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주 가끔 피고인(혹은 피의자)을 변호하거나 어느 일방 당사자를 위해 소송대리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세상에 몹쓸 사람이 되곤 합니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의 가족 또는 재판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는 경험은 변호사들에겐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필자도 “고생해서 고시 합격해 어떻게 저따위 인간을 변호할 수 있지? 돈만 벌만 다냐?”는 식의 핀잔을 들은 경험이 아주 적진 않습니다. 몇 해 전에도 시골의 촌부의 국선 변호를 맡게 됐는데 사소한 다툼 끝에 가지고 있던 낫으로 피해자의 엉덩이에 상처를 입혀 기소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필자는 피해자의 상처가 그리 깊지 않음을 이유로 상해의 고의가 없었다고 변론을 했습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피해자를 법정에 불러 증인으로 신문까지 했는데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감정이 상했는지 재판이 끝난 후 법정 밖에서 필자를 힐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피해자가 필자에게 어떤 식의 얘기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지만 좌우간 자신에게 피해를 가한 피고인을 변호하면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식의 변호를 한 것(즉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식의 변호)에 대한 반감이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필자도 화가 많이 났었지만 피해자의 순간적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참고 넘어갔습니다.

간혹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는 질문입니다. 첫 번째, 정말 나쁜 일을 한 사람이 맞아도 변호를 하느냐는 물음입니다. 당연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필자는 변호사를 할 이유도 자격도 없기 때문입니다. 변호사가 무고한 사람을 도와주고 법률적인 조언을 해주는 것도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잘못이 있는 사람을 위해 변호하는 것 역시 너무도 중요하고 당연합니다. 변호사는 그 사람이 유죄이든, 무죄이든 간에 상관없이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 자체가 윤리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유죄라고 생각되는 피고인을 변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조금 어렵고 입장에 따라 아주 민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단면만을 보고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세상사에 흔치 않습니다. 또한 모든 일이 흑과 백처럼 분명하게 구별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변호사는 ‘법’의 한계 안에서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변호해야 할 것입니다. 본시 변호사의 일의 기본이 피고인(의뢰인)의 이익을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정당한 이익이라면 피고인이 유죄라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을 것은 아닙니다.

물론 변호사는 자신이 유죄라고 생각하는 피고인,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피고인의 변호를 거부할 권한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지탄받는다는 것만으로 피고인의 변호를 거부한다는 것이 정당한 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간혹 사회적인 지탄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류에 휩쓸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정당한 가치가 내일에는 비난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변호사는 그러한 기준으로 쉽게 자신의 책무를 거부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변호하면서 피해자 혹은 그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때 항상 생각합니다. 비난하는 당신이 비난받는 피고인이 될 수 있으며, 그 위치에 있는 당신을 변호하게 된다면 지금과 똑같이 열심히 변호하겠노라고. 그리고 한 가지 변명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지, 변호사의 이익이나 ‘세계평화’ 같은 거대한 명제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변호사를 배운 것이 조금 더 많고 조금 더 말을 잘하는 의뢰인이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변호사로서 가장 양심에 어긋나며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유죄의 개연성이 높은 피고인을 위해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위임받고도 의뢰인의 이익을 위한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이 왜 정답인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도 법과 가장 기초적인 도덕의 한계 속에서 피고인을 변호하거나 당사자를 위하여 대리하는 것이 변호사의 숙명임을 알고 생활합니다. 이것이 필자가 알고 있는 변호사의 ‘도덕 감정’입니다.

/강성두 변호사 (광주지방변호사회 공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