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특히 프랑스에 가보면 보행자들이 횡단보도나 신호등에 개의치 않고 도로를 무단횡단 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혹자는 프랑스 보행자들의 이러한 습성을 ‘똘레랑스(Tolerantia)’라는 용어를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똘레랑스란 남의 생각과 행동, 취향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틀린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의미하는데 우리말로는 관용정신으로 해석된다.

언뜻 무질서해 보이지만, 좁은 도로가 복잡하게 얽힌 도심에서 신호와 횡단보도를 기계적으로 지키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보행자가 우선이라는 원칙하에 나름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방편이므로 프랑스의 보행문화는 똘레랑스로 상징되는 그들 특유의 여유를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현상이라 하겠다.

반면 일본에서는 보행자들이 신호를 무시하거나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횡단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는 야간에 인적 없는 지방도로에서 운전하는 사람마저 정지신호를 지키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인 특유의 ‘메이와쿠(迷惑)’의식이 교통질서에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영국의 뉴스위크지는 대지진과 쓰나미의 폐허 속에서 새치기하는 사람 없이 몇 시간이고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인의 모습은 인류의 정신이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극찬하였다. 하지만 일본인 특유의 메이와쿠 정신이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매뉴얼에만 기계적으로 매달리는 답답함과 후진적인 정치관행으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있으므로 세상사 이치는 그리 간단치 않음이 분명하다.

우리가 사는 이곳 광주의 교통질서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즐비한 충장로 거리에서 소통과 쇼핑을 즐기는 행인들 속으로 들어가 광주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는 것은 기분 좋은 경험이다. 운전자들이 보행자에게 양보하며 조심스레 운전하는 모습도 자연스럽고 흐뭇하다. 하지만 왕복 6차로 이상의 대로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무단횡단 하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 교차로에서 정지신호를 지키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를 볼 때, 불법 주차된 차량 사이에서 불쑥 나타난 보행자를 가까스로 회피할 때의 아찔한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런 것도 광주 특유의 똘레랑스 발현으로 존중받아야 할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은연중 비상상황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무단횡단 하는 사람과 마주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운전하여야 하고, 신호를 무시한 채 교차로를 주행하는 차량이 없는지 살피며 횡단보도를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뜻밖의 기회비용 지출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와 의도치 않은 다툼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예향의 고장,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 광주가 특유의 문화적 감수성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기를 기대해본다.

/강성용 광주지검 형사 3부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