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예방법, 껄끄럽더라도 문서화 하는 습관을
2013년 06월 17일(월) 00:00 가가
필자는 지난 1992년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에 입사한 이후, 2009년 초까지 삼성과 CJ 등에서 해외사업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그러다가 어렸을 적부터 마음 한편에 품었던 법조인이 되기 위해 길을 바꾼 후 많은 분들의 도움에 힘입어 지난 4월 재판연구원으로 법원 근무를 시작했고, 현재는 광주지방법원에 재직중이다.
필자가 국내외 직장생활을 통해 체득했던 다양한 경험들은 필자 개인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물론 재판연구원으로서 민·형사 사건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 그 중 다음 두 가지 경험을 소개하려고 한다.(오래된 일이어서 세부적인 내용이 사실과 약간 다를 수는 있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서로를 위해 중요하다는 것과 일상생활에서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가급적 문서로 남기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회사에 입사해 대리가 된 1999년경, 필자는 러시아라는 큰 시장을 담당하게 됐다. 당시 러시아 파트너 회사의 사장인 안드레이(가명)는 모스코바의 일부 지역의 지하세계를 주름잡다가 인생의 향로를 바꾼 젊은 친구였다. 회사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관리했고, 그 회사는 러시아 소비재 시장에서 매년 100% 이상의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인물을 상대해야 하는 필자는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요구조건들 중 일부는 회사 규정상 수용하기 곤란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필자는 유럽 출장 중에 러시아에 들러 안드레이 사장과 상담을 하게 됐는데, 그는 삼성에 제공한 담보를 초과하는 물량의 선적을 요구해왔다.
필자는 고민 끝에 다음날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안드레이 사장은 필자와의 상담을 마친 후 직장상사에게 필자의 융통성 부족을 이유로 불만을 토로하였고, 결국 필자는 귀국 후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원칙을 지킨 행위는 결국 안드레이 사장으로 하여금 적절한 범위 내에서 담보 금액을 자발적으로 증액하도록 했고, 이로 인해 삼성은 신용위험을 감수하지 않게 됐음은 물론, 안드레이 사장도 담보 범위 내에서 물량을 구입, 과도한 악성재고의 부담을 지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됐다.
또 다른 경험은, 지난 2000년대 중반 필자가 북부 아프리카인 리비아에서 건설 및 플랜트 사업을 담당할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리비아에서는 국영기업체 담당자들도 메일이나 문서보다는 향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업무를 처리하는 경향이 강했다.
필자는 거래처인 리비아 전력청의 압둘 람제스(가명)라는 감독관과 계약을 진행했는데, 그 친구는 대부분의 업무를 말로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설공사의 특성상 설계를 변경하고 그에 따라 계약금액을 높여야 할 사정이 발생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먼저 작업을 진행하라며 필자를 재촉했고, 필자는 그래도 일종의 합의서라도 있어야 한다며 몇 차례 주장했으나, 모두 묵살당했다.
필자는 지금까지 거래해온 사정이 있고, 새로운 합의서를 체결할 때까지 건설공사를 중단할 경우 회사가 입게 될 피해가 컸기 때문에 우선 그 친구의 말을 믿고 공사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몇 주 뒤, 필자는 집에서 그와 식사 모임을 갖게 됐을 때 간략한 공사내용 변경내역서를 건넸고, 그는 얼굴을 다소 찌푸렸지만 그 서류에 서명을 해 줬다.
시간이 지나서 필자는 거래처에 증액된 공사대금을 청구했는데, 거래처의 자금부서 담당자는 기존 계약서를 이유로 증액된 공사대금을 줄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에 필자는 공사내용 변경내역서를 보여주며 설득하였으나, 담당자는 그 내역서가 공식적인 계약서가 아니라며 막무가내였다. 필자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감독관 람제스를 만나려 뛰어다녔으나, 그도 책임을 부담하기 싫은지 연락을 받지 않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필자는 거래처 책임자를 찾아가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위 변경내역서를 보여줬다.
거래처 책임자는 처음에는 자금부서 담당자와 같은 이유를 대며 대금 지급을 거부하다가, 나중에는 거래처 감독관이 서명한 서류가 존재하므로 결국에는 필자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는지 앞으로는 계약서를 변경한 후 공사를 진행하되 이번만큼은 처리해주겠다고 해 간신히 문제가 해결됐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융통성없이 항상 원칙대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처한 상황을 잘 살펴 반드시 규정을 준수해야 할 경우라면 원칙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친구나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줄 때 차용증을 작성하는 일, 돈을 빌려주거나 갚을 때에는 가급적 은행을 이용하고, 설령 현금으로 주고받더라도 영수증을 만들어 놓는 일, 물건을 매매하는 경우에는 그 내용을 적고 상대방의 서명을 받아 놓는 일 등 일상생활에서 약간의 껄끄러움과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중요한 일은 가급적 문서화해 놓는 습관을 들인다면, 장래에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분쟁을 미리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광재 광주지법 민사1부 재판연구원
원칙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서로를 위해 중요하다는 것과 일상생활에서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가급적 문서로 남기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회사에 입사해 대리가 된 1999년경, 필자는 러시아라는 큰 시장을 담당하게 됐다. 당시 러시아 파트너 회사의 사장인 안드레이(가명)는 모스코바의 일부 지역의 지하세계를 주름잡다가 인생의 향로를 바꾼 젊은 친구였다. 회사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관리했고, 그 회사는 러시아 소비재 시장에서 매년 100% 이상의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인물을 상대해야 하는 필자는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요구조건들 중 일부는 회사 규정상 수용하기 곤란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험은, 지난 2000년대 중반 필자가 북부 아프리카인 리비아에서 건설 및 플랜트 사업을 담당할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리비아에서는 국영기업체 담당자들도 메일이나 문서보다는 향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업무를 처리하는 경향이 강했다.
필자는 거래처인 리비아 전력청의 압둘 람제스(가명)라는 감독관과 계약을 진행했는데, 그 친구는 대부분의 업무를 말로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설공사의 특성상 설계를 변경하고 그에 따라 계약금액을 높여야 할 사정이 발생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먼저 작업을 진행하라며 필자를 재촉했고, 필자는 그래도 일종의 합의서라도 있어야 한다며 몇 차례 주장했으나, 모두 묵살당했다.
필자는 지금까지 거래해온 사정이 있고, 새로운 합의서를 체결할 때까지 건설공사를 중단할 경우 회사가 입게 될 피해가 컸기 때문에 우선 그 친구의 말을 믿고 공사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몇 주 뒤, 필자는 집에서 그와 식사 모임을 갖게 됐을 때 간략한 공사내용 변경내역서를 건넸고, 그는 얼굴을 다소 찌푸렸지만 그 서류에 서명을 해 줬다.
시간이 지나서 필자는 거래처에 증액된 공사대금을 청구했는데, 거래처의 자금부서 담당자는 기존 계약서를 이유로 증액된 공사대금을 줄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에 필자는 공사내용 변경내역서를 보여주며 설득하였으나, 담당자는 그 내역서가 공식적인 계약서가 아니라며 막무가내였다. 필자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감독관 람제스를 만나려 뛰어다녔으나, 그도 책임을 부담하기 싫은지 연락을 받지 않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필자는 거래처 책임자를 찾아가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위 변경내역서를 보여줬다.
거래처 책임자는 처음에는 자금부서 담당자와 같은 이유를 대며 대금 지급을 거부하다가, 나중에는 거래처 감독관이 서명한 서류가 존재하므로 결국에는 필자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는지 앞으로는 계약서를 변경한 후 공사를 진행하되 이번만큼은 처리해주겠다고 해 간신히 문제가 해결됐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융통성없이 항상 원칙대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처한 상황을 잘 살펴 반드시 규정을 준수해야 할 경우라면 원칙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친구나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줄 때 차용증을 작성하는 일, 돈을 빌려주거나 갚을 때에는 가급적 은행을 이용하고, 설령 현금으로 주고받더라도 영수증을 만들어 놓는 일, 물건을 매매하는 경우에는 그 내용을 적고 상대방의 서명을 받아 놓는 일 등 일상생활에서 약간의 껄끄러움과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중요한 일은 가급적 문서화해 놓는 습관을 들인다면, 장래에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분쟁을 미리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광재 광주지법 민사1부 재판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