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에게는 이 명제가 세계에서 가장 확실한 진리다. 데카르트는 모든 지식에 대해 의심하는데, 아무리 의심을 하더라도 지금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리고 의심하는 그 순간, 내가 존재한다는 것 역시 확실하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추론을 ‘방법론적 회의’라고 한다. 그는 진지하게 모든 것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 가장 확실한 지식을 찾기 위해 의심하는 척했을 뿐이다.

필자다 볼 때 변호사 역시 의심하는 일에 있어서는 데카르트와 비슷하다. 변호사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은 의아해 하고, 의아한 것은 의심쩍어 하고 의심쩍은 것은 불신해 버린다. 상대방이 주장하는 것은 무조건 거짓이고 의뢰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앞뒤가 안 맞으면 반박한다. 변호사가 못 말리는 회의주의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도 데카르트처럼 방법론적 회의를 통해 좀 더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궁극적으로는 의뢰인에게 더 유리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 의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심해보면 어느 순간 의뢰인의 감정도 의심하게 된다. 그가 하는 말은 의심하면서, 그가 호소하는 감정 상태를 믿는 것은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이때 갈등이 시작되는데, 그 사람의 감정에 동화돼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믿거나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의심해 그 사람의 감정도 계속 의심하는 것 사이에서 망설이는 것이다. 진실보다 위로가 중요한 상황이면 망설이지 않고 전자를 택하겠지만, 위로보다 이익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변호사라면 후자, 즉 동감하지 않거나 적어도 사실관계가 판명될 때까지 동감을 유보할 것이다.

그러나 동감의 결여는 종종 적대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억울함과 분노를 변호사가 알아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는 상처를 입는다. 비록 그에게 직접적인 적의를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마음에 동감하고 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그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인 것이다. 절박한 의뢰인은 종종 이렇게 느낀다.

몸이 아픈 환자들과 그를 돌보는 가족들은 환자를 오염된 생물체처럼 다루는 사무적인 의사에게 적의를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도 어떤 의미에서는 환자이다.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렇고, 무엇보다도 얼굴을 보면 그렇다. 주로 찡그리고 항상 우울하고 간혹 눈시울을 붉히는 의뢰인의 얼굴은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 환자의 얼굴과 다름없다. 그리고 그 얼굴이 실낱같은 희망을 주는 변호사의 말에 유난히 집중하고 잠시 웃음을 찾는 것은, 환자가 의사를 대하는 그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래서 필자는 상담할 때 의뢰인의 얼굴을 본다. 그가 동조와 동감을 구하는 순간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일 준비를 한다. 그리고 가급적 의심하지 않으려고 다짐한다. ‘방법론적으로’ 의심하더라도 최대한 완곡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표현하더라도 그의 잘못이 아님을 강조하고,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별것이 아님을 주지시키고, 큰 잘못이더라도 어떻게든 잘 해결해 보자고 다독이려고 다짐한다. 무엇보다 그가 아픔을 드러내 보일 때, 동감하려고 노력한다. 어렵겠다는 말은 정말 꺼내기 싫은데, 그에게 나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sumpatheia. ‘동감’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다. ‘함께’를 의미하는 접두어 ‘sun’과 ‘고통’을 의미하는 어근 ‘pathos’가 결합해 형성된 단어이다. 필자가 의뢰인이 겪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껴 동감할 수 있다면, 필자는 더 적극적인 변호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의뢰인은 더 만족할 것이다. 그러니까 동감은 일종의 능력이다. 마치 명석함과 언변이 변호사에게 능력이듯이, 동감할 수 있다는 것도 능력이다. 능력있는 변호사가 되기로 오늘도 결심한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