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이 많이 소개된다. 국가가 잘못된 법령이나 제도를 운영해 손해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나 구입한 물건에 하자가 있는데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소비자의 이야기, 아르바이트를 했는데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그런 것들이다. 이런 억울함은 대개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큰 손해가 아니기 때문에 해결되지 못한 채 피해자의 일방적인 양보로 끝나게 마련이고, 이런 일은 끊이지 않고 계속 생긴다.

직업이 판사여서 그런지 이 같은 사연을 접할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방송에 소개된 자료만으로도 소송을 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이 왜 소송을 통해 해결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살인범, 강도범을 재판하는 형사사건이 있고, 전 재산이 왔다 갔다 하면서 절박하게 다투는 민사사건과 같이 보통 사람은 평생 경험하기 힘든 사건도 있지만, 법원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부딪히는 갖가지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때도 있다. 이런 사건들의 이해관계 자체는 크지 않지만 자신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 치열하게 다투는 경우가 많아서 역시 해결하기 쉽지 않다.

여러 재판부에서 동시에 여러 건의 소송을 진행하는 당사자가 있었다. 이 사람은 여러 명을 상대로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몇천만원을 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하는데, 그 이유들은 가전제품을 제대로 수리를 해주지 않아 불편을 겪었다는 등 생활 속의 일들이다.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은 아니지만 무리한 청구를 하는 경우가 많아 패소하거나 승소하더라도 몇십만원 정도의 금액만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이 사람이 제출한 자료가 너무 많아서 검토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판결 선고를 연기한 일이 있었다. 보통 신속한 해결을 원하는 당사자로서는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을 텐데, 그 연기 소식을 접하고는 “판사들이 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도리어 크게 웃었다는 말도 전해들었다. 판사가 자신의 주장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것 같았다.

사회가 존재하는 한 분쟁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작은 일에도 옳고 그름은 있게 마련이고 둘 다의 잘못이더라도 누구의 잘못이 더 큰 가의 문제가 남는다. 필자는 부당하고 억울한 느낌이 있어 양보하기 싫은 일이 생긴다면, 그 분쟁을 덮어 두고 회피하기보다는 차라리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생각과 기준이 다르다면, 누구에게나 가장 공평하고 합리적인 분쟁해결은 법에 의한 해결이다. 모든 분쟁이 법에 따라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면, 법치주의가 정착될 수 있다.

소송을 통한 분쟁해결은 여전히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드는 방법이고 굳이 모든 일에 옳고 그름을 가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싸움을 잘하는’ 부부가 행복한 것처럼 작은 갈등을 그때그때 공평하게 해결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것이고 비용이 좀 든다고 해서 그 해결을 미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같은 소송을 반복하면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일이나 소송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은 없었으면 좋겠다. 언제든지 조금 양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할 것이며, 판결이 됐으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승복하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모두가 가졌으면 한다.

위에서 언급한, 소송을 즐겨하던 그 사람이 요새는 법원에 발길이 뜸하다. 많은 소송을 벌이고도 이긴 게 별로 없으니, 경제적으로 많이 부담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송들이 그 사람과 소송에 연관된 사람들에게 값진 경험이 됐을 것이라 믿는다. 또 억울한 일을 당하였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법원에 오셔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