요. 거위의 다리가 하나 뿐이라고요?”

이쯤되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며 이마를 땅에 찧는 것이 당연지사. 그러나 나스렛딘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촌철살인으로 빠져나온다. “만약 저 거위들이 당신을 향해 총을 쏘아댄다면 당신 역시 네 개의 다리로 기어서 도망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즈베키스탄=윤영기기자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