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법의 공정하지 못한 적용, 또는 잔인한 가해자에 대한 온정적인 처벌 등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한다. 정말 법은, 던컨 J. 와츠의 책 제목을 끌어다 말하자면 ‘상식의 배반’이 난무한 영역일까?

며칠 전 필자는 약 2년 반에 걸쳐서 진행했던 소위 경계선 재판을 마무리했다. 경계선 재판은 쉽게 말해 갑 소유 토지를 을이 권한없이 침범하여 점유하고 있을 때, 갑은 을에게 지상 건물 철거청구 및 해당 침범 토지의 반환청구 나아가 을이 점유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반환할 때까지의 임료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하게 되고, 을은 이 경우 대부분 반소로 취득시효 완성을 원인으로 하여 갑에게 해당 부분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하는 구조가 된다.

위와 같은 소송에서 갑 측의 소송대리를 맡았는데, 을이 갑의 토지를 침범한 면적은 총 13㎡에 불과했다. 갑은 소송 초기부터 침범 부분 13㎡ 중에서 현재 공터인 6.5㎡만 갑에게 돌려주면 그동안 못 받은 임료 상당 부당이득 반환청구나 나머지 부분의 건물 철거청구 및 반환청구를 일체 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수차례 피력했다.

그러나 을은 해당 부분을 그동안 본인의 땅으로 알고 점유했는데 어떻게 이제와서 돌려주느냐며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 심정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갑의 입장에서는 을뿐만 아니라 을 이전의 전 점유자와도 그동안 수차례 토지 경계선 침범 문제가 공론화됐고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기 때문에 을이 무조건 몰랐다고 하는 것을 그저 그대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심 재판부는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 부분, 즉 갑이 현실적으로 매우 필요하면서 을에게는 큰 손해가 없는 부분만 갑이 반환받고 해당 부분의 임료 상당 부당이득을 돌려받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했다.(원고 일부 승소)

갑으로서는 이웃이므로 위와 같은 판결이 선고된 점을 감사하며 별도로 항소할 생각이 없었으나, 을이 먼저 항소를 하기에 갑도 뒤이어 패소한 부분에 대해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에서도 갑을 소송대리한 필자는 갑의 기본 입장을 몇 차례 밝혔지만, 을은 역시 조정의 의사가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을의 건물이 위치한 부분까지 다시 청구취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했고 변론 종결 직전에도 다시 한 번 서로 간 원만한 합의를 제안해 보았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로 변론이 종결됐다.

원만한 합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꺼냈던 것은, 소송을 빨리 끝내고자 함도 아니요, 재판이 일방적으로 갑에게 너무나 불리해서도 아니었다. (이미 소송은 장기화돼 있었고 재판의 유·불리는 억지주장을 해야 할 정도로 불리한 상황도 아니었다) 다만 그야말로 이 소송이 ‘이웃 간의 소송’이기에 조정이 될 경우 실제 진실은 차치하고 앞으로도 조금은 더 너그럽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법의 잣대를 들이댄 결과가 모든 상황을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전 항소심 판결 선고일. 감사하게도 오히려 갑이 계쟁 부분 전체를 돌려받고 해당 토지 지상 을의 건물은 철거하고 그동안 못 받은 임료 상당 부당이득도 전부 받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 받았다.(원고 전부 승소)

A라고도 볼 수 있고 B라고도 볼 수 있을 때는 ‘경험칙’도 중요한 판단의 준거가 되는데 경험칙은 달리 말하면 ‘상식’이다. 재판에서 패소한 사람에게 그 판결은 여지없이 ‘상식의 배반’이 되고 말 것이고, 반면에 재판에서 이긴 사람에게 그 판결은 ‘상식과의 동거’에서 비롯된 정당한 판결이 될 것이다.

누군가가 법의 판단을 받고자 한다면 그에 앞서 한 번만 더 숨을 고르고 이렇게 본인의 생각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이 상황에서의 상식이란 것이 ‘나만의’ 상식인가, 아니면 ‘누가 보더라도 그러한’ 상식인가.”

/김혜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