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그리고 ‘판사짓’
2014년 01월 13일(월) 00:00 가가
서 영 호
해남지원 판사
해남지원 판사
지난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부녀회를 대상으로 법원소개를 하면서 말씀드린 적이 있던 어머니와 관련된 경험담을 적어보려고 한다.
어머니는 공무원인 아버지와 결혼하셔서 필자를 포함한 3형제를 키우셨고, 아버지의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탓에 신혼 때부터 작은아버지 두 분을 같이 데리고 사시면서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보내셨다. 어머니는 가족 뒷바라지 때문에 돈 1000원 쓰시는 것도 주저하시는 마당에 당신을 위해 돈을 쓴다는 생각을 거의 못하셨고, 우리 3형제가 모두 커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지금까지도 거의 자식들을 위해 살아가고 계시는 한국의 평범한 주부다.
약 2년 전에 어머니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지금 살고 계시는 집을 전세로 내어 놓고 받은 전세금 중 일부로 더 작은 집을 전세 얻어 사시고, 나머지 돈으로 나 또는 동생들을 위해 사용하시려고 했던 것인데 계약과정에서 실수를 하셔서 일부 걸어 놓았던 계약금 500만원 정도를 돌려받지 못하게 되실 것 같자 상의를 하기 위한 전화였다.
말씀을 들어 보니 어머니가 전적으로 잘못하신 것 같아 첫 마디에 어머니가 잘못하신 게 맞기 때문에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할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어머니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네가 비록 판사지만 아직 세상물정이나 부동산 관행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하셨다. 필자가 보기에 어머니 잘못이 명확한데도 계속 잘못한 것이 없다고 우기시니 화가 나 말다툼을 하다가 “내가 이래서 딸을 하나 낳았어야 되는데 아들놈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옛말이 딱 맞다”, “아들내미가 판산데 창피하니까 어디 가서 얘기하지도 마”라는 감정적인 언쟁을 끝으로 전화를 끊게 되었고, 한동안 냉랭하게 지내게 되었다.
이후 자꾸 뭔가 찜찜하고 내가 잘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아들이 명색이 판사인데 미리 상의도 안 하시고 당신이 잘못해놓고 오히려 나한테 네가 뭘 모른다고 하시고, 이제는 우리들보다는 부모님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렸건만 내 말 안 들으니까 이렇게 됐지라고 생각하며 어머니께 전화할 마음을 꾹 누르고 버텼다.
계속 그렇게 찜찜하게 지내던 어느 날 문득, 돈 1000원도 아까워하시는 어머니께서 500만원이나 되는 돈을 졸지에 잃게 되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한동안 잠도 못 주무실 정도로 자책하시고, 속상하셨을 텐데 잘 해주려던 마음도 모르고 아들놈의 새끼로부터 오히려 첫마디부터 무조건 잘못했다는 말부터 들었으니 얼마나 더 열이 뻗치고 화가 나시고 마음에 상처가 되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필자가 왜 그렇게 말씀드렸을까 생각해보니, 늘 가족들만을 위해 사시는 어머니에 비해 필자는 돈을 벌고 여유가 생겼음에도 필자만을 위해 사느라 거의 해드린 것도 없이 말로만 당신을 위해 사시라고 했던 미안함과 속상함, 그런 미안함과 속상함이 쌓이니 필자를 방어하기 위해 왜 자식들을 위해서만 사시려고 그러냐고 적반하장격으로 화와 짜증이 난데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샌가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 궁지에 몰린 어머니께 단박에 엄마가 잘못한 것이라고 말해버린 것이었다.
아마 어머니도 이리저리 알아보신 결과 당신이 어느 정도 실수하신 걸 알았을 것이지만 계약금을 조금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상의하려는 마음뿐만 아니라 아들로부터 위로받고 속상한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어 전화하셨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공감과 위로를 기대한 어머니께 난, 공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판사짓’을 해버렸던 것이다.
필자가 어머니께 드렸어야 하는 첫 마디는 “엄마가 잘못했으니까 계약금 돌려받지 못한다.”가 아니라 “엄마 정말 고마워, 우리들 위해서 잘 해보시려다가 잘못된 거고 우리 생활을 크게 흔들 정도의 돈은 아니니까 더 마음 쓰지 말고 잊는 게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 좋을 것 같아, 사랑해”가 아니었을까.
소통과 신뢰의 가장 밑바탕은 결국 ‘공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당사자가 많은 돈과 시간, 불편함이 예상되는 법원까지 올 정도라면 이미 다른 방법이나 빽, 연줄 다 동원해보고도 해결이 안 되었을 가능성이 많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 이미 사건의 결말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을 것이지만, 그래도 판사가 내 처지를 조금이나마 이해, 즉 공감해줄 것이라는 마지막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로 케이스 문제 풀듯이 사건의 정답 찾아내기에만 몰두하고 사건 뒤에 있는 당사자의 처지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나는 정답을 찾아서 제시해 주었다고 만족하는 반면 당사자는 여전히 불만과 억울함이 해소되지 않는, 그리고 오히려 판사가 제시한 정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몰상식한 당사자로 취급받는 괴리가 생길 것이다. 마치 내가 어머니께 했던 ‘판사짓’처럼….
어머니는 공무원인 아버지와 결혼하셔서 필자를 포함한 3형제를 키우셨고, 아버지의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탓에 신혼 때부터 작은아버지 두 분을 같이 데리고 사시면서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보내셨다. 어머니는 가족 뒷바라지 때문에 돈 1000원 쓰시는 것도 주저하시는 마당에 당신을 위해 돈을 쓴다는 생각을 거의 못하셨고, 우리 3형제가 모두 커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지금까지도 거의 자식들을 위해 살아가고 계시는 한국의 평범한 주부다.
말씀을 들어 보니 어머니가 전적으로 잘못하신 것 같아 첫 마디에 어머니가 잘못하신 게 맞기 때문에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할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어머니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네가 비록 판사지만 아직 세상물정이나 부동산 관행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하셨다. 필자가 보기에 어머니 잘못이 명확한데도 계속 잘못한 것이 없다고 우기시니 화가 나 말다툼을 하다가 “내가 이래서 딸을 하나 낳았어야 되는데 아들놈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옛말이 딱 맞다”, “아들내미가 판산데 창피하니까 어디 가서 얘기하지도 마”라는 감정적인 언쟁을 끝으로 전화를 끊게 되었고, 한동안 냉랭하게 지내게 되었다.
필자가 왜 그렇게 말씀드렸을까 생각해보니, 늘 가족들만을 위해 사시는 어머니에 비해 필자는 돈을 벌고 여유가 생겼음에도 필자만을 위해 사느라 거의 해드린 것도 없이 말로만 당신을 위해 사시라고 했던 미안함과 속상함, 그런 미안함과 속상함이 쌓이니 필자를 방어하기 위해 왜 자식들을 위해서만 사시려고 그러냐고 적반하장격으로 화와 짜증이 난데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샌가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 궁지에 몰린 어머니께 단박에 엄마가 잘못한 것이라고 말해버린 것이었다.
아마 어머니도 이리저리 알아보신 결과 당신이 어느 정도 실수하신 걸 알았을 것이지만 계약금을 조금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상의하려는 마음뿐만 아니라 아들로부터 위로받고 속상한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어 전화하셨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공감과 위로를 기대한 어머니께 난, 공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판사짓’을 해버렸던 것이다.
필자가 어머니께 드렸어야 하는 첫 마디는 “엄마가 잘못했으니까 계약금 돌려받지 못한다.”가 아니라 “엄마 정말 고마워, 우리들 위해서 잘 해보시려다가 잘못된 거고 우리 생활을 크게 흔들 정도의 돈은 아니니까 더 마음 쓰지 말고 잊는 게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 좋을 것 같아, 사랑해”가 아니었을까.
소통과 신뢰의 가장 밑바탕은 결국 ‘공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당사자가 많은 돈과 시간, 불편함이 예상되는 법원까지 올 정도라면 이미 다른 방법이나 빽, 연줄 다 동원해보고도 해결이 안 되었을 가능성이 많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 이미 사건의 결말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을 것이지만, 그래도 판사가 내 처지를 조금이나마 이해, 즉 공감해줄 것이라는 마지막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로 케이스 문제 풀듯이 사건의 정답 찾아내기에만 몰두하고 사건 뒤에 있는 당사자의 처지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나는 정답을 찾아서 제시해 주었다고 만족하는 반면 당사자는 여전히 불만과 억울함이 해소되지 않는, 그리고 오히려 판사가 제시한 정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몰상식한 당사자로 취급받는 괴리가 생길 것이다. 마치 내가 어머니께 했던 ‘판사짓’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