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한 사람들
2013년 05월 27일(월) 00:00 가가
집 근처에 자주 가는 식당이 하나 있었지요. 개장한 지 얼마 안 돼 깨끗했고, 맛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천방지축 세 살짜리 아들놈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도 전혀 눈치 주지 않고, 항상 친절하게 대해줘서 자주 갔습니다. 근데 손님이 별로 없더군요. ‘이래서 장사가 되나’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은 한가해서 좋았습니다. 결국 얼마 못 가 그 식당은 간판을 내렸습니다. 단골 식당 하나를 잃은 속상함도 잠시, 친절하고 좋았던 식당 사장님은 이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걱정이 들었습니다.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왜 장사가 안 됐을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가게를 접고 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늘 불황이나 위기는 가까이 있게 마련이지요. 월급받아 생활해도, 결혼하고, 아이 낳고, 시간이 갈수록 돈 쓸 곳은 많은데 적은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지요. 예상치 못한 큰돈이 들어가는 일은 꼭 있습니다. 낭비해서가 아니라 국가적인 경제상황 때문에, 뜻하지 않은 어려움 때문에 빚을 못 갚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경우를 위해 마련된 것이 파산과 회생이라는 제도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파산은 가진 재산을 모두 처분해서 채권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 빚을 탕감하는 것이고, 회생은 채무의 일부를 탕감해주는 대신, 나머지는 수년 동안 일을 하면서 나눠 갚는 것입니다. 파산과 회생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가슴 아픈 사연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소싯적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제법 풍찬노숙하며 대학졸업하고 사시에 합격했다고 자부했었지만, 파산과 회생을 신청한 사람들에 비하면 저는 온실 속의 화초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부모님이 계셨고, 도와주는 친척도 있었습니다. 항상 굶지 않을 정도의 돈은 있었고, 어둡고 눅눅한 지하방이라도 잘 곳은 있었지요. 돈을 빌려서 갚지 않는 사람도, 사기를 치려는 사람도, 보증을 서달라는 사람도 없었고요. 제가 부양하지 않아도 가족은 생활할 수 있었고, 도박과 술에 빠져 자식 등록금을 축내는 아버지도 없었지요. 크게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지도 않아 큰돈이 들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파산과 회생 사건에는 그렇게 어렵게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녀는 20대 초반, 순간의 잘못으로 술집에서 일을 했습니다. 술집 주인은 갚을 수 없는 큰돈을 빌려주며 도망치려는 그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 수렁에서 벗어나, 이제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엄마로 성실히 살고 있습니다. 근데 술집 주인은 그 빚을 갚으라고 지금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고, 이런 기가 막힌 사정을 누구에게도 차마 얘기하지 못한 채 개인회생을 신청했습니다. 그녀가 신청서에 썼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고, 무엇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고 지낸 적이 없습니다. 큰 잘못을 했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지금 와서는 너무 큰 욕심이 돼버렸습니다.” 그녀에게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파산과 회생입니다.
일각에서는 파산과 회생에 대해서 걱정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빚을 탕감해주면 누가 빚을 갚겠느냐는 것이지요. 어려운 말로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기야 철학자 플라톤마저도 정의는 빌린 돈을 갚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냥 채무를 탕감해준다는 것은 이상하게 들릴 법도 합니다. 제 소박한 생각에 파산과 회생은 우리 마음속의 사랑과 연민은 아닐는지요. 길을 가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면 주머니를 털어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텔레비전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을 보면, 전화를 걸어 후원금을 기부하고, 선물을 보내는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파산과 회생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영어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unlucky와 loser가 있다고 합니다. 둘 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그 속뜻은 매우 다릅니다. unlucky가 단지 운이 없었다는 뜻인 반면, loser는 실패자, 낙오자라는 의미지요. 전자가 따뜻한 동정과 공감의 시선이라면, 후자는 차갑고 엄정한 비판의 눈초리입니다. 저는 법원에 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loser가 아니라, unlucky라고 생각합니다. 성실하지만 단지 불운한 사람들이지요.
법원은 정의를 추구합니다. 그 정의는 대부분, 누구를 징역 몇 년에 처하고, 누구에게 돈을 주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차갑고 엄정하지요. 하지만 파산과 회생은 unlucky 즉, 성실했지만 불운했던 사람들에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저는 그것이 따뜻한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 따뜻한 정의를 위해서 파산부의 판사들은 오늘도 기꺼이 밤을 밝히며 일하고 있습니다.
/김태균 광주지법 파산3단독 판사
그녀는 20대 초반, 순간의 잘못으로 술집에서 일을 했습니다. 술집 주인은 갚을 수 없는 큰돈을 빌려주며 도망치려는 그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 수렁에서 벗어나, 이제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엄마로 성실히 살고 있습니다. 근데 술집 주인은 그 빚을 갚으라고 지금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고, 이런 기가 막힌 사정을 누구에게도 차마 얘기하지 못한 채 개인회생을 신청했습니다. 그녀가 신청서에 썼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고, 무엇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고 지낸 적이 없습니다. 큰 잘못을 했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지금 와서는 너무 큰 욕심이 돼버렸습니다.” 그녀에게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파산과 회생입니다.
일각에서는 파산과 회생에 대해서 걱정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빚을 탕감해주면 누가 빚을 갚겠느냐는 것이지요. 어려운 말로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기야 철학자 플라톤마저도 정의는 빌린 돈을 갚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냥 채무를 탕감해준다는 것은 이상하게 들릴 법도 합니다. 제 소박한 생각에 파산과 회생은 우리 마음속의 사랑과 연민은 아닐는지요. 길을 가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면 주머니를 털어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텔레비전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을 보면, 전화를 걸어 후원금을 기부하고, 선물을 보내는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파산과 회생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영어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unlucky와 loser가 있다고 합니다. 둘 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그 속뜻은 매우 다릅니다. unlucky가 단지 운이 없었다는 뜻인 반면, loser는 실패자, 낙오자라는 의미지요. 전자가 따뜻한 동정과 공감의 시선이라면, 후자는 차갑고 엄정한 비판의 눈초리입니다. 저는 법원에 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loser가 아니라, unlucky라고 생각합니다. 성실하지만 단지 불운한 사람들이지요.
법원은 정의를 추구합니다. 그 정의는 대부분, 누구를 징역 몇 년에 처하고, 누구에게 돈을 주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차갑고 엄정하지요. 하지만 파산과 회생은 unlucky 즉, 성실했지만 불운했던 사람들에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저는 그것이 따뜻한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 따뜻한 정의를 위해서 파산부의 판사들은 오늘도 기꺼이 밤을 밝히며 일하고 있습니다.
/김태균 광주지법 파산3단독 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