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바람의 나그네 외투 벗기기
2013년 04월 01일(월) 00:00 가가
이윤구 광주지검 형사1부 검사
이솝우화 중에 해와 바람의 나그네 외투 벗기기 이야기가 있다. 해와 바람이 누가 더 센지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겨 보자고 내기를 했는데 결국 해가 이겼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해는 어떻게 내기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나는 이 이야기를, 상대방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강한 외부의 힘이 아니라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고 해는 나그네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이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검사로 일하다 보면 온갖 피의자를 접하게 된다. 반성하는 사람, 변명하는 사람,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사람, 심지어 공격성을 내보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누구나 쉽게 온전한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왜일까? 처벌을 받게 될지 모르는데 굳이 불리한 사실을 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그렇다면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검사로서 어떻게 해야할까? 증거가 충분하다면야 피의자가 뭐라고 말하건 상관이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피의자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도 많다. 진실을 찾는 과정은 비유하자면 직소퍼즐(그림조각 맞추기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인 것 같다. 현실에서는 잃어버린 조각이 많다. 흩어진 조각을 맞추기 전에 잃어버린 조각을 전부 찾아내는 것이 일단 큰 어려움이다. 몇 개가 빠진 나머지 조각들만으로도 퍼즐을 맞춰 그림을 대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면 일단 진실의 커다란 줄기는 알아냈다고 할 수 있고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러나 역시 온전한 진실을 찾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수사를 하다 보면 피의자의 말이 중요한 순간이 있다. 피의자는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예컨대 왜 사람을 살해했는지는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말해주지 않으면 여러 증거와 정황으로 짐작을 할 뿐이다. 그럼 피의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말을 할 이유가 있을까? 피의자도 대충 안다. 이런 말은 하지 않으면 검사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으면 모를 이야기를 스스로 꺼내는 피의자들도 있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쁜 잘못을 했던 피의자라도 사람 자체가 100% 악인은 아니다. 다른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조사를 받는 그 순간에 어떤 내적인 마음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조사한 경험 중에 상반된 두 사례가 있다. 하나는 고의 교통사고를 일으켜 억대 보험금을 편취한 피의자였다. 구속되어 왔던 그 피의자는 도망간 주범의 친동생이었다. 친형과의 공모범행이 명백했음에도 친형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면서 매우 불량한 조사 태도를 보여 당시 화가 났었다. 증거를 들이대면서 강하게 추궁했으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피의자로부터 속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다른 하나는 직업소개업을 하던 중 받은 소개비를 횡령하고, 종업원 아가씨에게 자기 대신 처벌을 받도록 수사기관에서 거짓 조사를 받게 하고, 스스로는 법정에서 위증까지 했던 피의자였다. 이미 다른 사건으로 구속재판을 받던 중이었고 전과도 많았다. 조사 당시 역시 예상대로 오랜 시간 완강하게 부인했었다. 그러나 계속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서 물어봤다. 그리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왜 이 사람은 부인할까?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이 뭘까? 어떤 사정이 있어서 이런 범행을 했을까? 실제로 피의자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의자에게 말했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증거들에 의하면 000씨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근데 내가 보니 000씨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아마 오래돼 기억에 혼동이 있는 게 분명해요. 내일 재판도 있어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인데 원하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줄게요. 원하면 다음에 와서 다시 조사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차를 한 잔 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차를 다 마신 피의자가 “검사님, 오늘 그냥 조사 받고 가겠습니다. 제가 다 이야기 할게요”라면서 감춰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물론 말해주지 않으면 내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앞의 사례에서의 필자는 이솝우화에서 바람과 같았던 것이고, 뒤의 사례에서는 해와 같았던 것이다. 피의자로부터 진짜 속마음을 듣고 나면 그 말을 듣고 기소를 해야 하는 검사 입장에서는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한편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낸 것 같아 뿌듯하고 여운이 오래 간다.
이솝우화의 해와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 마음을 얻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오늘도 높이 쌓인 기록 속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지만, 그 속에서 진실을 찾고 사람 마음을 얻는 길을 찾아본다.
그렇다면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검사로서 어떻게 해야할까? 증거가 충분하다면야 피의자가 뭐라고 말하건 상관이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피의자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도 많다. 진실을 찾는 과정은 비유하자면 직소퍼즐(그림조각 맞추기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인 것 같다. 현실에서는 잃어버린 조각이 많다. 흩어진 조각을 맞추기 전에 잃어버린 조각을 전부 찾아내는 것이 일단 큰 어려움이다. 몇 개가 빠진 나머지 조각들만으로도 퍼즐을 맞춰 그림을 대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면 일단 진실의 커다란 줄기는 알아냈다고 할 수 있고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러나 역시 온전한 진실을 찾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가 조사한 경험 중에 상반된 두 사례가 있다. 하나는 고의 교통사고를 일으켜 억대 보험금을 편취한 피의자였다. 구속되어 왔던 그 피의자는 도망간 주범의 친동생이었다. 친형과의 공모범행이 명백했음에도 친형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면서 매우 불량한 조사 태도를 보여 당시 화가 났었다. 증거를 들이대면서 강하게 추궁했으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피의자로부터 속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다른 하나는 직업소개업을 하던 중 받은 소개비를 횡령하고, 종업원 아가씨에게 자기 대신 처벌을 받도록 수사기관에서 거짓 조사를 받게 하고, 스스로는 법정에서 위증까지 했던 피의자였다. 이미 다른 사건으로 구속재판을 받던 중이었고 전과도 많았다. 조사 당시 역시 예상대로 오랜 시간 완강하게 부인했었다. 그러나 계속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서 물어봤다. 그리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왜 이 사람은 부인할까?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이 뭘까? 어떤 사정이 있어서 이런 범행을 했을까? 실제로 피의자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의자에게 말했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증거들에 의하면 000씨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근데 내가 보니 000씨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아마 오래돼 기억에 혼동이 있는 게 분명해요. 내일 재판도 있어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인데 원하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줄게요. 원하면 다음에 와서 다시 조사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차를 한 잔 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차를 다 마신 피의자가 “검사님, 오늘 그냥 조사 받고 가겠습니다. 제가 다 이야기 할게요”라면서 감춰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물론 말해주지 않으면 내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앞의 사례에서의 필자는 이솝우화에서 바람과 같았던 것이고, 뒤의 사례에서는 해와 같았던 것이다. 피의자로부터 진짜 속마음을 듣고 나면 그 말을 듣고 기소를 해야 하는 검사 입장에서는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한편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낸 것 같아 뿌듯하고 여운이 오래 간다.
이솝우화의 해와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 마음을 얻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오늘도 높이 쌓인 기록 속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지만, 그 속에서 진실을 찾고 사람 마음을 얻는 길을 찾아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