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가 진행되던 지난 2004년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재벌 총수와 가족 등을 포함한 한국인 245명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국세청은 페이퍼컴퍼니 설립 자체가 불법은 아닌 만큼 이들 회사가 탈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면 세무조사를 통해 과태료 부과, 추징 등으로 강력 대응할 방침이라고 한다.

페이퍼컴퍼니는 문자 그대로 물리적인 실체가 없이 서류로만 존재하면서 회사 기능을 수행하는 회사를 말한다. 페이퍼컴퍼니는 회사로서 갖추어야 할 법적인 요건을 구비하고 있고 자회사를 통해 실질적인 기업 활동을 한다는 측면에서는 엄밀하게 따지면 유령회사와는 다르다. 그런데 페이퍼컴퍼니는 세금을 거의 내지 않거나 적게 내는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후 정상적인 사업 수행이 없이 다음과 같이 악용되고 있다. 첫째, 개인이나 기업의 불법자금 세탁, 조세회피, 불법적 탈세 등에 이용되고 있다. 둘째, 우리나라의 세수가 해외로 유출된다. 셋째, 외국인으로 가장한 한국인인 ‘검은머리 외국인’이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자금이 외국에서 유입되는 것처럼 속여 주식시장을 교란한다. 마지막으로, 조세형평에 반한다. 성실하게 사업을 하는 일반 기업인들은 많은 법인세를 납부하는 반면, 조세피난처를 악용하는 자들은 적은 세금을 낸다. 이로 인해 정당하게 세금을 내는 기업인들은 부족한 세수를 채워야 하므로 이중의 피해를 입고 있다.

한편, 2001년 금융지주체제가 도입된 이후 설립된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금융지주회사들도 페이퍼컴퍼니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들은 독자적 사업 없이 은행, 증권, 보험, 종금 등 금융계열사를 자회사로 두고서 자회사 지분소유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금융지주회장은 연봉 10억원 이상을 받으면서 10개 이상의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 선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반면, 직접적인 주인이 없다 보니 견제와 간섭도 거의 받지 않고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거나 투자손실이 날 경우에도 해당 자회사 CEO가 대부분 책임을 진다. 더군다나 10억원에 달하는 금융지주회장의 연봉은 어디에서 나올까? 아마도 돈 없는 일반 서민들의 금융수수료와 대출이자, 보험료 중 사업비, 고객을 상대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통해 적립된 돈 등에서 나올 것이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공적자금까지 투입되었으니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아파트분양을 할 때, 유명 건설회사는 대외적으로 분양의 주체인 것처럼 자기의 이름으로 분양광고를 하고, 분양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담당한다. 그런데 분양계약서상 분양회사는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분양을 받은 사람들은 유명 건설회사를 믿고 분양계약을 체결하였지만 분양계약과 관련한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유명 건설회사가 시공사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할 것이므로, 재판에서 분양계약서에 기재된 분양회사를 상대로 해 승소하더라도 분양회사가 페이퍼컴퍼니에 불과, 사실상 배상받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조세회피를 하거나 불법자금을 세탁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조세정의 측면에서 엄격한 단속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금융지주회사나 부동산분양회사와 같은 페이퍼컴퍼니로 인한 폐해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법무법인 가원 최정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