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들어줄 때 생기는 변화들
2012년 11월 26일(월) 00:00 가가
정 가 원
지난달 초 지역 내 모 고등학교에서 학교 폭력 방지를 주제로 준법 강의를 했다. 학교 폭력 가해자에 대한 형사 제재,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법률적 조치 위주의 강의였다. 검사로서 학생들 앞에 섰던 것이기에 법률적 관점에서의 이런 강의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강의를 전후해 필자의 마음 속에는 “이 문제의 근본적인 예방책은 없을까”라는 물음이 계속 됐고, 그런 생각들 속에 떠오른 몇 가지 장면이 있었다. 다음은 필자의 경험담이다.
#1 그는 초면에 가까운 사이였다. 우연하게 점심을 함께하게 됐고, 그 자리에서 시작된 대화는 저녁이 될 때까지 몇 시간가량 이어졌다. 그는 이성과 이렇게 긴 대화를 해 본 것이 처음이라며, 그녀에 대한 호감이 싹트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사실 그 자리에서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몇 가지 질문을 했었고, 그녀의 질문에 따라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적당한 호응과 진심 어린 공감을 했을 뿐이다.
#2 그는 소위 ‘왕따’였다. 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그 친구를 짓궂게 괴롭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한 손을 책상에 올려놓고 벌어진 손가락 사이를 다른 손에 든 문구용 칼로 반복해 찌르는 식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용기를 내 그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달팽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숨기던 그 친구는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열었고 언젠가부터 그 친구는 웃기 시작했다. 필자가 그 친구에게 건네는 말보다 그 친구가 필자에게 하는 이야기가 더 많아져 필자는 그저 듣고만 있어도 됐을 때쯤 어느덧 그 친구를 향한 반 아이들의 왕따 놀이도 그쳤다.
#3 성폭력 가해자였던 그는 비난받아야 마땅했다. 그는 초범이었지만 범행 방법은 너무나 과감하고 끔찍했다. 포승줄에 묶여 온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필자의 동생과 나이가 같았다. 한 순간의 무모한 선택으로 찬란해야 할 젊은 날을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그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물었다. 잠시 침묵 후 그는 조금씩 입을 열더니 결국엔 울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며칠 후 필자는 양형기준에 따라 가장 높은 구형량으로 그를 기소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그가 필자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했다. 검사실을 다시 찾은 그는 필자에게 뜻밖에도 “고맙다”고 했다. 인생의 나락에 떨어져 있던 순간, 너무나 추웠던 그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필자가 건넸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따뜻했다며, 다시는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겠노라고 말했다. 비록 필자가 그에 대한 엄벌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앞서 3가지 장면 속에서 그들은, 예전과는 다른 긍정적인 마음의 변화를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그 답이 ‘진심으로 들어주기’라고 생각한다.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에서, 세상에 홀로 있는 듯 한 상황에서, 자신에게는 비난만이 남아 있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으며 공감해 줬을 때 그들은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그로 인해 마음의 새로운 변화를 선택할 힘을 얻었던 것이리라.
사건을 처리하면서 소년범들을 비롯한 범죄자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느끼는 것이 있다. 범죄자가 양산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가정의 분열에 따른 애정 결핍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로 인한 내면의 분노를 잘못된 방식으로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범죄가 이루어지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주변에 있던 누군가가 그들 속에 있는 분노와 사연에 귀 기울여 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결국 진심으로 들어준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자, 그들의 잘못된 선택을 막아주는 좋은 예방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주변을 둘러보자.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고 있을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먼저 말을 건네 보자.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 놓기 시작한다면, 내 생각과 내 기준은 버리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잘 들어 보자. 우리의 이러한 작은 노력이, 마음이 깨져 불안한 길을 걷고 있는 우리의 청소년들, 그리고 많은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필자는 업무량에 떠밀려 자주 잊곤 했던 다짐, 사건 관계자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검사가 되겠다던 그 다짐을 다시 되뇌어 본다.
〈광주지검 공판부 검사〉
#2 그는 소위 ‘왕따’였다. 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그 친구를 짓궂게 괴롭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한 손을 책상에 올려놓고 벌어진 손가락 사이를 다른 손에 든 문구용 칼로 반복해 찌르는 식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용기를 내 그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달팽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숨기던 그 친구는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열었고 언젠가부터 그 친구는 웃기 시작했다. 필자가 그 친구에게 건네는 말보다 그 친구가 필자에게 하는 이야기가 더 많아져 필자는 그저 듣고만 있어도 됐을 때쯤 어느덧 그 친구를 향한 반 아이들의 왕따 놀이도 그쳤다.
사건을 처리하면서 소년범들을 비롯한 범죄자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느끼는 것이 있다. 범죄자가 양산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가정의 분열에 따른 애정 결핍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로 인한 내면의 분노를 잘못된 방식으로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범죄가 이루어지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주변에 있던 누군가가 그들 속에 있는 분노와 사연에 귀 기울여 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결국 진심으로 들어준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자, 그들의 잘못된 선택을 막아주는 좋은 예방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주변을 둘러보자.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고 있을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먼저 말을 건네 보자.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 놓기 시작한다면, 내 생각과 내 기준은 버리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잘 들어 보자. 우리의 이러한 작은 노력이, 마음이 깨져 불안한 길을 걷고 있는 우리의 청소년들, 그리고 많은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필자는 업무량에 떠밀려 자주 잊곤 했던 다짐, 사건 관계자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검사가 되겠다던 그 다짐을 다시 되뇌어 본다.
〈광주지검 공판부 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