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 속 예쁘고 멋진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현란한 변론기술을 선보이면서 각종 법률개념 및 법리를 주장하는 모습을 상상한 사람이라면 실제 법정의 모습에 의아해 하기 쉽다. 필자도 법정에서의 변론을 실제 경험하고 이해하기 전까지는 드라마 속 변호사를 꿈꾸었다. 그리고 아직 경험은 일천한 변호사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법률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가치가 아닐까 싶다. 법률분쟁은 본래 사람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건은 사람간의 이해관계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가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을 맡고 가장 중요한 것은 법리나 법률개념이 아니라 의뢰인과의 소통이다. 실제 법정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재판부나 검사, 상대 변호인이 아니라 자신이 그 사건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건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실제 사건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 업계 선배로부터 “법정에서 변호사는 의뢰인의 부모가 돼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부모라면 당연히 의뢰인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존중하면서, 법정에서 의뢰인 편에 있어 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말의 의미가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 크게 다가온다.

지난해 대비되는 2가지 사건을 경험했다. 첫 번째는 삼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부모의 의사에 따라 결혼을 한 뒤 혼수 문제 및 성격 차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파혼을 하고 수억 원의 예물을 돌려달라는 사건이었는데, 필자 스스로 당사자 간 문제를 납득하기 어려워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두 번째는 수사기관에서 매우 불리하게 조사를 받고, 증거도 불리한 것밖에 없었던 피의자였는데, 의뢰인의 말을 신중히 듣고 서로 교감하면서 피의자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해 구속영장을 기각시킨 사건이었다. 모든 사건이 변호사의 생각과 같은 결론이 나지는 않지만, 그만큼 변호사가 의뢰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또 법률가는 많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법조문의 문구나 법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법률가들은 법률용어나 법리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에 있어서는 전문가지만, 경제, 공학, 농업, 산업, 건축, 금융, 의학 등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천태만상의 분쟁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최재천 교수는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Consilience’를 번역하면서 통섭(統攝), 즉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 핵심 논리는 “우물을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한다”는 말로 간단히 설명된다. 즉 법률분쟁에 대비시켜 보면 사안을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변상황을 넓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 사이의 복잡한 법률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도 통섭의 필요성을 느낀다. 일례로 몇 년 전 수입자동차 딜러 간 담합에 대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결정의 심리과정에서는 정치한 법리보다는, 수많은 통계학적 분석자료와 자동차의 성능이라는 공학적 지식 및 재화의 대체 소비가능성이라는 경제학적 분석이 핵심이 됐다.

따라서 법률분쟁을 해결함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한 경험이나 지식이 필요하지만, 한 개인이 모든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법률문제는 단순한 법의 적용이나 법리 및 논리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가는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개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며, 그 사람들이 수긍할만한 결론을 내야한다. 그리하여 법률가는 사람들 위에 서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1명의 사람이어야 한다. 또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함께 호흡하는 변호사가 필자가 추구해야할 최종 목적지임을 되새겨본다.

/정우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