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질투 … 神弓 구한 독수리 … 영웅담과 수호신의 전설
2012년 07월 02일(월) 00:00 가가
〈9〉 무사 ‘에르 토스티크’와 독수리
수천년 이어온 야생과 인간의 우정
힘·용맹·예지의 상징 … 신화속 영물
수천년 이어온 야생과 인간의 우정
힘·용맹·예지의 상징 … 신화속 영물
카자흐스탄의 ‘베르쿠치’(독수리 사냥꾼) 아빌카크 뚤리바예프씨가 전통 겨울사냥 복장을 입고 검독수리 제뜸을 선보이고 있다. /카자흐스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에서 이틀을 기다린 끝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수소문으로 찾아간 그의 보금자리는 톈산산맥의 한 자락인 꼭주베산 아래 따따르 지역에 있었다.
독수리 사냥꾼, ‘베르쿠치’가 그의 직업이었다. 그를 애써 찾아 만난 것은 카자흐스탄 옛 무사들의 상징인 독수리에 얽힌 전설을 듣고 싶어서였다. 아빌카크 뚤리바예프(71)씨는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독수리,매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그는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앙아시아 전통, 독수리 사냥의 명맥을 잇고 있는 사냥꾼이다.
“누구나 독수리를 가질 수 있지만, 독수리와 친구가 되지 않는다면 결코 좋은 사냥꾼이 될 수 없어. 독수리의 마음을 얻어야 하지. 친구이자 사냥의 동료라는 마음을 독수리에게 심어주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야.”
그는 먹잇감을 단숨에 덮치는 독수리의 기세처럼 매섭고 단호하게 사냥꾼의 철학을 압축했다.
“제뜸(22·외톨이라는 뜻)의 몸무게는 6.6㎏으로, 중앙아시아 사냥독수리 중 두 번째로 덩치가 크다. 또 한 놈은 아유(16·곰)라고 부릅니다.”
한참을 독수리 사냥 얘기를 듣고 난 취재진이 ‘본론’을 청하자, 그가 선선히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첫 이야기는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보은의 독수리’이다.
목동이 어느 날 여우를 사냥하던 독수리가 되레 여우에게 날개를 물려 죽게 된 것을 구해냈다. 독수리는 몸이 완쾌된 뒤에도 떠나지 않고 날마다 목동에게 여우,토끼를 물어다 줬다. 양치기는 독수리와 인연으로 베르쿠치가 됐다.
독수리가 엄청난 양의 여우와 토끼를 잡는 덕분에 양치기는 내로라하는 부자가 됐다. 양치기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자 독수리도 식음을 전폐하고 굶어 죽었다. 마을 사람들이 둘의 우정에 감동해 목동의 곁에 그를 묻었다는 줄거리였다.
뚤리바예프씨는 서론격인 보은의 독수리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야 진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카자흐스탄 유목민의 삶과 신비로운 마법, 주술이 펼쳐지는 ‘에르 토스티크’ 민담이다. 인간과 독수리,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쌍두 독수리는 주인공 에르 토스티크를 결정적인 위기에서 구해내는 예지의 동물이자, 수호신으로 등장한다.
에르 토스티크의 탄생은 처녀잉태, 난생설화 등 신화의 여느 주인공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늙은 유목민 에르 나자르 부부는 유르트(유목민의 주거용 천막) 천장에 매달린 말고기 가슴살을 먹고 임신, 9개월 만에 주인공을 얻는다. 그가 8명의 아들 가운데 아홉째로 때어난 것은 상징이다. 한국 사람들이 숫자 ‘7’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9’에 집착한다. 보통 선물할 때도 아홉 개의 물건을 갖춘다.
에르 토스티크는 시간 단위로 성장해 1년 만에 건장한 청년으로 자란다. 신궁이었던 그는 수백 m 떨어진 곳에서 말을 탄 사람이 엄지와 검지를 맞대 원을 만들면 화살을 쏘아 그 동그라미를 관통했다고 한다.
미남이었던 에르 토스티크는 신(神)의 짝사랑 때문에 생사의 기로를 헤맨다. 페리의 딸 벡토리의 질투는 그를 죽음으로 까지 내몬다.
벡토리가 마귀할멈 바바 야가를 조종해 에르 토스티크를 생포하려 하지만 미수에 그친다. 에르 토스티크는 약혼녀 켄제케이가 보내준 명마 살쿠이리크를 타고 위기에서 벗어난다. 화살보다 빠른 살쿠이리크는 말을 하는 지혜있는 말(馬)이었다.
기쁨도 잠시. 위험에서 벗어난 에르 토스티크는 ‘바니’가 지배하는 뱀의 지하왕국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주인공을 돕는 구원병들은 이 때 어김없이 등장한다. 번개 보다 빠른 손을 가진 도둑, 바람보다 빠른 ‘바람다리’, 호숫물을 통째로 마시는 위대(胃大)한 자, 천리안을 가진 사람 등이다.
고비 때마다 펼쳐지는 이들의 활약은 능소능대(能小能大)란 말이 무색하다. 심연의 호수 밑바닥에 숨겨진 솥단지 찾기 게임에서 ‘위대한 자’가 호숫물을 다 마셔버리고, 그 물을 토해내 화재를 진압하는 식이다.
사랑에 눈이 먼 벡토리는 집요하다. 마귀할멈의 아들 쇼인 쿨라크를 겁박해 에르 토스티크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는 ‘천하장사’인 쇼인 쿨라크에게 붙잡혀 천길 우물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에 놓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에르 토스티크는 쌍두 독수리가 건네준 마법의 깃털을 품에서 꺼내 돌에 문지른다. 거대한 독수리는 이때 유유히 나타나 우물에서 주인공을 꺼내준다. 쌍두 독수리는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쇼인 쿨라크를 제거할 수 있는 결정적인 힌트를 준다. “쇼인 쿨라크는 영혼이 죽지 않는 한 사멸하지 않는 불사신이다. 그가 영혼을 몸에서 빼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 두었다”는 것이었다.
귀골(貴骨)을 타고난 에르 토스티크에게 또 다른 여성이 접근한다. 쇼인 쿨라크의 학대를 못견딘 그의 아내 쿤케이는 “남편이 검은 염소의 내장에 영혼을 감췄다”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에르 토스티크는 검은 염소의 내장을 가르고 8마리의 병아리로 둔갑한 쇼인 쿨라크의 영혼들을 죽인다. 영혼을 잃은 쇼인 쿨라크는 죽음을 맞고 에르 토스티크는 약혼자 켄제케이와 평온한 삶을 찾는다.
아스카룰리 카자흐스탄 국립 아우에조바 문학예술연구소장은 “에르 토스티크는 고대 샤먼적 신화에 토대를 둔 것으로, 신화적 상상력과 아름다운 묘사를 간직한 민담”이라고 설명했다.
/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
독수리 사냥꾼, ‘베르쿠치’가 그의 직업이었다. 그를 애써 찾아 만난 것은 카자흐스탄 옛 무사들의 상징인 독수리에 얽힌 전설을 듣고 싶어서였다. 아빌카크 뚤리바예프(71)씨는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독수리,매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그는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앙아시아 전통, 독수리 사냥의 명맥을 잇고 있는 사냥꾼이다.
그는 먹잇감을 단숨에 덮치는 독수리의 기세처럼 매섭고 단호하게 사냥꾼의 철학을 압축했다.
“제뜸(22·외톨이라는 뜻)의 몸무게는 6.6㎏으로, 중앙아시아 사냥독수리 중 두 번째로 덩치가 크다. 또 한 놈은 아유(16·곰)라고 부릅니다.”
한참을 독수리 사냥 얘기를 듣고 난 취재진이 ‘본론’을 청하자, 그가 선선히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첫 이야기는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보은의 독수리’이다.
뚤리바예프씨는 서론격인 보은의 독수리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야 진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카자흐스탄 유목민의 삶과 신비로운 마법, 주술이 펼쳐지는 ‘에르 토스티크’ 민담이다. 인간과 독수리,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쌍두 독수리는 주인공 에르 토스티크를 결정적인 위기에서 구해내는 예지의 동물이자, 수호신으로 등장한다.
에르 토스티크의 탄생은 처녀잉태, 난생설화 등 신화의 여느 주인공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늙은 유목민 에르 나자르 부부는 유르트(유목민의 주거용 천막) 천장에 매달린 말고기 가슴살을 먹고 임신, 9개월 만에 주인공을 얻는다. 그가 8명의 아들 가운데 아홉째로 때어난 것은 상징이다. 한국 사람들이 숫자 ‘7’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9’에 집착한다. 보통 선물할 때도 아홉 개의 물건을 갖춘다.
에르 토스티크는 시간 단위로 성장해 1년 만에 건장한 청년으로 자란다. 신궁이었던 그는 수백 m 떨어진 곳에서 말을 탄 사람이 엄지와 검지를 맞대 원을 만들면 화살을 쏘아 그 동그라미를 관통했다고 한다.
미남이었던 에르 토스티크는 신(神)의 짝사랑 때문에 생사의 기로를 헤맨다. 페리의 딸 벡토리의 질투는 그를 죽음으로 까지 내몬다.
벡토리가 마귀할멈 바바 야가를 조종해 에르 토스티크를 생포하려 하지만 미수에 그친다. 에르 토스티크는 약혼녀 켄제케이가 보내준 명마 살쿠이리크를 타고 위기에서 벗어난다. 화살보다 빠른 살쿠이리크는 말을 하는 지혜있는 말(馬)이었다.
기쁨도 잠시. 위험에서 벗어난 에르 토스티크는 ‘바니’가 지배하는 뱀의 지하왕국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주인공을 돕는 구원병들은 이 때 어김없이 등장한다. 번개 보다 빠른 손을 가진 도둑, 바람보다 빠른 ‘바람다리’, 호숫물을 통째로 마시는 위대(胃大)한 자, 천리안을 가진 사람 등이다.
고비 때마다 펼쳐지는 이들의 활약은 능소능대(能小能大)란 말이 무색하다. 심연의 호수 밑바닥에 숨겨진 솥단지 찾기 게임에서 ‘위대한 자’가 호숫물을 다 마셔버리고, 그 물을 토해내 화재를 진압하는 식이다.
사랑에 눈이 먼 벡토리는 집요하다. 마귀할멈의 아들 쇼인 쿨라크를 겁박해 에르 토스티크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는 ‘천하장사’인 쇼인 쿨라크에게 붙잡혀 천길 우물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에 놓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에르 토스티크는 쌍두 독수리가 건네준 마법의 깃털을 품에서 꺼내 돌에 문지른다. 거대한 독수리는 이때 유유히 나타나 우물에서 주인공을 꺼내준다. 쌍두 독수리는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쇼인 쿨라크를 제거할 수 있는 결정적인 힌트를 준다. “쇼인 쿨라크는 영혼이 죽지 않는 한 사멸하지 않는 불사신이다. 그가 영혼을 몸에서 빼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 두었다”는 것이었다.
귀골(貴骨)을 타고난 에르 토스티크에게 또 다른 여성이 접근한다. 쇼인 쿨라크의 학대를 못견딘 그의 아내 쿤케이는 “남편이 검은 염소의 내장에 영혼을 감췄다”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에르 토스티크는 검은 염소의 내장을 가르고 8마리의 병아리로 둔갑한 쇼인 쿨라크의 영혼들을 죽인다. 영혼을 잃은 쇼인 쿨라크는 죽음을 맞고 에르 토스티크는 약혼자 켄제케이와 평온한 삶을 찾는다.
아스카룰리 카자흐스탄 국립 아우에조바 문학예술연구소장은 “에르 토스티크는 고대 샤먼적 신화에 토대를 둔 것으로, 신화적 상상력과 아름다운 묘사를 간직한 민담”이라고 설명했다.
/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