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수시로 부닥칠 텐데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가리켜 꿈의 직장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 판사들은 재판을 하는 1주 단위로 다람쥐쳇바퀴 돌듯 규칙적으로 생활할 뿐만 아니라 재판장인 판사는 재판일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므로 어떻게 보면 야근을 멀리할 수 있는 직업군에 속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필자가 그간 판사생활을 해 보니 야근을 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선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건을 충분한 심리를 하면서도 가능하면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뇌리를 지배하다 보니 느긋하게 사생활을 즐길 마음의 여유를 찾기 어렵다.

게다가 요즘 사건들은 과거에 비해 어찌나 복잡한지, 또 변호사들이나 당사자들의 주장은 또 얼마나 다양하고 치열한지 모른다.

때문에 필자나 주변의 판사들은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다반사로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한 선배 판사님은 “일은 근무시간에 해야지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하는 것은 무능한 것 아니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런 선배 판사님도 아침에 한 시간 일찍 나와 저녁에는 정시보다 2시간쯤 늦게 퇴근하는 것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앞서 선배 판사님같이 시간을 쓰면 주말근무나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는데 천성이 게으르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일의 능률이 오르는 습성을 가진 필자는 야근이 생활화돼 주말이나 밤늦게 사무실에서 일하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매번 하시는 말씀이 “일반직원들이 일을 도와주지 않느냐, 왜 지금까지 일하고 있느냐” 하시는데 그때마다 필자는 앵무새처럼 “판사 일은 일반직원들이 못하고 판사가 직접 해야 해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렇게 일이 많으면 판사 수를 늘리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시는데 그때마다 필자는 또 “판사 수를 늘리고는 있는데 사건 수가 더 빨리 늘어나서 마찬가지예요”라고 답하곤 했었다.

야근을 할 때 제일 괴로운 계절은 여름인데 여름밤에 야근을 할라치면 모기떼가 극성을 부려 괴로움을 겪곤 했다. 이에 필자가 고등법원 배석판사로 근무할 때는 어떤 고등부장님이 모기향을 다량 구입해 각 배석판사실에 돌리기도 하셨다.(몇 년 전 창문에 방충망을 달아 모기 문제는 이제 해결됐다) 또 괴로운 것이 밤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 선풍기만으로 더위를 견디며 일하는 것인데 필자는 할 수 없이 반바지를 입고 런닝셔츠 바람으로 일하는 방법으로 해결했는데 이번 인사이동으로 여판사가 왼쪽 배석판사로 배치돼 올 여름에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기록을 싸들고 에어컨이 있는 집에 가서 야근을 하는 방법도 있다. 필자의 둘째 아들이 어른들의 눈을 피해가며 전자사전에 저장해 놓은 인터넷소설을 탐닉하는 것이 심해질 때면 계절에 상관없이 기록을 싸들고 집에 가 둘째 아들 책상 옆에 기록을 펼쳐놓고 감시하며 일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집에서 하는 일은 능률이 오르지 않고 심지어 당장 급하지 않으면 기록을 펼치지도 않은 채 싸간 그대로 사무실로 가져오기도 하여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싶다. 요즘 판사의 재판에 따가운 비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판사의 야근에 대해 장황하게 썼다. 물론 야근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국민이 신뢰하고 만족하는 재판을 하는, 그래서 존경받는 판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