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유랑하며 힌두신 전파 … ‘노래하는 성자들’
2012년 12월 31일(월) 00:00 가가
3부 인도편-(1) '바울'
500년 역사 벵갈지방에만 있는 집시 부족
춤과 노래로 신 찬양하며 사람들과 교감
공연외 명상·금욕생활하며 ‘수행자의 삶’
500년 역사 벵갈지방에만 있는 집시 부족
춤과 노래로 신 찬양하며 사람들과 교감
공연외 명상·금욕생활하며 ‘수행자의 삶’
인도 동부 웨스트 벵갈 지역 주도 꼴까따에서 130여km 떨어진 샨티니케탄 상설시장에서 벵갈지방에만 있는 소규모 집시 부족 바울이 전통악기를 이용해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인도 샨티니케탄=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내 가슴속의 황금궁전을 놓치지 않을거야. 신의 집인 궁전을 안 뺏길거야. 가슴속에 있는 신앙심은 못 버려. 인생이 허무해지잖아. 난 절대 안놓쳐”
인도 동부 웨스트벵갈주의 주도 꼴까따에서 130여㎞ 떨어진 작은 대학도시 샨티니케탄. 아시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라빈드라나뜨 타고르가 1901년 야외실험학교를 세운 이곳에서 6명의 ‘바울’(baul) 패거리를 만났다.
도심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의 한적한 숲 속에서 열린 토요벼룩시장에 바울이 등장하자 조용했던 분위기는 금새 바뀌었다. 벵갈 지방에만 있는 소규모 떠돌이부족인 바울은 ‘행복을 전하는 사람’인 동시에 힌두신들의 역사를 입으로 전하는 노래꾼들이다.
상징인 옷감을 기운 듯한 누더기옷차림에 궁우르(종)를 발에 끼우고 기타를 닮은 도따라와 해금과 비슷한 엑타라, 장고처럼 생긴 빠꾸와즈와 따블라를 성구로 이용해 신을 찬양한다.
우리로 치자면 작은 유랑극단이라 할 수 있는 데, 신을 노래하기 위해 거리에 나서면서도 나머지 시간을 그들의 아쉬람에서 명상과 금욕으로 채우는 성자들이다. 입에서 입으로 노래를 전해온 이들의 역사를 따지자면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집시와 바울의 조상이 유전자가 거의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만큼 방랑의 피가 짙다.
“뜨위누뜨 모아뿌리라는 성자가 있었다. 크리슈나신을 숭배하던 그가 신에 대한 찬양가를 만들어 퍼뜨렸고, 뒤따르던 무리가 바울의 시초가 됐다”. 샨티니케탄에 온 바울 패거리의 리더 도룬 캡바(46)는 ‘호리볼’(호리신의 이름으로 인사를)이라고 인사한 뒤 바울에 대해 소개했다.
15살 무렵부터 그룹을 따라 선조의 노래를 입에 옮긴 그는 유럽에서 공연 요청을 받을 정도로 최고의 실력을 가진 바울 중 한명이다. 특이한 것은 힌두의 신을 숭배하면서도 지금의 바울이 섬기는 신은 ‘우리 모두’라는 것. 그는 “신앙이 없는 인간은 불행하다. 내게 신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사람이 신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전하고, 나누는 것이 신을 사랑하는 행위라고 믿는다”고 했다. 특정 신을 찬양하던 과거와 다소 변했다지만 신의 숫자만 10만이라는 인도에서 이웃을 신으로 섬긴다면 어떠랴.
바울들이 흥겹게 악기를 연주하자 바울을 원형으로 둘러싼 주민들은 박수로 박자를 맞췄고, 사이사이 구경꾼들은 바울의 음악에 몸을 맡겼다. 흥겨움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신분이 다른 주민들이 떼지어 바울과 어울렸다. 공식적으로 카스트 제도가 없어졌지만 여전히 계급이 실효적인 인도에서 이 작은 무대는 잠시나마 ‘출신’을 뛰어넘는 ‘화합의 장’이 된다. 단골 레퍼토리인 ‘라롱기띠’(라롱의 노래)는 이럴 때 청중을 휘어잡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강물이 꽉찬 물 위에 마야(산스크리트어로 신기루)의 보트가 왜 떠다니는 지 너희는 이해 못 할거야” 같은 어려운 시구로 ‘덧없는 인생’을 읊은 뒤 ‘우리는 하나다’고 노래한다.
바울이 ‘사람이 신이고, 사람은 하나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인도 국민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리안이나 드라비디안이 아닌 소규모 부족으로서, 낮은 신분으로 억압과 핍박속에 살아온 한을 풀어내는 데 의미가 있다. 더 나아가 힌두교를 믿는 힌디이면서도 힌두의 카스트 제도를 없애자는 개혁 의식도 있다.
도룬 캡바는 “카스트는 구루(神)가 사람의 성향을 보고 사제나 무사, 일꾼 등으로 점지해준 것인데 세속화되어 계급으로 변질됐다”며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카스트 제도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설파했다.
바울의 인본주의 철학과 맞물려 이들의 노래를 청하는 대중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벵갈 지방에서 사람이 몰리는 곳은 대부분 그들의 놀이터가 된다. 벵갈의 주민들은 생일이나 결혼식이 되면 바울을 가장 먼저 초대하고, 바울의 신에 대한 찬가가 들려야 비로소 축제의 문을 연다.
샨티니케탄 비슈와바라티 대학의 사브즈콜리 센(56) 철학과 교수는 “제도가 희미해져가긴 하지만 차별속에서 살아온 낮은 카스트의 인도인들이 바울의 노래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며 “신을 숭배하되 그 신이 만든 카스트를 해체하자는 것도 인도사회의 특징인 다원성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인도 샨티니케탄=임동률 기자
인도 동부 웨스트벵갈주의 주도 꼴까따에서 130여㎞ 떨어진 작은 대학도시 샨티니케탄. 아시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라빈드라나뜨 타고르가 1901년 야외실험학교를 세운 이곳에서 6명의 ‘바울’(baul) 패거리를 만났다.
상징인 옷감을 기운 듯한 누더기옷차림에 궁우르(종)를 발에 끼우고 기타를 닮은 도따라와 해금과 비슷한 엑타라, 장고처럼 생긴 빠꾸와즈와 따블라를 성구로 이용해 신을 찬양한다.
우리로 치자면 작은 유랑극단이라 할 수 있는 데, 신을 노래하기 위해 거리에 나서면서도 나머지 시간을 그들의 아쉬람에서 명상과 금욕으로 채우는 성자들이다. 입에서 입으로 노래를 전해온 이들의 역사를 따지자면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집시와 바울의 조상이 유전자가 거의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만큼 방랑의 피가 짙다.
바울들이 흥겹게 악기를 연주하자 바울을 원형으로 둘러싼 주민들은 박수로 박자를 맞췄고, 사이사이 구경꾼들은 바울의 음악에 몸을 맡겼다. 흥겨움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신분이 다른 주민들이 떼지어 바울과 어울렸다. 공식적으로 카스트 제도가 없어졌지만 여전히 계급이 실효적인 인도에서 이 작은 무대는 잠시나마 ‘출신’을 뛰어넘는 ‘화합의 장’이 된다. 단골 레퍼토리인 ‘라롱기띠’(라롱의 노래)는 이럴 때 청중을 휘어잡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강물이 꽉찬 물 위에 마야(산스크리트어로 신기루)의 보트가 왜 떠다니는 지 너희는 이해 못 할거야” 같은 어려운 시구로 ‘덧없는 인생’을 읊은 뒤 ‘우리는 하나다’고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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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12월 샨티니게탄 인근 주민들이 손수 만든 물건들을 내놓고 판매하는 ‘포쉬멜라축제’ 현장. |
바울이 ‘사람이 신이고, 사람은 하나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인도 국민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리안이나 드라비디안이 아닌 소규모 부족으로서, 낮은 신분으로 억압과 핍박속에 살아온 한을 풀어내는 데 의미가 있다. 더 나아가 힌두교를 믿는 힌디이면서도 힌두의 카스트 제도를 없애자는 개혁 의식도 있다.
도룬 캡바는 “카스트는 구루(神)가 사람의 성향을 보고 사제나 무사, 일꾼 등으로 점지해준 것인데 세속화되어 계급으로 변질됐다”며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카스트 제도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설파했다.
바울의 인본주의 철학과 맞물려 이들의 노래를 청하는 대중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벵갈 지방에서 사람이 몰리는 곳은 대부분 그들의 놀이터가 된다. 벵갈의 주민들은 생일이나 결혼식이 되면 바울을 가장 먼저 초대하고, 바울의 신에 대한 찬가가 들려야 비로소 축제의 문을 연다.
샨티니케탄 비슈와바라티 대학의 사브즈콜리 센(56) 철학과 교수는 “제도가 희미해져가긴 하지만 차별속에서 살아온 낮은 카스트의 인도인들이 바울의 노래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며 “신을 숭배하되 그 신이 만든 카스트를 해체하자는 것도 인도사회의 특징인 다원성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인도 샨티니케탄=임동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