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로 근무하다 보면 여러 종류의 편지를 받게 된다. 검찰 수사를 통해 누명을 벗었다는 피의자의 감사 편지, 가해자를 엄벌해달라며 아픔을 호소하는 피해자의 편지, 자식을 한 번만 용서해 달라며 피의자 부모가 쓴 눈물의 편지 등.

사연 하나하나마다 꾹꾹 눌러쓴 글씨마다 어린 글쓴이의 마음 때문에, 편지를 읽으며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하고 도움을 주지 못함에 안타깝기도 하다. 그 많은 편지 중에 유독 잊을 수 없는 편지가 있다. 그에게서 처음 편지가 왔을 때는 그 인연이 이렇게까지 계속 이어질 줄 몰랐다. 그리고 그를 이렇게 기억하게 될 줄도 몰랐다.

전임지인 원주에서 근무하던 때 그는 구속 피의자의 신분으로 검사실에 왔다. 그에게는 이미 동종 전과가 두 번이나 있었고 누범 기간 중 재범해 구속된 터였다. 날이 선 말투로 범행을 추궁했고 차가운 눈길로 그를 대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정해진 형이 2배 가중돼 그에게 구형 가능한 형의 최하한이 징역 20년이었고, 필자는 법대로 구형했다. 처리해야하는 많은 다른 사건들에 밀려 그 사건은 그리고 그는 오래지 않아 내게 잊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지금은 많이 뉘우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교도소에서 피고인들이 보내는 반성문과 같은 편지는 드물지 않게 받아왔으므로 별다른 감흥 없이 편지를 서랍 속에 넣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그에게서 또다시 편지가 왔다. 여전히 반성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 한 달 후에도 그리고 또 한 달 후에도 그는 계속 편지를 보내왔다.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는 이야기, 항소심에서 범행을 부인해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형이 확정된 이후에는 교도소 안에서 겪는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도 적어 보내왔다. 교육을 받게 된 이야기, 체육대회 이야기도 있었다. 처음에는 필자가 원망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피해자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고맙다고 했다. 함께 수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검사에게 편지를 보내는 자신을 비웃기도 하지만, 정말로 고마워서 편지를 계속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그의 의도를 의심했다. 필자에게 편지를 써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 그 밑에 깔린 생각을 궁금해 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편지를 읽으며 필자의 마음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못했던 그가 소식을 전할 사람이 필자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수사를 위해 내가 그와 대면했던 시간은 5∼6시간이 채 안 됐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그를 본 것이 전부였음에도 마치 내가 그의 인생 29해 전부를 아는 양 굴었던 것은 아닐까. 그에게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까닭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말투와 눈빛이 그가 사회에서 받은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주었던 것은 아닐까.

원주를 떠나 이곳 광주로 오면서 그에게 답장을 썼다. 지금 각오 그대로 건강히 출소해 사회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조심히 담아 몇 권의 책과 함께 그에게 보냈다. 근무지를 옮기면서 이제 그 인연이 끊어졌으리라 생각했는데 그의 편지는 광주에까지 이어졌다. 한 달에 한 번, 편지 속의 그는 여전히 씩씩하고 반성한다. 필자는 모범적으로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를 늘 응원하고 있고, 감사를 전하는 그에게 도리어 감사한다. 필자를 좋게 기억해줘 진심으로 고맙고 송구하다.

그는 필자를 많이 변화시켰다. 그가 한 달에 한 번, 편지를 쓰며 지나온 시간을 반성하듯 그의 편지를 받고 스스로 돌아본다. 오늘 검사실을 다녀간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마음이 다쳐 이곳에 온 사람들에게 필자는 어떤 검사였나. 부족함을 실감하며 이를 채우기 위해 오늘도 애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