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해결에도 가끔 운이 필요하다
2014년 01월 20일(월) 00:00 가가
한 지 혁
광주지검 형사3부 검사
광주지검 형사3부 검사
검사의 업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는 특정 사건에서 증거수집 등을 통해 실체진실을 발견하고, 피의자의 혐의 유무를 가리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특정 사건에서 피의자의 혐의 유무를 가리는 작업은 경우에 따라 쉬울 수도 있지만, 대체로 많은 노력과 실체진실 발견에 대한 의지, 그리고 운을 필요로 한다. 특히 마뜩한 증거가 없는 사건의 경우에는 세 번째 요소인 운이 많이 작용한다. 지금부터 필자가 겪은, 순전히 운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한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벌써 오래전 사건이 되어버린 ‘모 지역 피자가게 아르바이트생 성폭행’ 사건이라고 있었다. 그 사건은 피해자가 피자가게 업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유서를 쓰고 자살한 안타까운 사건이었는데, 당시 언론과 시민단체 등의 관심이 주목된 사건이라 검찰로서는 수사와 공소유지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경찰이 확보한 직접 증거라고는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는 취지의 유서, 그리고 피의자와 피해자가 주고받은 SNS 메시지, 경찰에서의 진술뿐이었기 때문에 피의자가 유서 내용에 반박하고, 경찰진술을 교묘히 변명할 경우 반박 논거가 전혀 없게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특히 공소사실의 일시, 장소 등을 특정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검사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처음 이 사건이 필자에게 배당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짧은 시간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자백을 받지?’, ‘만약 피의자가 부인하고 반박할 증거가 없으면 증거불충분 처분을 해야 하나?’ 등의 수많은 경우의 수가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당시 필자가 피의자를 최초로 마주하고 꺼낸 카드는 피의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피의자 역시 피해자의 자살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던 상황에서 피의자의 감성에 호소하자 피의자가 피해자를 강제로 모텔로 데리고 간 시간, 모텔 안에서 있었던 성폭행의 기억 등에 관한 진술을 의외로 손쉽게 받아낼 수 있었다.
피의자는 검찰 1차 조사 이후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피의사실 혐의를 부인하기 시작하였으나, 1차 조사 때 진술한 내용이 워낙 구체적이다 보니 유죄가 선고됨에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피의자의 사건이 처음 송치되어 왔을 때 피의자가 독한 마음을 먹고 필자에게 “피해자를 만나기는 했으나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거나 “성관계는 하였지만 합의 하에 하였다”고 변명하였다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아찔하기까지 하다.
또 다른 사건은 초임 때 배당된 강간사건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공판을 끝내고 수사라는 것이 대충 무엇인지 감이 올 즈음에 수사검사실로 복귀하면서 받은 재배당 사건이었는데, 사채업자인 50대 피의자가 채무를 오랜 기간 연체하였던 고소인을 강간하였다는 내용의 고소사건이었다.
경찰은 고소인의 진술이 일관되고 고소인으로부터 성폭행 피해 사실을 전해들은 친구의 진술 등 정황증거가 있다는 이유로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였지만, 피의자는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필자는 당시 고소인과 피의자를 따로 불러 그들의 주장요지를 자세히 들어보았고, 그 진술을 청취하던 중 고소인의 진술에서 정황상 모순이 느껴졌다. 그러나 고소인 역시 일관적으로 피해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혐의 없음 처분을 할 수는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때 갑자기 구세주처럼 등장한 것이 피의자의 새로운 진술이었는데, 피의자는 이 사건 이전부터 발기에 문제가 있어 비뇨기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당시 피의자가 제출한 진단서를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이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발기가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은 이상 위 증거가 곧바로 ‘피의자가 강간을 할 수 없음’을 입증할 증거로 될 수는 없는 까닭에 정황증거로서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위 진단서를 숨겨둔 채 피의자와 고소인의 대질조사를 진행하였고, 고소인의 진술들이 하나하나 깨질 무렵인 조사 막바지에 이르러 위 진단서를 제시하며 피의자는 “사건 당시 발기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를 외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진단서를 제시하면서 말이 꼬이는 바람에 “피의자는 사건 당시 발기 불능이었던 것입니다!”라고 말해버렸다. 갑자기 ‘발기 불능’이 되어버린 피의자의 당혹스런 표정과 함께 필자는 용어에 실수가 있음을 알아채고 다시 수습을 하려고 하는 순간 고소인이 입을 떼기 시작했다.
“사실 강간을 당하지는 않았어요.”
그 순간 검사실은 마치 얼음이 된 것처럼 적막했고, 필자 역시 갑자기 역전된 상황에 어리둥절해 있었다. 사건은 당시 초임이었던 필자의 황당한 실수로 고소인의 극적 자백을 이끌어내며 피의자의 무고함을 밝히고, 고소인을 무고로 인지하여 구속하고 종결되었다.
위 두 사례는 일상적인 사건 처리 속에서 있을까 말까 한 행운이 곁들여져 운 좋게 혐의 유무를 밝힐 수 있었던 사례들이다. 하지만 필자 역시 명심하고 있다. 운이라는 것은 노력과 사건에 대한 의지 없이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경찰이 확보한 직접 증거라고는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는 취지의 유서, 그리고 피의자와 피해자가 주고받은 SNS 메시지, 경찰에서의 진술뿐이었기 때문에 피의자가 유서 내용에 반박하고, 경찰진술을 교묘히 변명할 경우 반박 논거가 전혀 없게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특히 공소사실의 일시, 장소 등을 특정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검사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지금도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피의자의 사건이 처음 송치되어 왔을 때 피의자가 독한 마음을 먹고 필자에게 “피해자를 만나기는 했으나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거나 “성관계는 하였지만 합의 하에 하였다”고 변명하였다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아찔하기까지 하다.
또 다른 사건은 초임 때 배당된 강간사건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공판을 끝내고 수사라는 것이 대충 무엇인지 감이 올 즈음에 수사검사실로 복귀하면서 받은 재배당 사건이었는데, 사채업자인 50대 피의자가 채무를 오랜 기간 연체하였던 고소인을 강간하였다는 내용의 고소사건이었다.
경찰은 고소인의 진술이 일관되고 고소인으로부터 성폭행 피해 사실을 전해들은 친구의 진술 등 정황증거가 있다는 이유로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였지만, 피의자는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필자는 당시 고소인과 피의자를 따로 불러 그들의 주장요지를 자세히 들어보았고, 그 진술을 청취하던 중 고소인의 진술에서 정황상 모순이 느껴졌다. 그러나 고소인 역시 일관적으로 피해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혐의 없음 처분을 할 수는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때 갑자기 구세주처럼 등장한 것이 피의자의 새로운 진술이었는데, 피의자는 이 사건 이전부터 발기에 문제가 있어 비뇨기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당시 피의자가 제출한 진단서를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이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발기가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은 이상 위 증거가 곧바로 ‘피의자가 강간을 할 수 없음’을 입증할 증거로 될 수는 없는 까닭에 정황증거로서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위 진단서를 숨겨둔 채 피의자와 고소인의 대질조사를 진행하였고, 고소인의 진술들이 하나하나 깨질 무렵인 조사 막바지에 이르러 위 진단서를 제시하며 피의자는 “사건 당시 발기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를 외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진단서를 제시하면서 말이 꼬이는 바람에 “피의자는 사건 당시 발기 불능이었던 것입니다!”라고 말해버렸다. 갑자기 ‘발기 불능’이 되어버린 피의자의 당혹스런 표정과 함께 필자는 용어에 실수가 있음을 알아채고 다시 수습을 하려고 하는 순간 고소인이 입을 떼기 시작했다.
“사실 강간을 당하지는 않았어요.”
그 순간 검사실은 마치 얼음이 된 것처럼 적막했고, 필자 역시 갑자기 역전된 상황에 어리둥절해 있었다. 사건은 당시 초임이었던 필자의 황당한 실수로 고소인의 극적 자백을 이끌어내며 피의자의 무고함을 밝히고, 고소인을 무고로 인지하여 구속하고 종결되었다.
위 두 사례는 일상적인 사건 처리 속에서 있을까 말까 한 행운이 곁들여져 운 좋게 혐의 유무를 밝힐 수 있었던 사례들이다. 하지만 필자 역시 명심하고 있다. 운이라는 것은 노력과 사건에 대한 의지 없이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