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의 일이다. 6∼7년 전 같은 데도 기억이 선명하지 않으니 세월 앞에 장사는 없는 모양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미국에서 1년 정도 유학을 마치고 돌아 온 동료 판사가 필자에게 “미국 신문은 사실(Fact)를 위주로 기사를 쓰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편인데, 우리나라 신문은 제목을 너무 선정적으로 뽑을 뿐 아니라 기자의 판단이 기사에 많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 무렵 어느 신문을 보다가 법원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같은 면에 나란히 실린 두 기사였다. 한 기사의 제목이 ‘정신 나간 사법부’였던 것 같다. 기사 내용은 법원 직원의 잘못에 관한 것이고, 내용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제목이 너무 컸다. 과했다.

또 한 기사는 법원 판결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기사 말미를 보니 “피고인 한 명은 무혐의 판결을, 또 다른 피고인 한 명은 기소유예 판결을 받았다”고 적었다. 무혐의나 기소유예는 ‘검사’의 처분이다. 잘못됐다. 여기서 필자는 자신을 돌아본다. 앞으로 판결문 작성할 때 더 신중해야겠다. 논리적인 비약, 추측성 판단은 피하자. 선악이 모두 다 나의 스승이다.

#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원고가 피고에게 돈을 주었는데, 원고는 대여금이라고 주장하고, 피고는 투자금으로 받아 이제는 다 망했으니 원고에게 줄 돈이 없다고 한다. 빌려 준 돈이 아니라면 원고의 청구가 기각될 것이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대여가 맞고, 원고가 억울하다”고 강조한다. 근거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원고와 여러 번 이에 대해 이야기했고, 무통장 입금증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무통장 입금증은 돈을 줬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고, 계약서에는 투자라는 내용이 여러 번 나온다고 반문하니 별다른 답변이 없었다.

우스갯소리지만, “서양 사람은 핏대를 올리면서 계약서를 꼼꼼히 작성하되 계약이 이행된 뒤에는 웃으면서 악수하는 반면, 우리나라 사람은 대충, 그리고 즐겁게 계약서를 작성하지만, 중도에 원수가 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 가장 오래된 성문법으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BC 1750년경)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이라는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법전은 당시 상황에서 볼 때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잔인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뺨을 맞았을 뿐인데도 힘만 있으면 상대방의 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는 무한 복수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함무라비 왕이 만든 것이다. 그 내용 중 일부인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해쳐서는 안 되며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고, 정의가 온 땅에 온전히 드러나며, 분쟁이 그치고 상처가 치유되도록 하기 위해 법을 돌판에 적어 세우는 것”이라는 부분에 눈길이 간다.

# 요즘 들어서는 “세상살이는 나그네처럼, 벼슬살이는 손님처럼(在世如旅, 在官如賓)”이라는 경구가 마음에 든다.

〈광주지방법원ㆍ광주가정법원 순천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