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연수원을 수료한 뒤 법무관으로 3년간 군복무를 했고, 판사가 된 지는 10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이름 뒤에 ‘판사’가 붙을 때에는 조금 낯설기도 합니다.

저는 최근까지 법원 밖에서 법조인으로 살면서 판사에 대해 현실과는 다른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꽤 만났던 것 같습니다. 현실과 다른 판사의 이미지들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판사는 재판이 있는 날만 일을 한다.

저의 주된 업무는 사건기록 검토, 관련 판례 연구, 합의, 판결문 작성 등이고, 저를 비롯한 많은 판사들이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일을 해야만 할 정도로 일이 많습니다. 심지어 부장판사로 승진하면 일이 2배 이상 많아집니다. 아마도 판사가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판사가 직원들이 작성한 판결문에 도장만 찍는다고 오해해서 그렇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둘째, 판사들은 월급으로 생활하지 않는다.

외부에서 현금이나 상품권 등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위와 같이 생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단언컨대, 국가가 판사들에게 봉급을 주지 않는다면 지금의 판사들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판사들에게는 관용차와 개인 사무실이 제공된다.

실제로 제가 판사가 된 작년 4월경에 제 할머니께서 노인정의 어떤 분으로부터 “손자 출근할 때 누가 데리러 오느냐?”라는 질문을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판사에게 관용차가 제공되는 경우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의 법관과 지방법원 부장판사 중 지원장(기관장)으로 일하는 경우뿐입니다. 또한, 사무실도 보통의 경우 2∼3명이 함께 사용하고, 부장판사 이상의 법관들만 혼자서 사무실을 사용합니다. 위와 같은 오해는 아마도 판사를 최고위(?) 공무원으로 생각하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제가 판사가 된 후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첫째, 인간관계가 협소해 진다.

판사는 자신이 담당하는 사건과 관련된 사람을 사적으로 만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판사도 사회적 인간이기에 친구들, 친지들이 있고, 모임도 있으며, 그 중 누군가 사건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판사들은 친목 모임의 횟수를 줄이거나 확대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을 은연중에 하게 됩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판사들은 동료 판사들과 더욱 친해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판사들은 판사들끼리만 논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둘째, 작은 것 하나에도 민감해 진다.

이것은 제가 직접 느낀 것은 아니고, 어떤 부장판사님의 말씀을 빌린 것입니다. 판사들은 일할 때 전문화된 직원들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판결문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오롯이 그 판사에게 있기 때문에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직접 체크해야 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일하다 보면 성격까지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경력이 긴 판사들 중에는 동안(童顔)이 없다.

업무량도 많고, 난이도도 높아서 업무에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어떤 직업과 견주더라도 적지 않기 때문에 경력이 긴 판사님들 중에서 나이에 비해 동안인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넷째, 가족들의 말도 의심하게 된다.

판사는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직업입니다. 진실은 하나이므로,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양쪽 모두 온전한 진실이 아닌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말하고, 나머지는 숨기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법관의 판단이란 당사자의 주장이 거짓말일 것이라는 의심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판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들의 말에도 증거를 요구하게 되는 직업병에 걸리고 맙니다. 가족들은 진실을 밝히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같은 편이 필요했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판사들은 자신의 판단으로 사회의 갈등이 조금이라도 봉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