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모를지라도 진심은 통하는 법
2013년 09월 23일(월) 00:00 가가
김 혜 민
변호사
변호사
추석 연휴에 영화 ‘관상’을 봤다. 이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관상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 됨됨이, 그릇 등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은 최근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능력 중 변호사가 갖고 싶은 3대 능력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두 능력은 아마도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사람의 속마음이 그대로 음성 지원되는 능력과 드라마 ‘주군의 태양’에서 죽은 자를 볼 수 있는 능력일 게다. (물론 필요할 때만 능력이 생긴다는 전제하에!)
범죄사실이라는 하나의 팩트에 대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달리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성범죄에서 가해자는 ‘성경험’ 정도로 치부하는 반면 피해자는 ‘성폭력’으로 인지하는 경우가 그렇다. 필자는 최근 성범죄의 가해자 편에서 가해자를 변호하는 사건과 성범죄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들을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을 비슷한 시기에 함께 진행한 적이 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이라면 가해자와 피해자 외에 그 누구도 진실을 알 수가 없고, 쌍방이 하나의 팩트에 대해서 철저히 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필자에게 당사자의 얼굴만 보고도 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인지 아닌지를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나,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속마음을 읽어내어 가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땠을까. 또는 몇 년 전 맡았던 강간살인 사건처럼 피해자는 이미 진실을 말할 수 없고 가해자는 범죄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 죽은 피해자가 필자에게 진실을 말해 줬다면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마 필자가 그런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종횡무진 했다면 지금쯤 변호사로서 이런 법조칼럼을 쓸 수 없었을 게다. 변호사가 무턱대고 피의자나 피고인의 얼굴과 눈빛만 보고 “이 사람은 절대 그런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다”고 강변하면 이는 이미 유죄라는 선입견을 가진 상태에서 하는 수사 못지않게 얼빠진 변호에 불과하다. 변호사의 변론은 당사자나 그의 가족, 지인들이 하는 탄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호사의 변호에는 법에 기초한 합리성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필자를 비롯한 법조인들이 그러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 수년간 사법시험을 준비하여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 혹은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니고 변호사시험을 치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질 조사에 동석하여 당사자들의 속마음을 읽고는 “저건 거짓말입니다”고 외쳐봐야 조사 분위기만 더 험악해지지 않겠는가. 피고인을 위한 서면을 쓰느라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필자 앞에 죽은 피해자가 나타나 “변호사님, 사실은 아무개가 모월 모일 모시에 어디에서 어떻게 하여 저를 죽였습니다”라고 알려준들, (피고인을 변호하는 입장에서 이를 서면에 기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뿐아니라, 이를 기재한다고 하더라도) 귀신이 알려줬다고 쓸 수도 없고 그런 증거를 갑자기 찾아와서 들이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 진실을 알고 나서 더욱더 머리를 쥐어뜯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 어렵다. 뭐가 진실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진실을 진실이라고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진실과 거짓을 떠나서 의뢰인을 만족시키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때론 자려고 누웠는데 바로 잠이 안 오면 고민 중인 사건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사무실 방에서 일하다가 뭔가 안 풀리면 나도 모르게 혼자 화를 내기도 한다. (직원들은 이런 필자를 보면서 변호사가 마냥 편하고 좋은 직업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최근 고백했다.) 이게 다 필자가 이와 같은 능력이 없어서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인간에게 저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변호사라는 직업이 현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뢰인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데 필자가 솔직하게 말하니 돌아오는 답도 솔직하다. 덕담과 더불어 “그리고 제 사건도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의미심장한 답이 오기도 하고, “저는 이번 연휴 기간 중에 숙제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준비해 올게요.”라는 안쓰러운 답이 오기도 하며, “늘 최선을 다하시는 변호사님, 사랑합니다!”라는 과격한 애정표현이 오기도 한다.
갈수록 변호사가 힘들다고 하지만 앞서 말한 비범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변호사로서 일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진심을 담아 일을 하면 의뢰인들은 그 진심을 알아준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다가 머리를 쥐어뜯고 서면이 잘 안 써져서 악! 소리를 지르고, 재판하느라 몇 번씩 법원을 왔다 갔다 하다가 나사가 하나 풀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하며 사무실에 들어오는 식의 시트콤을 찍는 필자이지만, 부족한 대로 최선을 다하는 이 상태가 참 감사하고 좋다. 진실은 모를지라도 진심은 통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필자에게 당사자의 얼굴만 보고도 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인지 아닌지를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나,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속마음을 읽어내어 가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땠을까. 또는 몇 년 전 맡았던 강간살인 사건처럼 피해자는 이미 진실을 말할 수 없고 가해자는 범죄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 죽은 피해자가 필자에게 진실을 말해 줬다면 어땠을까.
참 어렵다. 뭐가 진실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진실을 진실이라고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진실과 거짓을 떠나서 의뢰인을 만족시키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때론 자려고 누웠는데 바로 잠이 안 오면 고민 중인 사건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사무실 방에서 일하다가 뭔가 안 풀리면 나도 모르게 혼자 화를 내기도 한다. (직원들은 이런 필자를 보면서 변호사가 마냥 편하고 좋은 직업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최근 고백했다.) 이게 다 필자가 이와 같은 능력이 없어서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인간에게 저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변호사라는 직업이 현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뢰인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데 필자가 솔직하게 말하니 돌아오는 답도 솔직하다. 덕담과 더불어 “그리고 제 사건도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의미심장한 답이 오기도 하고, “저는 이번 연휴 기간 중에 숙제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준비해 올게요.”라는 안쓰러운 답이 오기도 하며, “늘 최선을 다하시는 변호사님, 사랑합니다!”라는 과격한 애정표현이 오기도 한다.
갈수록 변호사가 힘들다고 하지만 앞서 말한 비범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변호사로서 일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진심을 담아 일을 하면 의뢰인들은 그 진심을 알아준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다가 머리를 쥐어뜯고 서면이 잘 안 써져서 악! 소리를 지르고, 재판하느라 몇 번씩 법원을 왔다 갔다 하다가 나사가 하나 풀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하며 사무실에 들어오는 식의 시트콤을 찍는 필자이지만, 부족한 대로 최선을 다하는 이 상태가 참 감사하고 좋다. 진실은 모를지라도 진심은 통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