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법권위를 위하여 “땅 땅 땅!”
2013년 10월 21일(월) 00:00 가가
정 희 엽
광주지법 장흥지원 판사
광주지법 장흥지원 판사
판사로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을 상대로 직업교육 강연을 하게 되는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강연을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판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묻곤 하는데, 역시 위와 같이 ‘법복을 입고 법대 위에 앉아서 피고인을 상대로 위와 같이 엄숙하게 말하면서 법봉을 세 번 두드리는 장면’을 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위 장면에는 실제 우리나라 판사의 모습과 다른 부분이 한 가지 있습니다. 눈치 빠른 분들이시라면 알아채셨겠지만, 바로 “땅 땅 땅!”이라는 부분인데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법정에서 법봉이 사용되고 있다고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아마 드라마나 영화, 뉴스 등 각종 매체에서 여전히 ‘판사’라고 하면 ‘법봉을 두드리는 사람’으로 표현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법봉은 과거 서양에서 의사 진행의 명확성을 기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법봉을 두드림으로써 결과에 대해 변함이 없도록 못을 박는다는 의미를 표시하였다고 하네요. 예전에는 우리나라 법정에서도 법봉이 사용되었는데, 1960년대 중반부터 법정 내의 권위주의적인 분위기를 없앤다는 이유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후로는 우리 법정에서 판사가 법봉을 두드리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권위주의의 상징물이 법정 밖으로 퇴출된 셈이지요.
‘탈권위주의’라는 용어가 진부하게 들릴 정도로,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권위를 내세워서 일방적이고 강제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려는 방식은 용납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는 모든 국가기관, 그리고 우리 법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약 5년간 사법부의 최대 화두는 ‘소통’이었습니다. 최근 변호사나 소송당사자가 설문조사를 통해 법관을 평가하는 제도가 도입되었고, 일반 시민들을 초청하여 현행 사법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모색하기 위한 공청회가 열리기도 하였으며, 그 밖에도 지역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각종 행사를 개최하거나, 장애를 가진 분들 또는 아동과 같이 범죄에 취약한 피해자들을 만나서 지원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법원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소통의 유형 가운데 법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법정 안에서 소송관계자들과 하는 소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판사가 당사자나 변호인, 검사와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고, 설득력 있는 재판 진행과 최종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 재판에 대한 불만으로, 법원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판사 혼자서 옳은 결정을 한다 한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이를 아무도 납득하지 않는다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요원해지기 마련일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각급 법원에서는 ‘법정 모니터링(monitoring)’이라는 제도가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습니다. 원래 ‘모니터링’의 사전적 의미는 ‘방송국이나 신문사 또는 기업체로부터 의뢰를 받고 방송 프로그램이나 신문 기사 또는 제품 등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는 일’인데, 이를 법관의 재판에도 도입한 것이지요. 즉 다른 사람(주로 동료판사나 심리학자, 스피치 강사 등과 같은 전문가들)이 특정 판사의 실제 재판을 방청하고, 해당 판사에게 재판 진행이 어떠했는지,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관례적으로 재판이라는 것은 해당 재판장의 고유한 불가침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기에, 재판과 관련이 없는 누군가가 재판 장면을 참관한다거나, 더 나아가 재판장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사상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법원이 이러한 오랜 금기사항을 깨뜨리고 법정 모니터링 제도를 도입한 것은, 법봉을 없앤 것 그 이상으로 상당히 혁신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장흥지원에서도 바로 며칠 전 법정 모니터링을 시행하였는데요. 법원이 워낙 소규모인지라, 전문가에게 세 명 판사의 재판 동영상과 실제 재판 장면을 모두 보여주고, 개인별로 전문적이고 상세한 평가와 개선사항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외모와 표정은 어떻게 보이는지, 발음과 말투는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소송관계인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어조와 비언어적 표현이 필요한지, 어떠한 이유로 효과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지 등에 관하여 낯이 뜨겁기까지 한 평가를 받고 나서, 나 자신이 아직 이렇게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특정 사건에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때문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생생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한 달 뒤에 재평가를 받기로 했는데, 지적사항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입법부와 행정부도 마찬가지이지만, 바야흐로 사법부도 이제는 권위 상실의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권위주의는 버려야겠지만, 진정한 권위는 바로 세워야겠지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재판하면서, 소송관계인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법관들이 많아질 때, 사법부의 권위가 바로 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학생들을 상대로 직업교육을 하면서 법봉 이야기를 하고, 법정 모니터링을 받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문득 들었던 거창한 생각이었습니다.
법봉은 과거 서양에서 의사 진행의 명확성을 기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법봉을 두드림으로써 결과에 대해 변함이 없도록 못을 박는다는 의미를 표시하였다고 하네요. 예전에는 우리나라 법정에서도 법봉이 사용되었는데, 1960년대 중반부터 법정 내의 권위주의적인 분위기를 없앤다는 이유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후로는 우리 법정에서 판사가 법봉을 두드리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권위주의의 상징물이 법정 밖으로 퇴출된 셈이지요.
그러나 여러 가지 소통의 유형 가운데 법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법정 안에서 소송관계자들과 하는 소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판사가 당사자나 변호인, 검사와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고, 설득력 있는 재판 진행과 최종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 재판에 대한 불만으로, 법원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판사 혼자서 옳은 결정을 한다 한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이를 아무도 납득하지 않는다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요원해지기 마련일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각급 법원에서는 ‘법정 모니터링(monitoring)’이라는 제도가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습니다. 원래 ‘모니터링’의 사전적 의미는 ‘방송국이나 신문사 또는 기업체로부터 의뢰를 받고 방송 프로그램이나 신문 기사 또는 제품 등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는 일’인데, 이를 법관의 재판에도 도입한 것이지요. 즉 다른 사람(주로 동료판사나 심리학자, 스피치 강사 등과 같은 전문가들)이 특정 판사의 실제 재판을 방청하고, 해당 판사에게 재판 진행이 어떠했는지,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관례적으로 재판이라는 것은 해당 재판장의 고유한 불가침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기에, 재판과 관련이 없는 누군가가 재판 장면을 참관한다거나, 더 나아가 재판장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사상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법원이 이러한 오랜 금기사항을 깨뜨리고 법정 모니터링 제도를 도입한 것은, 법봉을 없앤 것 그 이상으로 상당히 혁신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장흥지원에서도 바로 며칠 전 법정 모니터링을 시행하였는데요. 법원이 워낙 소규모인지라, 전문가에게 세 명 판사의 재판 동영상과 실제 재판 장면을 모두 보여주고, 개인별로 전문적이고 상세한 평가와 개선사항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외모와 표정은 어떻게 보이는지, 발음과 말투는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소송관계인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어조와 비언어적 표현이 필요한지, 어떠한 이유로 효과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지 등에 관하여 낯이 뜨겁기까지 한 평가를 받고 나서, 나 자신이 아직 이렇게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특정 사건에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때문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생생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한 달 뒤에 재평가를 받기로 했는데, 지적사항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입법부와 행정부도 마찬가지이지만, 바야흐로 사법부도 이제는 권위 상실의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권위주의는 버려야겠지만, 진정한 권위는 바로 세워야겠지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재판하면서, 소송관계인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법관들이 많아질 때, 사법부의 권위가 바로 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학생들을 상대로 직업교육을 하면서 법봉 이야기를 하고, 법정 모니터링을 받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문득 들었던 거창한 생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