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한국으로 시집와서 아이까지 낳고 살았지만, 타국생활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말도 안 통하고, 기후도 문화도 낯선 곳에서 괄괄한 시어머니와의 시집살이는 안 봐도 뻔하지요. 며느리는 결국 시어머니의 밥에 쥐약을 섞었습니다. 다행히 시어머니가 이를 알아차리고 먹지는 않았지만, 며느리는 살인미수라는 무거운 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재판을 담당하며, 죄는 처벌해야 할 것이지만,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화해하고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며느리도, 시어머니도, 그 사이에 낀 남편도, 무엇보다도 이제 갓 태어난 아이까지, 그 가족 모두의 처지가 참 딱하고 안타까웠거든요. 며느리는 물론 시어머니와 남편까지 법정에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실컷 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속의 말을 털어놓고, 또 그걸 들으면 서로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또 이주 여성 상담 전문가가 출석하여 이 가정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기도 했지요. 제발 가족 모두가 그 얘길 듣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재판은 끝났지만, 지금 그 가정이 화해를 하고 잘 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고, 알 도리도 없습니다.

또 이런 사건도 있었습니다. 인생의 절반을 교도소에서 보낸 40대 중반의 피고인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날 또 물건을 훔쳤습니다. 피고인은 법정에서 “나는 치료를 받아야될 또라이다, 나 징역 살려봤자 나오자마자 또 훔칠 거다”라고 소리지르며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습니다. 징역 몇 년을 살게 하든 출소하자마자 또 같은 일을 반복할 텐데, 내가 재판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무력감이 들었지요. 피고인의 마지막 말 한마디는 더욱 가슴을 답답하게 했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 용서받아 본 적이 없어.”

인생의 절반을 교도소에 있었으니 마땅한 기술 하나 없을 것이요, 세상물정도 모를 테니 사회생활 자체를 할 수 없었겠지요. 어디를 가든 대접받지 못하였을 것이고,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도둑질밖에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죄에 대한 처벌은 해야지요. 하지만 처벌과 함께 마음과 감정의 치료, 즉 치유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피고인을 정신 감정한 의사도 피고인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애정이라고 하더군요.

처벌은 처벌이되, 재판을 통해 피고인도 관심을 받고 있고, 그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정말 관심을 갖고 피고인의 말 하나하나를 귀 기울여 듣고 행동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보았습니다. 재판이 끝난 후 고심 끝에 다소 형량을 낮춰 정했습니다. 일생 한 번도 용서받은 적이 없다던 피고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용서를 법원이 해준다면 피고인도 진심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피고인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 길 없지만,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던 어떤 판사를 기억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를, 조금이라도 치유가 되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직 풋내기 판사이지만 재판을 할수록, 재판을 통해 엄정한 정의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사자들이 화해하고 치유를 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너무 순진무구한 생각일 수 있지요. 누구는 때리지 않았다고 하고, 누구는 맞았다고 합니다. 누구는 돈을 빌려줬다고 하고, 누구는 빌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서 누구 말이 사실이고, 정당한 것인지 밝히는 게 일차적 목표인 재판에서 서로 화해하고 치유를 받게 한다는 것은 어쩌면 어불성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지면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법원과 판사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권위와 위엄을 갖고 엄정하게 정의를 밝히는 법관의 모습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나아가 당사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것까지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굳이 말을 붙이자면 ‘치유사법’(治癒司法)이나 ‘힐링코트’(healing court)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힐링은 존중과 관심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존중의 시작은 부드러운 말과 행동이며, 관심의 시작은 눈빛과 경청일 것입니다. 열심히 듣고, 더 듣고, 눈빛을 보면서 듣는 것이지요. 누군가 내가 하는 말을 열심히 들어준다는 것은 내 말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이지요. 그것만으로도 조금의 위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열심히 듣는 것에서 나아가 올해부터는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법정에 서있는 방청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습니다. 처음에는 일어나서 판사를 기다리는 방청객들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방청객들도 저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참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감동받았다고나 할까요. 판사와 당사자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그렇게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힐링을 받는 기분이었지요. 더 열심히 기록을 보고 재판을 할 힘을 얻었으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판사들이 더 잘 듣기 위해서, 더 열심히 듣기 위해서, 또 더 존중하고, 관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힐링코트로 가는 작지만 의미 있는 출발이라고 믿습니다. 정의의 여신 디케는 저울과 칼만 들고 있지만, 우리 법원은 더불어 당사자를 보듬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까지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마음이 법원에 오는 모든 분들에게 전해지기를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