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깊었던 소년범과의 가을 조우
2012년 09월 24일(월) 00:00 가가
허 지 훈
태풍이 2번 연속으로 우리나라를 강타한 후 아침, 저녁 공기가 폐부를 날카롭게 찌를 만큼 쌀쌀해졌다. 필자는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지만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공기가 만연해지는 초가을이 되면 유달리 긴장을 하게 되고, 그동안의 필자 생활을 뒤돌아 보게 된다. 아마도 초가을은 필자에게 지난 1년간의 결실을 되돌아보는 수확의 시절인 것 같다.
지난 2월 광주지검에 부임해 온 후 현재까지 소년전담을 맡아 여러 소년사범들에 대한 사건을 전임지에 비해 많이 처리했었다. 오늘도 몇 명의 소년들이 필자 앞에서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그래서인지 초가을인 요즘은 다른 것보다는 필자가 과거에 처리했던 소년들이 자주 생각난다.
과거 다른 지역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방화를 저질러 구속 송치된 소년이 있었다. 솔직히 지금은 그 소년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그 소년에게 어떤 태도로 조사에 임했는지,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일반 형사범들처럼 그 소년을 구속기소했고, 그 다음엔 그 소년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야근을 하면서 중국음식을 배달시켰는데 배달원이 음식을 내려놓고 음식대금을 건네받은 후에도 쭈뼛쭈뼛 서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무슨 사유인가 물었더니 필자한테 조사받았던 그 구속기소된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당시 검사님께서 저한테 건네주셨던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 때문에 저에게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용기를 가졌습니다. 반성 많이 했고, 지금은 배달일 하면서 검정고시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검사님한테 조사받으러 오지 않을 겁니다. 혹시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라고 수줍게 말하면서 돌아갔고, 필자는 그날 하루 종일 왠지 모를 뿌듯한 마음에 들떠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또한, 학교폭력 문제로 광주·전남 교육청 소속 장학사들과 간담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장학사들이 필자에게 “소년들을 처벌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훈육의 대상, 관심의 대상으로 봐주세요’라고 부탁했던 것도 생각난다. 다시 초가을이 되자 앞에서 말한 일화들과 함께 광주지검에서 조사했던 소년들이 많이 생각난다.
하루에도 몇 명씩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솔직히 나한테 조사를 받으러 왔던 소년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었는지,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사건처리 대상으로만 생각하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특별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따뜻한 말 한마디, 관심 어린 조언 등을 잘 해주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올해의 결실은 많이 아쉽기만 하다.
유독 시를 읽고 감상하기 싫어하는 필자가 유달리 좋아하는 시의 문구가 있다. 중국 남북조 송나라 시대의 도연명 시인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인데 이 시 내용을 보면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지난 과거의 잘못을 탓해야 돌이킬 수 없고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의미의 문구가 있다.
이 칼럼을 쓰기 며칠 전부터 위 귀거래사의 문구처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검사실에 오는 소년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보았다. 범행은 왜 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생활할 계획인지,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특기와 취미가 무엇인지 등 사건에 대한 질문 이외에 소년들의 신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묻는 필자에게 소년들이 보내는 첫 반응은 낯설음이지만 검사실을 떠날 때 보여주는 마지막 표정은 친동생이 형님에게 보내는 미소로 착각할 정도의 환한 미소를 보여준다. 그럴 때면 내 마음도 함께 따뜻해지고 행복해진다.
필자의 이와 같은 작은 관심과 배려가 당장 소년들을 교화하고, 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또 소년에 대한 교화 및 선도가 필자 혼자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라고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필자의 작은 관심으로 소년들이 조금이나마 용기를 갖고 앞으로 희망을 가진다면, 그리고 이 세상에도 그 소년들이 자신들에게 작은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필자는 만족한다.
내년 이맘때에는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날씨는 쌀쌀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대풍년의 시기가 되길 마음 한구석에서 조심스레 기대하면서 오늘도 만날 소년들이 기다려진다.
〈광주지방검찰청 형사 2부 검사〉
과거 다른 지역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방화를 저질러 구속 송치된 소년이 있었다. 솔직히 지금은 그 소년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그 소년에게 어떤 태도로 조사에 임했는지,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일반 형사범들처럼 그 소년을 구속기소했고, 그 다음엔 그 소년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야근을 하면서 중국음식을 배달시켰는데 배달원이 음식을 내려놓고 음식대금을 건네받은 후에도 쭈뼛쭈뼛 서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무슨 사유인가 물었더니 필자한테 조사받았던 그 구속기소된 소년이었다.
하루에도 몇 명씩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솔직히 나한테 조사를 받으러 왔던 소년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었는지,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사건처리 대상으로만 생각하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특별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따뜻한 말 한마디, 관심 어린 조언 등을 잘 해주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올해의 결실은 많이 아쉽기만 하다.
유독 시를 읽고 감상하기 싫어하는 필자가 유달리 좋아하는 시의 문구가 있다. 중국 남북조 송나라 시대의 도연명 시인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인데 이 시 내용을 보면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지난 과거의 잘못을 탓해야 돌이킬 수 없고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의미의 문구가 있다.
이 칼럼을 쓰기 며칠 전부터 위 귀거래사의 문구처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검사실에 오는 소년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보았다. 범행은 왜 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생활할 계획인지,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특기와 취미가 무엇인지 등 사건에 대한 질문 이외에 소년들의 신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묻는 필자에게 소년들이 보내는 첫 반응은 낯설음이지만 검사실을 떠날 때 보여주는 마지막 표정은 친동생이 형님에게 보내는 미소로 착각할 정도의 환한 미소를 보여준다. 그럴 때면 내 마음도 함께 따뜻해지고 행복해진다.
필자의 이와 같은 작은 관심과 배려가 당장 소년들을 교화하고, 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또 소년에 대한 교화 및 선도가 필자 혼자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라고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필자의 작은 관심으로 소년들이 조금이나마 용기를 갖고 앞으로 희망을 가진다면, 그리고 이 세상에도 그 소년들이 자신들에게 작은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필자는 만족한다.
내년 이맘때에는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날씨는 쌀쌀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대풍년의 시기가 되길 마음 한구석에서 조심스레 기대하면서 오늘도 만날 소년들이 기다려진다.
〈광주지방검찰청 형사 2부 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