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에 덴마크와 스웨덴의 법원을 방문해 제1심 형사재판을 방청한 적이 있었다. 직업 법관 이외에 일반 시민이 참심원으로 참여해 재판부를 구성하고, 법관과 참심원이 모두 법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재판에 참여했다. 법대(법정에서 재판부가 앉는 자리)도 높이 있지 않아서 재판이 마치 회의가 진행되는 듯한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는 점이 우선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범죄의 피해자가 공판 내내 검사 옆에 앉아서 자유롭게 사실과 의견을 진술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비해 우리의 형사재판의 모습은 어떠한가. 피해자는 ‘사건’의 당사자이지만, ‘형사소송’에서는 검사와 피고인이 당사자일 뿐 피해자는 유무죄를 밝히고 형을 정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심리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피고인이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피해자는 방청석에 앉아 그저 이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검사가 즉각 반박을 해 주면 좋겠지만, 검사는 피해자만큼 사건의 실체를 알지는 못한다. 때로 참지 못한 피해자가 재판장에게 발언 기회를 요청하기도 하지만,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이의를 제기하면 재판장으로서는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하지 않는 한 그 발언을 제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형사소송법은 피해자의 신청이 있는 때에는 원칙적으로 그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해 피해의 정도 및 결과, 피고인의 처벌에 관한 의견, 그 밖에 당해 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피해자가 이미 당해 사건에서 증인으로 진술한 경우에는 피해자의 진술권이 제한될 수 있고, 피해자가 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하는 경우까지 선서를 하고 피고인 측의 반대신문을 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진술권을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면이 있다.

이러한 경우 피해자는 진정서, 탄원서 등의 형식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재판부에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형사소송법이 정하지 않은 방식이기 때문에 설령 재판부가 이를 읽어 보더라도 피고인에게 불리한 자료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피해자는 언론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호소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하기도 하고, 재판부에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혹시라도 피고인에게 무죄나 관대한 형벌이 내려지면 재판이 공정하지 못했다고 의심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결과는 형사사법 시스템을 왜곡시키고 형사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으로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소통’이다. 법원도 예외는 아니어서 소송관계인 및 일반 국민과 소통을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공판중심주의가 실현돼 감에 따라 형사소송절차에서 피고인과의 소통은 활발해 졌지만, ‘사건’의 당사자인 피해자와의 소통은 여전히 미흡하다. 현행 형사소송 구조에서 피해자는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고,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되며, 피고인의 권리와 공정하고 공평한 재판이 침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재판부가 피해자와 소통을 하는 데 법적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범죄로 인해 고통을 당한 피해자가 형사소송절차에서마저 소외된 채 주변인에 머무른다면 형사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요원한 것이다.

법원은 이제까지 형사소송절차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해 왔다. 그러나 피해자 중에는 단순한 보호의 대상 또는 심리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형사소송절차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에게는 그것이 치유의 과정일 수도 있다.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는 헌법(제27조 제5항)의 이념을 깊이 새겨, 이제는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이들과 소통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형사1단독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