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권위 사이 ‘판결문 고민’
2013년 03월 25일(월) 00:00 가가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자백이 잠을 재우지 아니한 채 폭언과 강요, 회유한 끝에 받아낸 것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해당한다면 형사소송법 제309조의 규정에 의하여 그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고, 임의성 없는 자백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취지가 허위진술을 유발 또는 강요할 위험성이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진 자백은 그 자체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오판의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진위 여부를 떠나서 자백을 얻기 위하여 피의자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위법부당한 압박이 가하여지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한 것이므로, 그 임의성에 다툼이 있을 때에는 그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피고인이 입증할 것이 아니고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해소하는 입증을 하여야 한다.”
필자가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처음 판결문을 접했을 때의 일이다. 오래전 일이라 판결의 내용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 판결이 주었던 인상이 무척 강렬해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 판결은 판결문 전체가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 끊어 읽어야할지 고민됐고, 읽다가 문맥을 놓쳐 다시 되돌아 읽기를 반복했다. 또 그 판결은 분명히 한글로 쓰여 있었지만 처음 보는 용어와 생소한 표현 때문에 마치 영문을 읽을 때처럼 용어를 찾아보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나서야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시절 필자가 법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법학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그 시절 필자가 곧 법원에 문을 두드리는 평범한 소송당사자들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소송을 거쳐 판결문을 처음 받아보는 소송당사자들이 판결문을 읽고 나서 드는 느낌 또한 그 시절의 필자와 같지 않을까. 수개월 동안 재판을 거쳐 판결이 선고되기만을 기다리던 소송당사자들이 판결문을 받고 나서 그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소송당사자들은 사법부를 심하게 말해 ‘정체불명의 괴문서를 작성하는 집단’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의학드라마를 보면 의사들이 온갖 의학 전문 용어로 대화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그때 화면 하단에는 친절하게 자막을 통해 시청자가 용어들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해 주곤 한다. 만일 의사들이 환자들을 대할 때 자막과 같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라 의사들끼리 쓰는 전문 용어로 환자의 병이 무엇인지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설명해 준다면 환자는 그 의사를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는 소통이다. 법원 역시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는 법원이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 판결문 작성이라고 생각한다. 판사들이 타성에 젖어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법률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어렵기만 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판결문을 작성한다면 소송당사자들 역시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법원이 되기 위해서는 판결문을 작성할 때도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근래에는 판사들이 이해하기 쉬운 판결문을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굳이 판결서개선위원회의 활동과 그 성과물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판사 개개인들이 호흡이 긴 문장은 끊어 쓰고, 한자 용어와 일본식 표현은 가급적 우리말로 표현하려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법률 자체가 어려운 용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낯선 용어를 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고 판결문이 가져야 할 무게감 때문에 일상적인 표현으로 판결문을 작성하기 어려운 점도 있기 때문에 판결문을 작성하는 판사들은 늘 고뇌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법의 권위를 살릴 수 있는 판결을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판사의 숙명인 것 같다.
끝으로 앞서 소개한 판결문을 쉽게 바꿔 쓴 예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피고인이 검찰에서 한 자백이 잠을 재우지 아니한 채 폭언과 강요, 회유 끝에 받아낸 것이고 피고인이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형사소송법 제309조의 규정에 따라 그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 임의성 없는 자백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허위진술을 유발하거나 강요할 위험이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자백은 그 자체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잘못된 판단을 할 소지가 있다. 둘째, 자백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여부를 떠나서 자백을 얻기 위하여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위법부당한 압박을 가하는 것을 미리 막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자백의 임의성에 다툼이 있을 때에는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해소하는 입증을 하여야 한다. 그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피고인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김남일 광주지방법원 민사 23단독 판사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는 소통이다. 법원 역시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는 법원이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 판결문 작성이라고 생각한다. 판사들이 타성에 젖어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법률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어렵기만 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판결문을 작성한다면 소송당사자들 역시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법원이 되기 위해서는 판결문을 작성할 때도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근래에는 판사들이 이해하기 쉬운 판결문을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굳이 판결서개선위원회의 활동과 그 성과물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판사 개개인들이 호흡이 긴 문장은 끊어 쓰고, 한자 용어와 일본식 표현은 가급적 우리말로 표현하려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법률 자체가 어려운 용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낯선 용어를 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고 판결문이 가져야 할 무게감 때문에 일상적인 표현으로 판결문을 작성하기 어려운 점도 있기 때문에 판결문을 작성하는 판사들은 늘 고뇌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법의 권위를 살릴 수 있는 판결을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판사의 숙명인 것 같다.
끝으로 앞서 소개한 판결문을 쉽게 바꿔 쓴 예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피고인이 검찰에서 한 자백이 잠을 재우지 아니한 채 폭언과 강요, 회유 끝에 받아낸 것이고 피고인이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형사소송법 제309조의 규정에 따라 그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 임의성 없는 자백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허위진술을 유발하거나 강요할 위험이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자백은 그 자체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잘못된 판단을 할 소지가 있다. 둘째, 자백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여부를 떠나서 자백을 얻기 위하여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위법부당한 압박을 가하는 것을 미리 막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자백의 임의성에 다툼이 있을 때에는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해소하는 입증을 하여야 한다. 그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피고인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김남일 광주지방법원 민사 23단독 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