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신임검사로 부임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아버지와 잘 아는 분이 식사를 하자고 해서 별생각 없이 나갔다가 그분으로부터 “채무자가 기한이 지났는데도 돈을 줄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혹시 고소하면 그 사람을 불러 돈을 갚도록 해 줄 수 있느냐”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하자니 아버지에게 혹시 누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난처한 적이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 원칙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많은 법조인들이 필자와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을 것 같다.

필자가 지난해 중국 상하이총영사관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있을 때 위와 같은 고민과 관련된 흥미있는 신문기사를 보게 됐다.

중국 절강성 고급법원은 2012년 7월 모두 41페이지로 된 포켓북 형식의 ‘부드러운 처리, 거절의 예술 - 선물거절, 청탁거절, 부탁거절’을 발간해 법관들에게 배포했다고 한다. 절강성 고급법원장은 “법관은 거절할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용감하게 할 줄 알아야하고, 또 예술적인 거절에도 능숙해야 한다”고 하면서 책 발간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가이드북에는 ▲수년간 연락이 안 되던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사건당사자가 주소를 알아 방문한다고 했을 때 ▲사건당사자가 관혼상례 소식을 알고 부조금을 넣었을 때 ▲휴대폰 통화비용이 저절로 충전됐을 경우 ▲친구가 보내준 지역특산품 안에 선물용 카드나 현금이 들어있을 경우 등 24가지 상황을 제시하면서 법관이 이러한 경우 어떻게 청탁을 거절해야 하는지, 문답형식으로 그 대처방법을 소개했다. 그 예를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상황 1

어느 날 선배가 식사에 초대를 했는데 자리에 가보니 사건당사자가 와 있을 때, 만약 식사도중에 사건당사자와 합석이 됐을 때.

처리 방법

어떠한 경우든지 사건당사자가 있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핑계를 만들어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가령 집사람한테 전화가 와서 집안에 급히 일이 생겨 가봐야 한다든지, 상급자가 전화가 와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든지 등등). 만약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고 자리를 뜨는 것이 쉽지 않을 경우에는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피하며, 당사자에게 정상적으로 방문해서 서면으로 필요한 내용을 제출할 것을 권유하면서 원칙을 지켜야 하고 식사 후에는 초대한 사람에게 법원의 관련 규율을 설명하고 양해해줄 것을 요청함과 동시에 즉시 조직에 상황설명을 하고 해당사건에 대해 회피신청을 해야 한다.

상황 2

어느 날 예전에 모시던 상급자가 전화가 와서 주심판사로 있는 사건의 심판결과를 물어볼 때.

처리 방법

먼저 그분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건강 등의 안부를 물어본 후, 그 사안은 현재 심리중이고 더 조사가 필요한 상황으로 아직 어떤 결론에 이르지 못했는데 공정한 절차를 거칠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한다. 또 판결문이 당사자에 송달된 이후에 적극적으로 그분에게 심판결과를 설명한다.

필자도 신임검사시절에는 청탁을 하는 분에게 무작정 안 된다고 하면서 그 처리를 소홀히 했다가 괜한 오해로 관계가 힘들어지는 경험을 했다. 세월이 조금 지난 지금 그 같은 상황을 다시 겪는다면 보다 부드럽고 세련되게 대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연륜이 있는 선배들은 상대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거절하는 기술, 이른바 거절의 예술을 터득하신 분들인 것 같다. 우리도 중국과 같은 책자형식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법조 선배님들과 후배들이 이러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자료가 있으면 좋겠다. 거절의 예술을 갖춘 분들이 많은 따뜻하고도 정의로운 내 고장이 되길 오늘도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