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제라는 절대적 제도가 사회의 시스템을 이루고 있던 시절, 그때도 법률은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신분제에 따라 문맹의 수준이 결정되고 권리와 의무의 정도가 결정되는 구조에서 문맹률이 높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법률의 잣대를 들이대며 권리와 의무의 범위를 설정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을까? 이때 가지지 못한 자들의 고통은 또한 얼마나 크고 깊었을까?

조선시대에 문맹률은 5%였다. 어려운 법률은 모두 한자로 이루어졌고 배우지 못한 자들에게는 법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다. 당시에는 거래·소송은 모두 문서를 작성하여 행해졌고, 그 문서의 형식이 상당히 복잡하여 비공식적으로 고용대송(雇傭代訟)이라는 소송시 문서를 보조하는 직업이 있었으나 이러한 것도 법으로 금지시켜 실질적인 변호사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소수의 기득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민초라 불리던 시절, 이러한 민초들의 권리 보호는 당연히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고, 그들의 마음에는 원망스럽고 억울하고 슬퍼 응어리진 한(恨)이 서려 있었을 것이다.

필자가 변호사가 되어가는 여정에는 갈등들이 있었다. 필자는 10여 년 전 금융공기업의 공채로 입사해서 나름 자긍심과 만족도를 느끼며 사회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다. 당시 주어진 일들이 재미있었고 직장에서 좋은 선배와 동료를 만나며 즐거운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 나름 편하고 안정된 삶이었다.

그러던 중 인생의 중요한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변호사란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편하고 안정된 직장인의 삶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그러나 그리 많은 고민은 되지 않았다. 필자가 가고 싶은 길의 방향이 명확했다.

누군가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그 억울함을 풀어주는 직업……. 그 길을 가야겠다는 강한 확신과 신념은 연수 휴직과 함께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이란 선택에 주저함이 없게 하였다.

변호사로서 다시 직장에 복귀하여 근무하고, 이후 은행에서 사내변호사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금융공기업에서의 경험과 지식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애초의 변호사가 되리라고 마음먹었던 것들에 대한 처음 비전들이 계속해서 자리 잡고 있었다.

결국, 담보채권 정리업무를 하던 중 경매법정에서 얼마 안 되지만 전 재산이었던 임차보증금을 날린 임차인을 보며 다짐했던 그 마음, 억울한 이들의 마음을 들어주고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리라고 마음먹었던 애초의 마음들은 회사 내에 속한 변호사의 위치에서 벗어나 직접 의뢰인을 만나는 개업변호사를 선택하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게 했다.

문맹률이 거의 없는 시대이지만 분명 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또한 방법을 알지만 불이익을 당할까봐 자기의 권리행사를 주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분들을 위해 변호인이 존재한다. 그들의 권리의 행사를 적극적으로 대신해서 해줄 수 있는 자, 전면에 나서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싸워주는 자 ….

필자는 안정된 은행의 사내변호사로 있다가 개업변호사로 나온 지 4주째가 되어간다. 주말에도 의뢰인들을 만나고 야근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몸이 많이 피곤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업무가 즐겁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같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변호인의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억울함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자 이처럼 멋진 직업이 있을까?”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