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을 준비하면서 어떤 주제로 어떤 방법으로 칼럼을 써야할지 부족한 필자로서는 고민이 많았다. 많은 고민 끝에 사건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들, 걱정거리를 같이 나눠 보자고 생각했다. 필자가 최근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사건은 살인사건, 성폭력, 가정폭력 사건이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폭력의 행사’라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종류의 사건들은 가해자의 폭력성에 기인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사건의 특성상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 참고인들의 진술을 직접 듣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런 폭력사건의 원인이 단순히 가해자들의 폭력성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전에 보성에서 일어났던 일명 ‘노인과 바다’라는 사건을 관심 있게 본 적이 있다. 이 사건은 보성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작은 선박을 가지고 선상낚시 영업을 하는 어부가 관광을 온 대학생 커플 등을 태우고 데려가 남학생을 먼저 살해하고 여학생에게 강간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행위를 하려다 결국 살해한 사건이었다. 어부는 똑같은 방법으로 여성 2명을 배에 태우고 바다로 데려가 살해했다.

바다에서 뒤늦게 발견된 시신으로 인해 사건은 밝혀졌지만 70여 생을 같은 일을 해온 노인에게 살해당한 사람이 그 4명뿐일까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일었었다.

사람들을 더 경악하게 만든 것은 그 노인이 70대의 왜소한 체구의, 가족뿐 아니라 주변 누구도 그 노인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너무나 평범한 노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범행이 밝혀진 후에도 그 노인이 했던 “왜 하필 내 배를 탔냐”, “공짜로 태워준다고 하니까 좋아서 타서 이렇게 됐지”라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과연 그 노인이 자신의 배에서 잔인하게 젊은이들을 살해한 것이 단순히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목적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많은 성폭력사건에 있어서 사람들은 그 동기에 대해 욕망을 채우려는 목적으로만 생각하지만 성폭력 가해자들의 대부분은 오히려 부인이나 연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폭행을 부인하는 가해자들의 가장 흔한 변명이 “난 처도 있는데 내가 왜 저보다 나이 많은 여자를 강간하겠어요?”다.

보성의 노인은 배도 소유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이 아니어서 원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인은 자신의 배에 올라탄 젊은이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것은 배 위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피해자 중 1명은 노인보다도 힘이 센 남자 대학생이었고, 그 옆에는 힘을 보탤 수 있는 여자친구도 있었다. 그럼에도 70대의 왜소한 노인을 이기지 못하고 살해당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다가 그 배 위에서만은 젊음이나 단순한 완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노인만의 ‘지배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바다에서 오로지 작은 배라는 공간, 그 공간에서만큼은 어떤 재력도 젊음도 통하지 않는 수십년간 어부생활을 한 노인이 ‘왕’이었고, 바다 밖에서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노인은 자신의 ‘왕국’에서 그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이곳 검사실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 필자의 영역인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는 피조사자로 온다. 보성의 사건을 보면서 혹시 필자도 이곳에서 당연히 검사로서 해야 할 업무를 넘어 ‘힘’을 과시하려고 하지는 않나 뒤돌아보곤 한다.

우리 모두는 각기 자신의 ‘힘’이 지배하는 공간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집이, 누군가에게는 직장이, 교실이 그런 공간, 즉 자신의 왕국일 것이다. 어른에게는 대항할 힘이 없는 어떤 학생도 친구들에게 자신의 ‘힘’이 통하는 교실에서는 소위 ‘짱’이라고 불리며 폭력을 휘두른다. 우리가 자신의 왕국에서 그 ‘힘’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내고 있는 건 아닌지 뒤돌아본다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