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선전담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되었다. 이 드라마는 저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3명의 국선전담변호사를 통해서 국선변호의 현실과 국민이 바라는 국선변호인의 모습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특히 법정 밖으로 뛰쳐나가 경찰의 현장검증 장소까지 찾아가고, 피고인을 위해 목격자를 찾아나서는 차관우 변호사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실제 우리의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국선변호인이 등장하는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비교해 보면 큰 차이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영화에서 국선변호인의 주활동 무대는 법정인 반면 외국영화의 국선변호인은 수사 초기 단계부터 피의자를 돕고 있다는 점이다.

1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지적장애인인 주인공 이용구는 경찰에 체포되어 교도소에 갈 때까지 그 누구와의 접촉도 차단된 채 혼자서 경찰관의 폭력, 고문 그리고 회유를 견뎌내야만 한다. 그리고 결국 금방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경찰관의 회유에 속아 주인공 이용구는 어린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살해하였다고 허위 자백을 하게 된다. 혹시 수사 초기 단계에 이용구가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반면 대부분의 미국 법정 영화에서는 수사기관의 신문단계부터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헌법 제12조 제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33조는 “법원은 미성년자, 노인, 심신장애자, 중형이 예상되는 자 등 특정한 피고인을 위해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누구든지 법정뿐만 아니라 수사 단계에서도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국선변호인의 도움은 ‘형사피고인’(형사사건에 관하여 형사책임을 져야 할 자로 공소(公訴)가 제기된 자)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물론 예외적으로 구속영장심문 단계에서 피의자(죄를 범한 혐의로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되어 있는 자로서 아직 공소(公訴)가 제기되지 않은 자)에게 변호인이 없는 때에는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때 선정된 국선변호인도 영장심문법정 안에서 그 역할을 할 뿐이고, 수사단계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차관우 변호사처럼 국선변호인이 경찰의 현장검증 장소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을까? 지난 18년 동안 법대 위에서 재판을 해 온 법관의 입장에서는 공개된 법정에 선 피고인보다는 밀실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에게 국선변호인의 도움이 더 절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미성년자, 노인 또는 장애인과 같이 스스로 자기를 방어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없는 사람이 피의자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국선변호인이 수사과정에 참여하게 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수사기관의 고문이나 불법 수사를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밀실에서의 고립으로 인한 피의자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법정에 와서 수사기관에서의 허위 자백의 결과를 뒤집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에 관하여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 대기업 총수나 유명 정치인이 경찰이나 검찰에 소환될 때에는 변호인을 대동하고 출석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제 국선변호인도 법정의 변론을 넘어 밀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미성년자, 노인 또는 장애인 등과 같이 자기를 방어할 능력이 부족한 피의자에게로 한발 가까이 다가가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법률의 개정뿐만 아니라 기존의 틀을 깨는 국선변호인들의 자세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법정을 박차고 사건현장과 경찰서로 달려가는 차관우 변호사가 우리의 현실에서도 실제로 넘쳐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